포트 데이(Port day) - 나가사키

by 유자와 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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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 부산에서 출발한 프린세스 호는 다음날 새벽 나가사키 항구에 닿았다.

나가사키는 여행 중 잠시 들리는 기항지(Port of Call)이다.

배가 기항지에 도착하여 관광하는 날을 포트 데이라 한다.


기항지에서 여행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우리는 자유여행을 선택했기에 나가사키 여행 계획을 미리 세워 왔지만 패키지여행을 신청해서 편하게 즐길 수도 있다.

크루즈 내에는 기항지 여행을 위한 안내 데스크가 있다.

이곳에서 원하는 선택 관광을 바로 예약하고 이용할 수 있다.

이를 쇼어 익스큐전(Shore Excursion)이라고 한다.


크루즈 선사에서 운영하는 기항지 유로 관광 프로그램으로 관광버스를 타고 관광지를 돌아다니며 가이드가 안내 하는 상품이다.

가이드 없이 관광지까지 교통편만 예약하는 상품도 구매할 수 있다.

신청이 완료되면 프로그램 이용 티켓(크루즈 내 미팅 장소와 시간 안내)과 영수증을 넣은 봉투가 선실로 배달된다.

프로그램을 살펴보니 3시간 동안 나가사키 주요 관광지를 둘러보는 상품이 어른 기준 100달러, 7시간 동안 둘러보는 상품은 200달러로 적혀 있다.


아침 6시에 일어나 바로 식당으로 갔는데도 사람들로 북적인다.

다들 왜 이리 부지런한 걸까?

바싹 튀긴 베이컨, 오이무침, 메론, 살구, 파인애플이 맛있다.

절인 생선, 쓰께모노, 미소시루, 우메보시 등 일본 음식도 많다.

커피는 연하다.

배 안에서 나가사키 풍경을 바라보며 먹으니 기분 좋다.

언덕에 집들이 빼곡하다. 햇살은 벌써부터 뜨겁다.


8시에 준비를 마치고 나가사키 구경을 나간다.

4층에 있는 갱웨이를 통해 나가면 입국 심사대가 있다.

전날 작성해 놓은 입국카드와 세관 신고서를 제출한다.

직원이 여권을 확인하고 바로 통과시켜 준다.

심사가 1분 만에 끝났다. 우리가 일찍 나온 것 같다.


아침이라 문을 연 상점이 없다. 습도는 높고 화창하다.

우산을 쓰지 않으면 눈을 뜰 수 없는 날씨다.

나가사키 카스테라를 파는 상점들이 곳곳에 있다.

1634년에 지어졌다는 나가사키 안경다리가 운치 있다.

다리 아래로 흘러가는 나카시마 강(이라고 하기엔 하천 수준)에서 가재, 자라, 이름 모를 물고기 몇 마리를 발견했다.

아기자기하고 깨끗한 항구 도시인 나가사키에게는 끔찍한 역사가 있다.


1945년 미국은 2차 세계대전을 끝내기 위해 일본 지역에 두 개의 원자폭탄을 투하했다.

8월 6일 히로시마에 ‘리틀 보이’를, 8월 9일 나가사키에 ‘팻 맨’이라 불리는 원자폭탄을 떨어뜨렸다.

귀여운 이름의 폭탄 두 개가 도시를 무참히 파괴했다.

팻 맨은 나가사키 시민 중 6만 명에서 8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로 인해 대한민국은 일본의 식민지에서 벗어나게 되었으나 두 나라 모두 수많은 목숨이 희생된 후였다.


점심으로 소바를 먹고 미술관을 둘러본 후 차를 마시며 항구에 정박해 있는 하얀 어선들을 바라본다.

모과가 그림 그리는 동안 근처 쇼핑몰 둘러보기.

크루즈에 3시 30분까지 탑승해야 한다.

짐을 검색대에 통과시키기만 하면 된다.

숙소에 가방을 갖다놓고 샤워를 한다.

편안한 옷을 갈아입고 곧바로 뷔페로 이동한다.


메밀면을 먹었더니 금방 배가 꺼진다.

