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티타임 - 이직하는 이유

by crtlife noah

오후 티타임 - 이직하는 이유

마지막 날에 업무를 피해서 홀로 돌아다니는 게 좀 섭섭한 느낌이 들어서 커피 마시러 가자고 팀 내 동생들을 꼬셨다. 과거에 내가 바쁠 때 퇴직하던 형들이 왜 이렇게 커피 마시러 가자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는데 이제는 무슨 느낌인지 알겠다. 늘 있던 같은 공간에 있는데 나만 여기서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서운하고 섭섭하며 외로운 느낌이 마구 치밀어 오른다. 아침 커피 시간과 달리 다들 바빠서 예찬이만 따라온다. 다들 바쁜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서운하지는 않다. 오히려 너무 튀지 않게 커피를 마실 수 있어서 안심이 된다. 다 같이 올라가면 '여기 퇴사하는 사람 있어요!!!'라고 광고하는 느낌이 들어서 괜히 불편하다. 카페에 앉자마자 이직하는 회사에 대해서 예찬이가 물어본다.


“형, 이직하는 그 회사는 어때요? 돈은 많이 줘요?”


당연히 돈을 많이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예찬이의 눈빛을 보고 순간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민을 하다가 대답을 한다.


“돈 별로 안 줘. 연봉 많이 내리고 갔어. 작은 스타트업 회사야. 특이한 일을 하고 있는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어서 지원했어.”


예찬이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어본다.


“왜 그런 선택을 했어요? 연봉도 올리고 괜찮은 회사로 이직해야죠.”


예상한 질문을 하자. 오랜 고민 끝에 결정되었던 나의 대답을 예찬이에게도 말해준다.


“남들이 좋다는 곳만 쫓아다녀서 이번에는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곳에서 일해보고 싶었어.”


어릴 때부터 남들이 좋다는 곳은 한 없이 쫓아다녔던 기억이 있다. 영어가 배워두면 좋다고 해서 영어학원을 다니고, 고등학교는 명문고등학교를 가야 좋다고 해서 명문고등학교를 갔고, 대학교는 서울로 가야 하는 게 좋다고 해서 서울로 왔다. 그 외에도 남들이 '이렇게 해야 한다!'라는 부분을 정신없이 쫓아왔던 기억이 있다. 지금 들어온 회사도 주변에서 괜찮은 회사라고 추천을 해서 오게 되었다. 내가 더 이상 발버둥 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 전까지는 남이 좋다는 곳을 쫓아다녔다는 생각을 해보지 못했다. 현재 회사에 들어와서 안정적인 월급이 들어오고 일도 익숙해져서 능숙하게 맡은 업무를 하게 되면서 회사의 불만족스러운 부분이 보이기 시작했다. 회사에 느껴지는 불만이 계속 쌓이다 보니 문제가 무엇인지 조금씩 조금씩 과거를 되감아 가면서 원인을 찾아보았다. 처음에는 다니고 있는 회사의 문제점과 한계로 시작되었지만 계속 고민하다 보니 '회사가 이런 모습을 가질 수밖에 없게 만든 세상이 문제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다. 쉽게 바꿀 수 없는 세상의 문제를 생각하다 보니 현재의 길로 오게 만든 허술한 나라는 존재가 보였다. 여기까지 오게 만든 선택은 내가 했지만 나의 선택이 내가 원하는 부분은 아니었다. 선택의 후회는 하지 않지만 원인은 나였다. 이러한 선택의 연속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깨달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시대의 조명을 받는 개발자도 잠시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남들이 좋다고 하는 선택이 아닌 내가 좋다고 하는 선택을 해보려고 한다.


예찬이는 나의 대답을 이해하지 못한다. 왜 그런 좋지 않은 선택을 했는지 의문을 가지며 차라리 지금 회사에 더 남아있다가 더 좋은 조건의 회사에 가라고 말한다. 예찬이가 그런 말을 해주니 오히려 내가 잘 선택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기분이 좋아진다. 예찬이가 이 말을 해주기 전까지는 이 선택이 맞는지 막연한 공포에 휩싸여있었다. 처음에는 올바른 선택을 위해 드디어 탈출한다고 생각했는데 점점 퇴사일이 다가올수록 이런 선택을 해도 될까라는 공포감이 들었다. 100세 시대에 아직 살 날이 더 많은데 지금 실수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막상 예찬이가 더 남아있으라고 말하니 내가 왜 수많은 불만이 생겼는데도 지금까지 회사에 버티면서 다녔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이유를 알게 되니 떠나는 것보다 현재의 이유로 다시 남는 게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을 잃은 아이가 길을 모르겠다고 주저앉아서 울고만 있으면 아무도 도와주러 오지 않는다. 길을 찾기 위해서는 주저앉아서 울기보다는 일어나서 행동을 해야 한다. 지금 선택한 길의 끝에 뭐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가만히 있으면 우는 행위 외에 스스로 할 수 있는 행동은 없다.


사실 예찬이가 말하는 연봉을 올려주는 대기업에 갈 수 있었다. 지금 가는 작은 회사 외에도 대기업 회사에 지원해서 합격을 했다. 하지만 난 작은 회사를 선택했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어이없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현재의 회사와 비슷한 이야기가 이어질 대기업이 싫었다. 대기업의 삶은 너무 잘 상상이 간다. 너무 잘 상상이 가는 부분이 뭐가 문제냐고 따질 수 있겠지만 비슷한 선택을 해서 똑같은 실수를 하나 더 늘리고 싶지는 않았다. 지겹도록 늘 의미 없는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면 나의 삶은 흐르고 있는 걸까? 우리는 가만히 놓여있는 돌을 보고 돌이 삶을 살아간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큰 의미 없는 하루살이의 움직임이더라도 가만히 놓여 있는 돌보다 나은 삶이 아닐까? 예찬이와 같이 커피를 마시다가 혼자 깊은 딴생각에 빠졌다. 창 밖을 보니 퇴근할 시간이 다가온다. 아무리 설명해줘도 납득을 못하는 예찬이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 싶어서 마음에 없는 말을 했다.


"다녀보고 별로면 대기업으로 이직을 다시 할 거야."


마음에 없는 말을 듣고서야 예찬이는 납득이 갔다는 표정을 짓는다. 예찬이의 업무 시간을 너무 뺏는 게 양심이 찔려서 바쁜 업무도 없지만 서둘러 카페에서 내려왔다. 예찬이 덕분에 마음의 정리를 위한 소중한 티타임을 가졌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