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즈 1일차

by 유자와 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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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탑승한 여행객은 4시 30분까지 휠 하우스 바(Wheel house bar)로 모여야 한다.

머스터 드릴(Muster Drill)이라 불리는 비상 대피 훈련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타이타닉 사고 이후 해상 안전을 위한 조항이 강화되어 왔다.

현재 모든 탑승자는 승선 후 24시간 이내에 비상대피훈련에 참여해야 하고 선박은 24시간 내내 통신이 가능해야 한다.

구명보트는 승무원과 승객의 최대 인원수의 125% 수용능력을 갖춰야 한다.


직원이 가져온 스캔 리더기에 줄을 서서 한명씩 메달을 스캔한다. 세어보니 총 60명이다.

출석 확인만 하면 끝인 줄 알고 밖으로 나가는 사람들이 많다.

안내직원은 두 명인데 스캔을 확인하랴 아직 가면 안 된다고 영어로 얘기하랴 바쁘다.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밖으로 나가려는 어르신들 몇 분께 안전 교육 설명을 들어야 한다고 알려준다.

교육은 5분 만에 끝이다. 빠르게 영어로 설명했기에 나를 포함해 몇 명이나 알아들었을지 의문이다.

배가 난파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비상 상황시 구명보트를 타야 할 안전 대피 집합 장소(Muster Station)가 어딘지는 파악했으니 괜찮겠지.


부산항에서 메달을 받을 때 직원이 안내 데스크에 가서 세관 신고서와 입국 신고서를 받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종이도 한 장 줬는데 내일 나가사키 관광을 직접 할 것인지 유료 관광을 신청할 것인지 선택한 후 데스크에 전달하면 된다고 했다.

안내 데스크에 가니 한국인 직원이 한 명 있다.

개인 관광을 선택한 종이를 직원에게 건넸고 세관 신고서와 입국 신고서를 받았다.

해야 할 일이 다 끝났다. 이젠 뭘 해야 하지?

대학생이 되어 처음 학교에 간 기분이 든다. 강의실은 어디 있지?

7층 야외 데크에서 선원 몇 명이 선박 곳곳에 붓질을 하고 있다.

배가 정박해 있는 동안 유지보수를 하는 모양이다(다음 날 나가사키 항에 머무를 때도 그러고 있는 걸 보았다).


수영장이 있는 14층으로 올라간다.

크고 작은 수영장이 네 개, 자쿠지가 두 개다.

가장 큰 수영장은 배 선미에 위치한다.

수영장 양 옆에 곰돌이 귀처럼 동그란 자쿠지가 붙어 있다.

수영장을 둘러싸고 썬베드가 놓여 있다.

썬베드 뒤쪽으로는 테이블과 의자가 있다.

그 뒤로는 바(bar)가 있고 왼쪽에 피자 코너 오른쪽에 햄버거와 핫도그 코너가 있다.

맞은편에는 작은 무대와 아이스크림 코너가 있다.

수영장 위쪽에는 야외 영화를 상영하는 큰 스크린이 걸려 있다.

수영장은 복층처럼 되어 있다.

계단으로 올라가면 2층 갑판에도 썬베드가 양쪽으로 깔려 있다.

수영장이 내려다보이는 2층 썬베드에 누워 있으니 여행 온 기분이 난다.

아직 부산항이긴 하지만.


바에 가서 메뉴판을 살펴본다. 칵테일, 맥주, 와인, 위스키, 탄산음료가 있다.

칵테일 리스트 첫 번째에 적혀있는 마가리타를 한 잔 주문한다.

크루즈에서 붙인 명칭은 ‘24k 골드 마가리타’다.

금가루라도 뿌려주려나? 가격은 12달러. 세금 10%, 서비스 차지 7%가 별도로 붙는다.

크루즈에서 제공하는 음식은 무료니 주류가 주요 수입원이 아닐까 생각한다.

마가리타가 엄청나게 큰 잔에 담겨있다.

비록 금가루는 없지만 맛도 좋고 소금도 완벽하게 묻혀 있다.

좋아. 이제부터 3일간 마가리타만 마시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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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 근처 테이블에 앉아 홀로 맥주를 마시던 외국인 남자가 내 손에 들린 마가리타를 유심히 보더니 바텐더에게 뭔가 주문한다.

슬쩍 보니 맥주가 반이나 남았다.

잠시 후 그에게 건네지는 마가리타 한잔, 첫 모금을 마신 후 짓는 만족스러운 미소.

그렇다니까요. 꽤 괜찮죠?


저녁 6시가 되자 직원들이 2층에 있는 썬베드를 하나씩 접기 시작한다.

우리가 누워있는 곳이다.

“비켜야 되나요?” 물어보자 직원이 “노 노"라고 대답한다.

몇 개만 치우는가 보다 생각했는데 우리 좌석만 빼고 싹 정리한 후 가버린다.