신문에서 레스토랑 운영시간을 살펴본다.

뷔페 호라이즌 코트(Horizon Court)에서 3시 30분부터 디저트 타임이 시작된다고 적혀 있다.

쇼트케이스에 여러 종류의 케이크와 샌드위치가 즐비하다.

종류도 많고 맛도 좋다.

결혼식장 뷔페에 나오는 케이크 수준일 거라고 추측했는데 오산이다.

레몬 무스, 라즈베리 케이크, 키슈, 프로슈토 크루와상 샌드위치를 골랐는데 전부 맛있어서 나머지 케이크도 다 먹어볼까 하는 욕심이 생긴다.


자리에 앉으면 직원이 순식간에 와서 커피 줄까? 물어본다.

공짜니 놀라지 말고 달라고 하면 된다.

테이블도 많고 드나드는 사람도 많은데 우리가 새로 온 줄 어떻게 알았을까?

처음에는 뷔페라 커피도 스스로 가져 와야 되는 줄 알았다.

아침 조식 때 모과가 커피를 가지러 간 사이 직원이 와서 물었다. 커피 줄까?

그제야 돌아가는 시스템을 파악했다.

음식은 스스로 떠와야 하지만 커피는 가져다준다.


배가 정박해 있는 바깥 야외무대에서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한국의 난타 느낌이다.

연주 팀이 선박 쪽을 향해 서서 연주를 하는 걸 보니 크루즈 승객을 위한 공연이 분명하다.

흥겨운 북소리가 쿵쿵 울린다.

4시가 되자 천천히 선박이 출발한다.

난타도 끝을 향해 달려가는 중이다.

배 난간에 기대 구경하던 사람들이 연주자들에게 손을 흔든다. 북소리가 조금씩 멀어져 간다.


야외에 있는 메인 수영장에서는 라이브 공연이 시작되었다.

싱어와 키보드로 구성된 듀엣이다.

박수는 치지 않아도 괜찮다는 듯, 한 곡이 끝나면 쉬지도 않고 바로 다음 곡으로 넘어간다.

음악을 들으며 카페테리아 메뉴를 제대로 살펴본다.

피자는 두 종류가 있다. 마르게리타와 페퍼로니 피자.

직원이 조리대에서 피자 도우를 직접 반죽한다.


햄버거는 BLT, 베지 버거, 클래식 버거가 있다.

패티 역시 철판에서 바로 구워준다.

핫도그는 클래식과 칠리 치즈 두 종류다.

감자튀김은 칠리 치즈와 베이컨 치즈가 있다.

샌드위치는 치킨과 비비큐 중에서 고를 수 있다.

치폴레 치킨 타코와 고구마 칠리 타코도 준비되어 있다.

이 모든 게 무료다.


모과는 수영을 하겠다며 풀장으로 이동한다.

나는 마가리타를 마시며 라이브 음악을 듣는다.

실내와 실외 풀장을 오가며 한참 수영을 하다 온 남편은 배가 고프다며 페퍼로니 피자와 스파이시 핫도그를 주문한다.

역시 기대했던 것보다 맛있다.

모과 말로는 실내 수영장에는 사람이 더 많고 물도 더 더럽다고 한다. 모과가 묻는다.

“근데 수영하고 타월로 몸 닦은 다음에 방까지는 어떻게 가? 타월 가지고 가도 돼? 아님 그냥 수영복 입은 채로 가?”

“너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돼”


햇살이 나긋나긋해진다. 바다색은 점점 짙어진다.

5시. 라이브 공연이 끝났다.

방으로 돌아가 잠시 쉬기로 한다.

남편은 피자와 핫도그를 먹는 사이 몸이 다 말랐다며 타올 없이 그냥 가겠다고 한다.


숙소 방문을 열었더니 그새 침구가 정리 되어 있고 타월도 교체되어 있다.

2시간밖에 안 비웠는데 청소할 게 뭐가 있다고.

이것 또한 인력 낭비다. 방 청소는 하루에 한번이면 족하다.

침대에 누워 늦은 낮잠을 잔다.


