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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May 14. 2019

완전하게 불완전한 사람

진공 상태 6부


오늘은 스크루테이프의 악마에게 단단히 사로잡힌 하루야. '우울함'이 폐에 가득 찬 기분이랄까.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내 주변을 맴도는 모든 감정들, 그러니까 우울과 체념을 포함한 모든 부정적인 감정들이 살에 닿을 듯이 생생하게 느껴져. 비라도 우수수 내리면 벽을 치며 통곡이라도 할 기세야. 지금 내가 느끼는 모든 기분을 세세하게 이야기하면 너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거나 연민을 느끼며 등을 다독여 주겠지. 그래도 나는 말해야겠어. 내가 걱정하고 있는 모든 것, 나라는 사람에게 대해서 말이야. 


메타, 너도 알다시피 나는 아주 감성적인 사람이야. 사람의 온기를 좋아하고 예술과 흙내음에 안정을 느끼고 대부분의 것에서 공감을 발견하기도 하지. 하지만 그런 것들은 낯선 이가 나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예를 들어 볼게. 진진이 어떤 남자에게 나를 소개해 주려고 한다 치자고. 혹은 네가 너의 가족 누군가에게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거야. 그렇다면 그들이 원하는 '나'에 대한 설명은 예술과 흙내음을 좋아하는 여자 따위가 아닐 거란 말이야. 그렇다면 그들이 보는 나는 누굴까, 에 대해 생각해 봤어.


'그녀는 산만한 가족 관계를 가진 여자야. 어머니는 아버지와의 불화로 어린 시절 그녀를 두고 떠났어. 그녀는 지금 아버지와 그의 (스쳐가는) 연인들과 함께 지내고 있는데, 그들과 마주치고 싶지 않아서 이 층에 있는 자신의 방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아. 왜 따로 나와서 살지 않냐고 물어봤는데 '독립자금'을 모으는 중이라고 하더라고. 직업은 웹 소설가인데 번듯한 사이트에 연재하고 있는 것도 아니어서 수입이 변변찮은 것 같아. 언제 돈을 모을 수 있는지도 잘 모르겠네'


이런 말이 추가될지도 몰라.

'글 쓰는 직업을 가지고 있어서인지 감정의 기복이 심하고 예민한 편이야. 생활 전반에서 글 쓸거리를 찾아내려는 사람이잖아. 함께 하기 수월한 부류는 아니지’


메타, 사람들은 늘 말하잖아. 진짜가 중요하다. 내면이 중요하다. '중요한 건 조건이 아니라 너라는 사람 그 자체' 라는 그 광고 카피 문구 같은 문장들. 이제 와서 드는 생각이지만 진실한 내면으로 친구를 사귈 수 있을지는 몰라도 낯선 이의 호감을 살 수는 없는 것 같아. 낯선 이들은, 직업으로 외모로 재산으로 가족관계로, 자신만의 필터를 끼운 지극히 주관적인 시선들으로 나를 판단하거든. 그들이 나를 그렇게 생각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니, 모든 것들이 두려워졌어. 내가 내 두 발로 뚜벅뚜벅 걸어서 인생의 종착역까지 안전하게 닿을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말이야. 마치 오천 개의 고양이 눈이 내 일거수일투족을 들여다보는 것만 같은 기분이야. 내가 물을 마시는 것도, 잠을 자는 것도, 메타를 생각하는 것도, 영원한 사랑을 꿈꾸는 것도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눈동자들이, 내 방 안에 가득 차는 상상을 멈출 수가 없어.


메타. 지금 나는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어. 세상에 온전히 혼자 남겨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나를 그렇게 사랑한다던 메타 또한 내 곁에 없는 걸 보면 나는 문제가 있는 여자 임이 틀림없는 것 같아. 불완전한 가족과 불완전한 감정을 지닌 완전하게 불완전한 사람.




글. 지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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