2층엔 덩그러니 우리만 남겨졌다. 고객 중심이긴 하다.


빨랫줄에서 떨어진 빨래처럼 널브러져 있던 모과가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다고 한다.

녹차, 바닐라, 초코 아이스크림 세 종류가 있다.

먹음직스러운 초콜릿 프라페도 있는데 그건 10달러를 내야한다.

녹차 아이스크림을 달라고 하자 필리핀 국적으로 보이는 직원이 어디서 왔냐고 묻는다.

“코리아” 라고 대답한다.

“북한? 남한?” 이냐고 되묻는다.

남한이라고 대답하니 북한에 가봤냐고 다시 묻는다.

아니라고 대답하니 왜냐고 묻는다.

왜냐고? 그러게. 나도 궁금하다.


다시 선베드에 누워 구름을 쳐다본다.

여전히 부산항에 정박 중이다.

배가 움직이긴 하는걸까?

20대 여성 두 명이 수영장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는다.

한손에는 선상 신문이 들려있다.

오늘자 신문을 어디서 구했을지 궁금하다.

마침 한국인이다.

물어보니 안내 데스크에서 받았다고 한다. 아하.


그들은 여기저기 둘러보며 사진을 찍더니 다가와 마가리타를 가리키며 묻는다.

“이거 돈 내야 되죠?”

“맞아요.”

“뭐가 무료고 유료인지 모르겠어요.”

“아이스크림 무료, 피자 핫도그 햄버거 무료에요. 가격 적혀있으면 유료에요.”

“그렇구나. 감사합니다.”

그 뒤로 3일 동안 배에서 그 친구들을 한 번도 못 본걸 보면 배가 넓긴 하나보다.


수영하는 사람은 두 명이다. 자쿠지에 앉아 있는 사람도 몇 명 안 된다.

썬베드에는 5명이 누워 있다. 크루즈가 한산하다.

다들 어디 갔지? 밥 먹으러 갔나?

6시 15분이 되자 야외 스크린에서 영화 듄(Dune)을 틀어준다.

영어자막조차 없다. 예전에 봤던 영화라 이해하는 데 무리는 없다.

바람이 시원하게 분다. 솜사탕을 찢어놓은 듯한 구름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7시 30분에 예약해놓은 레스토랑에 저녁을 먹으러 간다.

식당은 크루즈 앱으로 미리 예약할 수 있다.

첫날은 사보이 레스토랑이다.

입구에서 직원이 이름을 확인한 후 자리로 안내해준다.

둘러보니 시야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외국인과 일본인뿐이다.

아까 함께 탔던 한국 사람들은 다 어디 갔지?

2인석 자리는 프라이빗 테이블이라고 부르기 어려울 정도로 옆 좌석과 다닥다닥 붙어있다.


우리 옆 좌석에는 이미 외국인 커플이 앉아있다.

가볍게 눈인사를 나누며 자리에 앉는다.

서로의 표정에서 마음을 읽는다.

‘테이블이 너무 가까이 붙어 있어서 민망하네요.’

‘그러게요. 이렇게 좁을 줄은 몰랐어요.’


직원이 메뉴판을 가져다준다.

오늘의 메뉴가 표시된 한 장짜리 메뉴판에 영어와 일본어밖에 없다.

요리를 설명하는 그림도 없다.

음식 관련 영어 단어를 모르면 주문하기 어려운 시스템이다.

옆 테이블을 가리키며 저걸로 주세요 할 수는 있겠지만 그들이 식전 요리를 먹고 있다면 메인은 먹지도 못할 판이다.


직원이 와서 음료는 무엇으로 할지 묻는다.

음료는 주문하지 않아도 된다.

화이트 와인 한잔을 시킨다.

가격이 궁금하나 음료 메뉴판은 따로 없다.

직원이 차가운 와인 한잔을 가져다준다.

디저트 와인 잔처럼 작은 잔에 담겨 있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와인 맛이 꽤 좋다.

좋아. 저녁마다 화이트 와인(나중에 확인하니 12.98달러였다)을 마시겠어.


메뉴판엔 스타터, 스프, 샐러드, 메인 요리만 적혀 있다.

디저트는 안주는 건가?

음식 단어는 자신 있던 내게도 모르는 단어가 있었다.

‘veal scallopini’ 라고 적힌 요리이다.

veal은 얇게 저민 송아지라는 뜻이다.

분명 소고기 요리인데 scallopini 라는 단어를 모르니 그걸 어떻게 조리했는지 모르겠다.

슈니첼처럼 튀긴 거라면 좋을텐데. 모험하는 심정으로 먹어보기로 한다.


직원이 와서 주문을 받는다.

나는 차가운 복숭아 스프와 메인 요리로 새우 튀김을 주문한다.

직원이 묻는다. 스타터 더 주문 안하니?

모과와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깨닫는다.