오늘 저녁 먹을 장소는 비발디 레스토랑이다.

이름에 걸맞게 벽면 곳곳에 악기를 연주하는 음악가 그림이 벽지처럼 붙어 있다.

둘째 날이 되니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생긴다.

직원들은 친절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어쩔 수 없이 웃는 미소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테이블에 음식을 놓고 뒤돌아서며 한숨도 쉰다.


우리 옆에는 일본인 커플이 앉았다.

뒤편 둥근 탁자에는 중국인 5명이 앉았는데 그 중 한명이 식사 하는 도중 뭔가를 더 시키려는 듯 손을 든다. 서빙 하느라 바쁜 직원들은 그를 보고도 못 본 척 한다.

남자가 오랫동안 손을 흔들지만 아무도 반응하지 않는다.

남자가 소리 내어 부르자 결국 다른 구역을 맡은 서버가 마지못해 주문을 받으러 온다.


우리는 식전 음식으로 깔리마리 튀김, 망고 스프, 아보카도 샐러드, 양파스프를 먹는다.

오후에 디저트를 많이 먹어 배가 더부룩하다.

과한 욕심을 부렸나보다.

뜨거운 녹차를 주문한다. 차 가격이 얼마인지 궁금하다.

왜 음료 메뉴판은 따로 없는 걸까?


천천히 스타터를 먹고 주변 사람들 관찰이 끝나도 메인 요리는 나오지 않는다.

우리가 고른 메뉴는 뉴욕 스트립 스테이크와 돼지 삼겹살 조림이다.

메인을 세 개 시키려 했으나 배가 고프지 않아 두 개만 시킨다.

오늘 중에 먹을 수 있긴 할까? 디저트는 먹지 말고 그냥 갈까? 이런 말을 주고받는 사이 마침내 음식이 나온다.

음식 맛을 본 우리는 디저트까지 맛보기로 마음을 바꾼다.

크렘뷜레와 세 가지 맛(루바브, 럼과 건포도, 체리) 소르베를 시킨다.

아이스크림이 어찌나 맛있던지 끝까지 기다리길 잘했다고 서로를 칭찬한다.


식사를 마치니 9시 10분이다.

공연을 놓치지 않기 위해 허겁지겁 달려간다.

어제보다 오늘 공연을 보러 온 사람이 더 많다.

비집고 들어가기가 미안해 맨 뒤에 서서 보기로 한다.

‘본 투 비 와일드’(born to be wild)라는 제목의 뮤지컬 공연이다.


젊은 남녀 네 명이 분홍색 캐딜락을 타고 미국 대륙을 가로질러 여행을 떠나는 줄거리다.

댄서들이 나와 팝송을 부르며 춤을 춘다.

그 뒤로 미국 자연 경관이 영상으로 비춰진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분위기와 비슷하다.

메인 보컬들이 노래를 아주 잘한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무대 설치와 공연 의상은 신경 썼더라.


공연이 끝났다.

야외 수영장이 있는 1층으로 올라간다.

하늘에 거의 완전한 보름달이 떴다.

방아를 찧는 토끼가 보일 듯 말듯 한다. 달이 밝다는 게 이런 느낌이구나.

달빛이 비추는 바닷물 쪽은 환하고 나머지 부분은 컴컴하다.

배가 앞으로 나아가니 바람도 슥슥 불어온다.

바다에 풍덩 빠져도 아무도 모를 것이다.


야외 영화는 <던전 앤 드레곤>이 상영 중이다.

일본어 자막이 나온다. 봤던 영화라 다행이지 안보고 왔으면 어쩔 뻔했어.

썬베드에 누워 보는 사람들은 10명 정도.

바다 한가운데 누워 영화를 보면 기분이 좋긴 하겠지.

근데 나머지 분들은 어디 있을까?


정답은 댄스홀.

흥겹게 춤을 추며 깊어가는 밤을 즐기시는 어르신들의 체력이 부럽다.

여행이 끝나면 진지하게 운동 좀 해야겠다. 우리는 숙소로 들어가 물침대 같은 침대에 눕는다.

둥실 둥실 방이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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