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자와 모과 May 17. 2020

7. 둘이서 라면 하나 - 채황

채황


 2019년 오뚜기에서 야심차게 채식라면을 내놓았다. 신문을 통해 기사를 접하긴 했지만 평소 라면을 잘 먹지 않으니 관심을 두지 않았다. 더 중요한 건 채식주의자를 위한 가공식품이 맛있을 거라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년 코엑스에서 비건 페스티벌에서 열렸을 때 거기서 맛본 채식버거(비욘드 미트)는 실망이었다. 식물성 단백질을 추출하여 만들었다는 채식 패티는 겉으로 보기에는 고기 패티와 똑같고 씹는 맛도 괜찮았다. 하지만 맛이 없었다. 한 입 먹는 순간 대체육 식품은 아직 갈 길이 멀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체인 햄버거 가게에서 파는 채식 버거를 먹은 후 느낌도 비슷했다. ‘기적’같은 맛을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살짝 희망을 품긴 했는데.

 


 왜 기업들은 굳이 고기와 비슷한 식감과 풍미를 내려고 노력하는 걸까? 채식을 하는 사람들은 야채와 과일, 곡물과 구황작물만 먹으면서도 충분히 만족하는데? 그건 대체육 시장이 고기를 끊기 힘들거나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까지 포섭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가축 사육에서 발생하는 어마어마한 환경오염 문제도 간과할 수 없기에 대체육 시장은 계속 발전할 것이다. 하지만 대체육 역시 여러 재료를 섞어 가공하는 거라 몸에 좋을지는 모르겠다. 부디 행운을 빈다.


 무슨 라면을 먹을까 하다 채황 라면을 골랐다. 채황은 영국 비건 협회인 ‘비건 소사이어티’에서 비건 인증을 받아 비건 제품으로 등록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분명) 맛이 없을 테니 남편을 도울 겸 혼자 먹어보기로 했다. 표지를 보니 붉은색 일색인 다른 라면과 달리 산뜻한 완두콩색이다. 라면 봉지를 뜯어보니 면이 적은 느낌이다. 중량 110g. 일반 라면보다 10g~20g 정도 적다. 건장한 남자라면 한 개로는 부족하겠는걸. 채황은 채소라면의 황제라는 뜻인데 요즘 황제는 몸매관리를 하느라 조금만 먹나보다. 황제라는 단어도 너무 거창한 것 같다. 그냥 담백하게 채왕이라고 하면 좋을 것 같은데(짜왕과 겹쳐서 그런가?).


 물에 건더기를 넣고 끓인다. 건더기가 다른 라면에 비해 풍성하다. 살펴보니 양배추 13.6%, 청경채 12.6%, 버섯 4.6%, 양파 3.3%, 당근 2.9% 등이 들어 있다. 10가지 채소를 사용하였다고 표지에도 크게 적혀 있다(엄밀히 따지면 5가지가 거의 전부지만). 스프와 면을 넣고 마저 끓인 후 호로록 한입 먹어본다. 어머? 이 맛은 무엇이지? 이것은 된장 육수인가? 닭 육수인가? 스프 첨가물을 확인하니 진한표고분말이 눈에 띈다. 짭짤하면서도 진한 풍미가 느껴진다. 매운 맛은 전혀 없는데 맛있다. 아주 맛있다.


 채식주의자를 위해 라면도 만들어주니 채식을 지향하는 나로서는 고마운 일이지만 사실 많은 채식주의자들은 가공식품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그들은 보통 가공된 음식보다는 자연에서 나온 그대로의 야채와 과일을 즐겨 먹고 통곡물 위주의 식사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불가피한 상황이 생겨 라면을 먹어야 할 경우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 있다는 건 없는 것보다는 낫다. 심지어 맛있기까지 하니 얼마나 다행인지.


 채식주의자는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여러 분류로 나눈다. 과일과 견과류만 먹는 프루테리언(fruitarian), 육류, 생선, 유제품 등 동물에게 얻은 음식을 모두 먹지 않는 비건(vegan), 유제품은 허용하는 락토 베지테리언(lacto-vegetarian), 동물의 알만 허용하는 오보 베지테리언(ovo-vegetarian), 유제품, 동물의 알을 허용하는  락토 오보 베지테리언 (lacto-ovo-vegetarian) 유제품, 동물의 알, 생선, 해산물까지 먹는 페스코 베지테리언(pesco-vegetarian), 가금류까지 먹는 폴로 베지테리언(pollo-vegetarian), 가끔 육식을 먹는 플렉시테리언(flexitarian)으로 불린다. 뭔가 엄청 엄격하고 복잡해 보인다. 나는 집에서는 고기, 생선, 동물 알, 유제품을 요리하거나 먹지 않는다(라면 스프 제외). 남편이 해주는 대로 맛있게 먹어주어 다행이다. 하지만 밖에서는 해산물도 먹고 내 선택은 아니지만 간혹 고기를 먹을 경우도 생긴다. 나는 이도 저도 아닌 반쯤은 채식주의자라고나 할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