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경차와 경제

by 유자와 모과

‘차를 끌면 돈을 모으지 못한다.’ 한창 돈 공부에 몰두했을 때 경제 관련 책만 집중해서 1년 정도 읽은 때가 있다. 수많은 경제 전문가들이 책을 통해 공통적으로 조언한 것 중 하나가 차에 욕심을 갖지 말라는 거였다. 특히 결혼을 하지 않았거나 신혼부부라면 종자돈을 모으는 데 집중하는 게 부를 쌓는 첫걸음이라고 하였다. 자동차는 주택 다음으로 큰 금액을 지불해야 되는 물건이다. 대부분의 주택은 물가상승률에 맞춰 가격이 조금이라도 올라가지만 모든 자동차는 시간이 지날수록 가격이 떨어진다. 2012년 결혼할 당시 나와 남편은 종자돈을 조금이라도 모아 허름하고 작은 집이라도 사는 걸 목표로 세웠다. 2017년 의왕에 있는 남편 회사 근처에 있는 집을 사려 했을 때 지인과 동료들은 만류했다. 왜 시골에 집을 사냐고. 투자 개념으로 본다면 일리 있는 조언일 수도 있었지만 남편이 회사까지 걸어 갈 수 있는 거리였고 우리가 생각한 예산범위를 넘지 않았기에 흔들리지 않고 구매할 수 있었다.

우리는 집을 구입하며 자동차는 45살에 사기로 계획했다. 주택 대출 상환 방식을 원금 균등으로 설정하였기에 8년 후에는 대출 금액이 어느 정도 줄어 들거라 예상하기 때문이다. 남편 월급도 좀 더 늘어날 테니 그때쯤에는 자동차를 구입해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결혼을 하고 보니 차가 없는 지인을 찾기 힘들다. 누군가를 새로 알게 되면 그쪽에서는 당연히 우리에게 차가 있을 거라 가정한다. 그러다 우연히 차가 없는 걸 알게 되면 깜짝 놀라며 묻는다. ‘차는 언제 사려고? 안 불편해?’ 의왕으로 이사를 오니 서울에 살 때보다는 불편한 상황이 종종 생긴다. 시부모님은 10년 동안 배낭을 짊어지고 집에 내려오는 우리를 보다 못해 천만 원을 보태 줄 테니 중고차라도 한 대 사라는 제안을 하시기도 했다(마음만 감사히 받았다). 아직까지는 보험료와 세금을 내면서까지 차를 굴리는 게 부담이 된다.


새 차를 산다고 가정해보자. 배기량 1500cc 소형차를 산다고 해도 최소 2천만 원은 줘야 한다. 10년간 탄다고 하면 매달 17만원을 자동차 값으로 내는 셈이다. 또한 매년 내야 하는 자동차 보험료와 자동차세 가격을 합치면 90만원 정도로 매달 7만 5천원이 추가로 나간다. 소형 자동차 한 대가 주차장에 서 있기만 해도 매달 25만원이 빠져나간다. 아직 유류비, 부품 교체비, 수리비, 주차비, 세차비, 톨게이트 비용은 계산도 하지 않았다. 자동차를 굴리는 순간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처럼 돈이 조금씩 새어 나간다.

차가 꼭 필요하다면 경차로 시선을 돌려보자. 경차는 1960년대 일본에서 자동차 대중화를 위해 만든 개념이다. 일본은 차체 크기와 엔진 배기량을 규제하여 경제적이고도 실용적인 차를 만들기 시작했다. 1991년 출시된 한국 최초의 경차 티코는 일본 스즈키의 모델을 그대로 들여온 것이다. 1996년 정부가 과소비 억제를 위해 1가구 2차량 중과세 대상에서 경차를 제외하고 각종 공공요금을 감면해 준 덕분에 1998년도에는 전체 승용차 시장의 3분의 1을 경차가 차지할 정도로 전성기를 누렸다. 그러다 1999년에 1가구 2차량 중과세가 폐지되면서 경차판매가 차츰 축소되어 현재는 전체 자동차의 10%로도 되지 않는 수준이다.


990cc인 경차는 자동차 중 가격이 가장 저렴할 뿐만 아니라 보험료와 자동차세도 가장 적다. 정비소에 가도 시간당 공임비가 싸고 부품가격도 저렴하다. 경차는 세금 혜택도 많다. 새 차 구입 시 부여되는 세금인 취득세(자동차 가격의 2%), 등록세(자동차 가격의 5%), 특별소비세, 교육세 등이 면제된다. 개인이 운영하는 주차장이 아닌 공용 주차장을 이용할 때 경차는 50%를 할인해준다. 톨게이트 비용도 반값이다. 여행을 자주 다니거나 매일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사람에겐 가장 고마운 혜택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재 정부에서 전기차 보조금을 확대하고 경차에게 주던 할인은 없애겠다는 정책이 추진 중이라 걱정이 된다.


부자라면 비싼 차를 몰아도 아무 걱정이 없겠지만 나는 매달 차를 굴리는데 큰 돈을 지불할 여건이 되지 않는다. <팡세>에서 파스칼은 친절히 알려준다. ‘자기 자신을 알아야만 한다. 그것이 진리를 발견하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라 하더라도 그것은 적어도 자기의 삶을 조절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다행히 나는 내 처지를 잘 인식하고 있다. 남편 월급의 상당 부분이 주택 대출 상환금과 미국 우량주식을 구입하는데 들어가기에 차 값을 모으는 것이 쉽지 않다. 세상에는 멋진 자동차가 참 많다. 타고 싶은 고급차들이 있긴 하지만 45살이 되었을 때 나와 남편이 구입하게 될 첫 차는 예산에 맞춘 소박한 차가 될 것이다. 어쩌면 계속 붕붕이를 타고 다닐지도 모르겠다. 자동차보다 더 중요한 삶의 목표들이 남아 있기에.


만약 자동차를 산다면 능력 안에서 현금을 주고 사는 게 가장 좋다. 통장에 잔고를 채워 넣은 후 카드로 일시불 결제를 하면 카드 포인트가 생겨 일석이조다. 할부나 리스를 이용해 차를 구매하면 소비자는 자동차값 뿐만 아니라 이자도 내야한다. 무이자 할부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원하는 차를 무이자로 살 수 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자동차 구매는 항상 신중해야 한다. 부동산은 향후 가격이 오를 가능성이 많지만 자동차는 내 것이 되는 순간부터 가격이 떨어지는 일만 남았다. 시지프스의 돌도 아닌데 정성을 다해 자동차를 굴려도 차는 다시 원점으로 굴러 떨어져 야금야금 내 돈을 먹어치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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