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부장님 면담 - 이직하는 이유

by crtlife noah

본부장님 면담 - 이직하는 이유

예찬이와 이직하는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내려오니 며칠 전에 본부장님과 진행했던 면담이 생각났다. 그 당시에 본부장님이 면담을 요청해서 당황스러움과 만족스러운 느낌이 같이 들었다. 나가기로 확실히 마음을 먹은 상태여서 당황스러운 느낌이 들었고 회사가 아직 나를 필요로 하는 것 같다는 느낌에 만족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괜히 '붙잡기 위해서 높은 연봉을 제안하면 어떡하지?'라는 헛된 생각을 하다가 정신을 차리고 머릿속에 두 가지 목표를 떠올렸다.


첫 번째 목표는 회사의 잘못된 부분을 최대한 효율적인 전달하는 것이고,

두 번째 목표는 이직하는 이유를 최대한 부드럽게 전달하는 것이었다.


두 가지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머릿속이 복잡한 상황에서도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해주는 상황도 주기적으로 떠올랐다.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해줘도 남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는데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을 보니 사람 마음이 참 영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 티타임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내가 떠나는 이유는 보상과 상관이 없다. 그런데 더 좋은 보상 앞에 고민하는 내 모습에 스스로가 너무 한심했다.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싶은 것은 사람의 본성일까? 아니면 나의 본성일까? 안정 장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세 번째 목표를 정했다. 세 번째 목표는 보상에 대한 제안을 못하도록 명확한 나의 마음을 전달하는 것이었다. 목표를 세 가지나 생각하고 나니 본부장님과의 면담을 기다리는 동안 머릿속에는 수많은 시나리오들이 펼쳐지면서 점점 지쳐갔다. 아무리 생각해도 목표들을 모두 만족시키는 것은 쉽지 않아 보였다. 그래서 일단 첫 번째 목표에 집중하기로 했다. 회사의 잘못된 부분을 전달하는 방법에 대해서 고민을 한참을 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마지막 면담을 하고 나면 좋게만 끝나지는 않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더 이상 시나리오는 생각하지 않고 회사에서 알고 있는 문제들을 정리하면서 본부장님 면담을 기다렸다.


약속한 시간이 오기 5분 전에 미리 본부장실 근처에서 기다렸다. 자리에 앉아 계신 것은 확인했지만 괜히 정확한 시간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노크를 하고 들어갔다. 반갑지만 부담감이 느껴지는 얼굴로 본부장님이 나를 맞아주셨다. 나도 본부장님이 부담되지 않도록 평소처럼 미소 지으면서 잘 지내고 계셨는지 안부를 물었다. 본부장님과 오랜 시간 함께했지만 이렇게 편한 대화를 직접적으로 하는 것은 처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마주칠 때마다 반갑게 서로 인사하면서 여지를 서로 주었지만 서로가 한걸음 더 다가가 대화하기는 쉽지 않았다. 문득 내가 좀 더 다가갔다면 좋았을 텐데 라는 생각도 들었다. 서로 어색하게 웃으며 알 수 없는 긴장감 속에서 본부장님이 퇴사하는 이유를 물어봤다.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직접적인 질문 속에 도망가는 본부장님의 모습이 보였다. 본부장님은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이 질문을 하였을까? 본부장님도 사람들에게 많은 상처를 받고 현실적 어려움 속에 외롭게 싸웠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 온 사람들은 얼마나 함부로 본부장님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고 갔을까? 괜히 본부장님이 신경 쓰이면서 최대한 좋게 이야기를 전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부장님이 많이 들었을 퇴사 이유를 하나씩 꺼냈다. 처음으로 꺼낸 이야기는 애사심이 없는 사람들을 보면서 상처받는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이전에 회사에 불만이 있는 사람들은 회사에 애정이 있어서 바꾸고 싶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제 남은 사람들은 이전 회사 사람들의 불만만 듣고 자라서 애정은 없고 증오와 불만만 남은 사람들이었다. 그 사람들은 회사를 어떻게 이용하고 어떻게 여유롭게 일하다가 어떻게 이직할지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변화는 원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언젠가는 떠날 예정이고 그런 모습을 숨기지도 않는다. 너무 근본적인 이야기를 했더니 본부장님도 당황하신 것 같다. 본부장님의 당황하는 모습을 보니 답이 안 보이는 이 문제들이 본부장님에게 말하면 해결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나의 기대감이 사라졌다. 그 외에도 자잘한 회사에 있는 많은 문제점들을 이야기했다. 많은 문제점에 대해서 근본적인 해결은 안 되더라도 문제를 덮어볼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주셨다. 본부장님은 나보다 훨씬 예전부터 이런 문제를 고민하신 것으로 추측되고 많은 상처로 인해서 더 이상 적극적인 대응을 원하지 않아 보였다. 나에게 해주는 설명은 적극적이었지만 그 방법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단순한 수동적 대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면 애사심이 없다는 이야기를 하였지만 단순 업무를 많이 하면서 사람들이 지쳐서 그런 것으로 보이고 그런 사람들은 늘 존재한다고 말하셨다. 애사심의 문제는 단순 업무에 대한 반복이 원인이기 때문에 업무 자동화 기능을 넣어서 단순 업무에 대한 반복이 해결되면 애사심이 돌아올 것이라는 답변이었다. 일단 업무 자동화가 변화를 이끈다는 것도 와닿지는 않았지만 옛날부터 시도했지만 실패했던 프로젝트를 어떻게 성공시킬 생각인지도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현재 떠나는 입장에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도움은 의문보다는 응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본부장님의 의견들에 대해서 좋은 의견이라고 응원을 해드렸다.


