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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별 Apr 01. 2022

임대인과 싸움 시작

임대인과의 싸움 1화 


*이 글은 임차인 입장에서 쓴 글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전세제도의 장단점> 

1. 내가 경험해본 전세는 장단점이 뚜렷한 제도다. 우선 월세에 비해 매달 나가는 돈을 아낄 수 있다. 예컨대 19세에 독립한 나는 10년 넘게 월세 30만~50만원을 내고 살았다. 30만원씩만 쳐도 1년에 360만원이다. 10년으로 계산하면 3600만원을 오롯이 월세로만 쓴 셈이다. 그런데 방 상태도 좋지 못하다. 내가 살았던 방들은 간신히 내 몸 하나 누울 수 있는 정도 크기였다. 침대가 들어갈 공간도 없었고 이부자리와 옷걸이를 두면 꽉 차는 방들이었다. 

반면 전세는 매달 나가는 지출을 줄일 수 있는 데다가 더 좋은 상태의 집에서 지낼 수 있다. 지금 우리 집 전세금은 1억9900만원이다. 매달 이자로 나가는 금액은 25만원정도다. 월세 50만원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이다. 집은 실평수 9평 정도로, 방 2개에 거실까지 달린 집이다. 신축이라 깨끗하고 '풀옵션'이다. 


하지만 단점도 분명하다. 전세는 사인 간 계약이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과 적게는 몇천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에 이르는 돈을 주고 집을 점유하는 것이다. 임차인과 임대인 입장에서 모두 여러 가지 리스크가 있을 수밖에 없다. 최근 보증보험 확대로 미리 위험에 대비하는 경우도 많지만, '깡통전세' 사기는 여전히 임차인이 걱정할 만한 부분이다. 임대인이 돈을 안 준다고 버티면 임차인은 곤란한 상황에 빠지기 십상이다.

(이 사적인 계약을 보증기관이 보증을 해주고 은행이 전세금을 대주는 전세대출은 갭투자로 이어져 집값을 오른다는 비판도 받는다.) 



<집구매 이후 전세계약을 해지하는 과정> 

2. 지난해 12월에 생애 첫 집을 구매했다. 내년쯤 결혼 예정인 데다가 보고 있던 집이 좋은 매물이 나와서 얼른 사버렸다. 내 잔금일은 4월 말이었고, 보증금에 들어가 있는 돈을 빼서 잔금을 납부해야 했다. 잔금일로 따지면 전세 기간이 1년 2개월 남은 상태였지만 미리 말하고 복비를 대신 내면 당연히 빼줄 줄 알았다. 게다가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해서 살고 있던 터라 임대인 입장에서 전세금을 올릴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 착각이었다. 임대인은 잔금일에 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다고 말했다. 6월 이후에 나가거나 아니면 2년을 살라고 했다. 임대인은 민간임대사업자였다.(나는 이번 일이 있기 전까지 임대인이 민간임대사업자인지 몰랐다.) '민간임대주택에관한특별법'에 따르면 민간임대사업자는 임차인이 바뀌더라도 임대차계약이 1년이 지나지 않았을 때 보증금을 올릴 수 없다. 쉽게 말하면, 내가 보증금을 빼 달라고 한 4월 말은 계약한 지 1년이 지나지 않아 임대인이 보증금을 올릴 수 없다. 하지만 6월 이후에 보증금을 빼주면 기존 보증금에서 5%를 다시 한번 올릴 수 있다. 995만원이다. 그래서 임대인이 6월 이후에 나가라고 말한 것이다. 