‘더 시켜도 되는구나’

괜찮다고 말하면서 모과를 쳐다본다.


내 눈빛을 이해한 모과한 스타터를 하나 더 추가한다.

프로슈토로 감싼 멜론과 가지 그라탕, 메인으로는 소고기 요리다.

우리는 궁금해진다.

메인 요리도 두 개 시킬 수 있는 걸까? 아마 가능할 것 같다.

내일 저녁에 도전해보기로 한다.


바구니에 식전 빵이 잔뜩 담겨 나온다. 버터가 아닌 차가운 생크림을 발라먹는다.

한참을 기다리자 애피타이저가 나온다.

모과가 주문한 건 다 맛있다.

내 복숭아 스프는? 백도 국물에 복숭아 통조림 몇 개가 둥둥 떠 있는 비주얼과 맛이다.


테이블에 나이프가 두 개나 놓여 있다.

멜론을 자르려던 모과가 묻는다. 큰 나이프로 잘라? 작은 나이프로 잘라?

큰 게 정답이다. 작은 건 빵에 생크림을 바르는 용도로 쓴다.

메인 요리가 나올 때 직원이 나이프를 모두 가져가고 새로 세팅해준다.

굳이 이렇게까지 포크와 나이프를 대 여섯 개 바꿔가며 음식을 먹어야 할까?

인력 낭비, 물 낭비, 도구 낭비가 동시에 이루어진다.

직원이 와서 와인을 더 마실 건지 묻는다.

괜찮다고 말하자 직원이 농담을 건넨다.

“너 운전해야 하니?”


크루즈가 움직인다. 8시 24분이다. 드디어 출발이다.

그런데 메인 요리는 언제 나오지?

한참을 기다려도 소식이 없다.

관찰을 시작한다.

서빙하는 직원들은 주방에서 플라스틱 커버로 덮은 접시를 한꺼번에 대여섯 개 들고 와서 자기가 맡은 테이블에 한 번에 나누어준다.

우리가 앉은 자리는 구획 상 네 개의 테이블이 있고 두 명씩 앉았는데 보아하니 이렇게 한 팀이다.

우리가 다 먹어도 나머지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이 다 먹을 때까지는 다음 요리가 나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래서 다들 뷔페로 가는 건가?


메인 요리가 나왔다.

새우튀김은 훌륭하다.

빌 스칼로피니는 맛없다.

나중에 찾아보니 이 요리는 얇게 저민 송아지 고기에 밀가루와 허브를 살짝 묻힌 후 프라이팬에 구워내는 방식이다.

메인 음식을 다 먹으니 다시 메뉴판을 준다.

디저트용이다. 디저트도 두 개 시킬 수 있는지 궁금하다.

첫날이니 한 개만 시키고 옆 테이블을 살펴봐야겠다.

프린세스 러브 보트 드림(Princess Love Boat Dream)과 리치 라즈베리 로즈 무스(Lychee, Raspberry & Rose Mousse)를 시킨다.

디저트 이름이 참으로 길고 화려하다.

이름만큼 예쁘고 달콤한 디저트였다.


전식-본식-후식으로 구성된 저녁을 먹고 나니 9시 10분이다.

9시 15분에 공연이 있어 서둘러 극장으로 이동한다.

극장이 꽉 찼다.

오늘 공연은 음악 콘서트다.

카테이(Katei)라는 바이올리니스트가 빨간 체크바지와 흰색 반짝이 반팔 티, 검은 조끼를 입고 등장한다.

머리에는 헤어밴드를 둘렀다.

전자 바이올린 외에 색소폰, 트럼펫, 트럼본, 드럼, 일렉 기타, 베이스 기타, 키보드로 구성된 밴드다.

총 7곡을 불렀다.

알아들은 곡은 ‘Canon’, ‘Viva la vida’, ‘First love’, ‘Pirates of the Caribbean’이다.

중간에 카테이가 호주에서 오신 분 손들어보라고 한다.

10명 정도 손을 든다. 뉴질랜드? 2명. 대만? 5명. 북유럽? 2명, 미국? 약 10명, 한국? 약 20명, 일본? 대부분이 손을 든다.


공연장을 나오니 메인 홀에서 남녀 댄서가 춤을 추고 있다.

밤 10시인데 둘러서서 구경하시는 분들이 거의 어르신이다.

체력이 좋으시군요.

다른 분들은 무얼 하고 있는지 한 바퀴 둘러본다.

가라오케에서는 어르신들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퓨전 클럽에서는 30명 정도 되는 인원이 직원의 몸동작에 맞춰 단체 군무 중이다.

신문을 보니 컨트리 라인 댄스 수업이라고 적혀 있다.

야외 데크로 나가본다. 배가 컴컴한 바다를 가로지르며 달리고 있다.

시원하면서도 후덥지근한 바람이 분다.

저 멀리 고깃배들이 일렬로 서 있다.

긴 하루였다.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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