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한 업무를 마치고 자리에 돌아와서 부지런히 자리를 치운다.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버릴 것만 많고 가져갈 물건은 없다. 원래부터 더러웠던 곳을 바라보면서 대충 치우고 싶은 마음도 약간 들지만 더 이상 내가 변명할 수 없는 공간에서 나의 이야기가 나올까 봐 부지런히 치운다. 미리 챙겨야 하는 짐과 버릴 짐들을 한번 구분해놓은 상태여서 빠르게 치우면 30분이면 치웠을 자리지만 일부러 느릿느릿하게 치웠다. 느릿느릿 치웠는데도 금방 자리가 치워져서 몇 시에 퇴근할지 고민이 든다. 보통 이 시간에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점심 메뉴를 고민했었다. 오늘은 회사 식당을 갈 예정이라서 평소 주제보다 훨씬 가벼운 퇴근 시간이 고민이다. 마지막 날이라서 일찍 퇴근해도 아무 상관이 없는데 괜히 미련을 가지고 퇴근 시간을 1시간씩 늘렸다가 다시 줄여 본다. 다른 사람이 보면 어이가 없겠지만 딱히 할 일도 없는데 정시퇴근을 해야겠다는 미련이 남아있다. 퇴근 시간에 대한 고민이 쉽게 결정되지 않을 것 같아서 어색한 나의 자리에 편히 앉았다. 깨끗이 정리된 나의 책상을 바라보니 입사했을 때 봤던 나의 책상과 닮아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이렇게 깨끗한 책상에 처음 입사를 했는데 일하면서는 뭐가 바쁘다고 이것저것 어지럽혀놓고 살았던 걸까. 주변을 둘러보니 입사의 느낌과 비교되면서 괜히 짠해진다. 30년, 40년 다니고 퇴직하는 우리 주변의 어른들은 얼마나 더 짠한 느낌이었을까. 뭐라고 말로 표현하기 힘든 느낌이다. 내가 나가고 싶어서 나가는데 후련하다는 느낌보다는 온갖 미련들이 나에게 와서 부딪힌다. 미련에 부딪힌 나의 피부들은 녹아내려서 회사에 달라붙는다. 문득 감정이 몰아친다.
정말 열심히 살았는데...
이 회사가 잘되기를 바랐는데...
곰곰이 생각해봐도 부끄러운 모습 하나 없이 성실하게 살았는데...
그런데 왜 내가 도망을 가거나 쫓겨나는 느낌일까...
왜 나는 온전히 나의 책임으로 이곳을 마무리하고 더 올바르고 더 열심히 살아야 하는 곳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떠나는 걸까...
괜히 답이 없는 감정들이 몰아치니 자리에서 일어나서 태섭이에게 갔다. 복잡한 감정 속에서 남아 있는 사람들은 정답을 찾기 바라면서 자기 자리에 찾아온 나를 바라보는 태섭이를 보면서 다시 얼른 열심히 이직 준비를 하라고 조언을했다.
“바쁘냐? 안 바쁘면 다른 공부도 좀 해. 더 좋은 대우받으려면 열심히 다른 공부도 해야지. 이 회사 안 망하면 좋겠지만 망할 수도 있잖아. 나중에 나이 들어서도 먹고 살려면 공부해야지.”
사실 이런 조언은 핑계고 태섭이가 나와 같은 결정을 할 때는 좀 더 후련하게 웃으면서 떠나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 태섭이가 진심인지 아닌지 모를 표정으로 말한다.
“저는 여기에 뼈 묻을 거라니까요. 점심이나 먹으러 가요.”
매 번 듣는 말에 웃으면서 내 자리로 돌아온다. 진짜 쓸데없는 생각은 좀 정리하고 점심이나 먹어야겠다. 뭔가 안도감이 든다. 저런 말을 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점에 과거의 8년이 잘못되기만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약한 믿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