회사의 문제 이야기를 어느 정도 말하니 이직하는 회사에 대해서 물어보셨다. 특히 연봉 협상과 회사의 규모에 대해서 물어보셔서 연봉을 낮추고 가고 스타트업에 간다고 했다.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물어보셔서 조건보다는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 정했다고 했더니 본부장님이 한숨을 쉬셨다. 한숨 속에 두 가지 의미가 같이 느껴졌다. 첫 번째는 조건 때문에 떠나는 게 아니라서 회사에 남으라고 더 좋은 조건을 제안해도 의미가 없다는 점과 두 번째는 같이 일했던 아끼는 동료가 이직을 하더라도 더 조건을 잘 맞추고 갔으면 하는 미련으로 예상됐다. 특히, 본부장님이 조건에 대해서 아쉬워하는 이유는 과거 유리한 연봉 협상에서도 단순히 빠르게 사인하고 나오는 나를 많이 봐와서 그럴 것이다. 아쉽게도 퇴직하는 날이 되어서야 그러면 안 된다는 조언을 해주셨지만 사실 나도 알고 있었다. 오히려 내가 짖지 않는 개에게는 먹이를 주지 않는다라고 항상 신입이 들어오면 말해줬다. 하지만 나는 짖어야만 먹이를 주는 주인을 따르고 싶지가 않았다. 그래서 알고 있지만 짖지 않았다. 이런 복잡한 생각이 들었지만 나를 생각해서 말해주는 본부장님의 마음이 느껴져서 복잡한 생각을 설명하기보다는 앞으로 더 신경을 써보겠다고 말을 했다.


본부장님은 더 이상 나에게 할 이야기가 없어지니 언제든지 편할 때 회사에 돌아오라고 말씀을 해주셨다. 그 말을 듣자 마음속이 울컥했다. 정확히는 말을 들었을 때 울컥한 감정이 터졌고 본부장님과 면담이 진행될 때마다 마음속에 파장이 지속적으로 커지고 있었다. 면담 시간 동안 계속 본부장님에게 전달하려고 했던 나의 특정 목표를 가진 이야기들은 실제로는 나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미련들이었다. 미련들을 다 쏟아내고 본부장님 방에서 나오니 후련함보다는 서운한 느낌과 아쉬움이 끝없이 밀려왔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회사를 좋아했었음을 느꼈다. 겉으로는 아무런 표시가 나지 않지만 나의 모습을 누군가에 들킬까 봐 빠르게 자리로 돌아가서 바쁜 척을 했다. 내가 단순히 생각하는 이직의 이유는 빙산의 일각이고 실제로는 너무 복잡한 내용이 잠겨있다는 생각을 했다. 이직하는 이유를 물어보는 사람들 또는 이직하는 사람들은 이런 복잡한 부분을 인지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