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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갈 수 없는 곳, 그러나 여전히 남아 있는 것들

사라진 것들과 남겨진 마음들

by 온기

「네 번째 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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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잿빛이었다. 그 시절의 공기는 희뿌연 먼지로 가득했고, 나는 그 안에서 무언가를 붙잡으려 애썼다. 하지만 손을 뻗으면 사라지는 것들이었다. 관계도, 말도, 눈빛도. 무엇 하나 오래 머물러 주지 않았다.


어쩌면, 나는 늘 시간을 되돌릴 수 있기를 바랐다. 입안에서 흩어진 말들을, 되돌릴 수 없던 선택들을. 조금 더 천천히 걸었더라면, 조금 더 솔직했더라면,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 덜 후회하며 살고 있을까.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참지 않을 것이다. 더 이상 괜찮은 척하지 않고, 더 이상 스스로를 가두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 손을 내밀었을 때 밀어내지 않고, 나 역시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 것이다. 그렇게 했다면, 지금의 나에게 남아 있는 공허는 조금 덜했을까.


하지만, 바꾸고 싶지 않은 것도 있다. 무너질 것 같았던 밤을 나는 결국 지나왔다. 도망치고 싶었지만 도망치지 않았고, 버려지고 싶었지만 나 자신을 버리지 않았다. 그 모든 순간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의 나로 살아갈 수 없었을 것이다.


사라진 것들은 많지만, 남은 것들도 있다. 내 안의 깊은 곳에, 이름 붙이지 못한 감정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 그것들은 나를 아프게도 하지만, 동시에 나를 지켜주는 것들이기도 하다.


그러니 이제는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바꾸고 싶은 것은 내일을 통해 바꾸고, 그대로 두고 싶은 것은 마음 깊이 품은 채로. 그리고 언젠가, 아주 먼 미래에 내가 오늘을 돌아봤을 때,

"그때의 나는 최선을 다했어."

그렇게 말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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