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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상

공짜 계절

by 유자와 모과


지난주부터 창문을 열고 잔다. 아침 저녁으로 시원하다.

찬 바람에 마음이 철렁이기도 한다. 여름이 떠날 준비를 하는 걸까.

밤중에 잠이 깨면 귀를 기울인다. 매미가 우나 안 우나.

고요하면 아직 한밤중이라는 뜻이다.

매미는 새벽 4시부터 울기 시작한다.

매미의 부산스러움이 절정에 달하면 일어날 시간이다.

매미도 잘 때 자고 깰 때 깬다. 새도 마찬가지다.


좋은 날들이 지나간다.

구름이 둥둥 떠 있는 하늘이 예쁘다. 초록잎으로 무성한 나무도 예쁘다.

살랑거리며 불어오는 바람도 예쁘고 총총거리며 걷는 비둘기도 예쁘다.

뜨거운 햇살도 예쁘고 후두둑 떨어지는 빗방울도 예쁘다.

무심히 지나치기엔 모두가 예쁜 풍경들.


매일매일이 평범하다.

세수 하고, 산책 하고, 청소 하고, 요리 하고, 책 읽고, 낮잠 자고, 운전 한다.

사는 곳이 달라 가끔 전화 통화만 하는 친구가 말한다.

“너는 언제 전화해도 늘 똑같니. 옛날부터 사건 사고도 없고. 대단하다.”

친구가 어떤 의미로 ‘대단하다’고 말했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평범한 하루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휴일이나 주말이라고 달라지는 건 없다.

모과가 기타 연습을 하는 동안 곁에서 책을 읽거나 식사 준비를 한다.

오후에는 주로 빵을 굽는다. 나 말고 모과가.

어제는 레몬 파운드 케이크를 만들었다.

빵 반죽을 하고 나면 낮잠 잘 시간.

모과는 잠이 안 온다고 하지만 설득과 협박으로 침대에 눕힌다.

눕자마자 조용히 코를 고는 모과. 늘 그렇다.


해가 질 무렵 산책을 나선다. 좀 더 일찍 나간다면 카페에서 차도 한 잔.

산책 코스는 어디서 저녁을 먹을지에 따라 다르다.

왠만한 음식은 집에서 요리하는 게 더 낫다.

식당 고르는 것도 쉽지 않다. 집에서 만들기 어려운 음식을 선택한다. 새우튀김이나 뇨끼같은.

점심에 산책을 나갈 때도 있다.

그런 날에는 저녁을 집에서 먹고 빔 프로젝트로 영화를 본다.


잔잔한 삶이 좋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자연을 바라보며 감탄하는 일상이 좋다.

내 도움이 필요하면 돕고, 섬겨야 하는 곳에서 섬기며 작게 살아가는 하루가 좋다.

8월이 눈부심으로 가득 차 있다.

글보다 아름다운 풍경이 지천이라 책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이렇게 좋은 계절을 공짜로 누릴 수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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