보증금을 받아 잔금을 내야 하는 상황이라 설득의 과정을 거치려고 했다. 계약서상 임대인은 내가 거주하는 약 3년 동안 한 번도 연락이 닿은 적이 없다. 전화기는 항상 꺼져있었다. 대신 부동산컨설팅사 대리인이 있어 그 사람과 연락을 주고받았다. 임대인의 엄마와도 한 번 통화했다. 사정을 설명하려고 했으나 소리를 지르고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잔금을 못 치르면 계약금 1억원을 날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임대인과 임차인의 힘의 불균형> 

3. 작년 12월만 해도 새로 법이 만들어진지 얼마 안 된 터라 계약갱신청구권 행사 이후 중도해지에 대한 사례가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내가 온갖 부동산 카페와 구글 등을 검색해도 나오는 사례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우선 법을 찾아봤다.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르면 '갱신되는 임대차의 해지에 관하여는 제6조의2를 준용한다'고 적혀있다. 이 법 제6조의 2는 묵시적 갱신의 경우 계약의 해지 조항이다. 이 조항은 '임차인은 언제든지 임대인에게 계약해지를 통지할 수 있다. 해지는 그 임대인이 그 통지를 받은 날부터 3개월이 지나면 그 효력이 발생한다'고 정한다. 


이 조항을 보고 법률구조공단과 변호사 지인들, 국토교통부 등에 문의했다. 다들 처음에는 "안된다"고 했다가 이 조항을 이야기하니 "해지가 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새로 만들어진 법이라 다들 잘 모르는 분위기였다. 


임대인 대리인한테 다시 "이 사실을 아느냐"고 물었다. 법이 바뀐지 얼마 안 돼서 대리인과 임대인 모두 모르고 '버티기'에 들어간 걸까라고 생각해서다. 그랬더니 돌아온 대답 취지는 이랬다. "알아서 하셔도 되는데 중요한 건 법적으로 간다고 해도 불리한 건 주인이 아니다. 뭔가 착각하시는 것 같은데 세입자가 더 불리하다. 주인분이 보증금을 안 내주면 결론은 소송을 해야 돼. 소송 가면 최소 1년 이상 걸린다." 


협박당한 기분이었다. 법적으로 권리가 있는 건데 왜 임대인 측이 저렇게 당당하게 나오는지 알 수가 없었다. 종종 임대인들이 모여있는 부동산 카페에 가면 '우리가 살게 해 주는데' '내 집인데' 이런 말을 많이 한다. 누가 보면 공짜로 살고 있는 줄 알 정도다. 임차인들은 돈을 주고 사는 거다. 나는 9평짜리 집에 1억9900만원이라는 보증금을 냈다. 그 돈은 내 돈이고, 나는 권리에 따라 그 돈을 돌려달라고 요구할 권리가 있고, 임대인든 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 


게다가 이 집은 전형적인 '갭투자' 집이다.(못마땅하면 너도 갭투자해라, 이런 반응은 사양한다.) 매매가는 없지만 2018년 당시 초기 분양가가 1억5500만원이었다. 임대인은 전세금을 받아서 매매대금은 물론 취득세까지 내고도 남았을 정도다. 남의 돈(세입자의 보증금)을 받아서 집을 사놓고 그 돈을 자기 돈인 것처럼 돌려주지 않는 상황이다. 



<소송을 결정하기까지> 

3. 결국 난 법적인 절차를 밟기로 했다. 내 전세 임대인에게도 화가 났지만, 바로 직전에 부모님이 새 집으로 이사를 갈 때 직전 임대인한테 당한 일이 생각나서다. 당시 임대인 갑질로 부모님이 마음고생을 꽤 했다. 법적 절차를 밟으라는 말에 엄마는 "나도 화난다. 그런데 돈을 안 주면 당장 잔금을 못 치를 수도 있는데 그래도 비위를 맞춰야지"라고 말했다. 


그래서 이번엔 내가, 엄마가 못한 일을 하기로 했다. 잔금에 필요한 9000만 원은 대출과 지인 찬스 등으로 간신히 구해놨다. 나는 이렇게 전전긍긍하는데, 임대인은 소송으로 가도 크게 손해를 볼 게 없을까 봐 걱정이긴 하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임대차3법'이지만, 그 제도가 현실화되는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를 해결하면서 조금씩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맨날 외치는 게 '재산의 자유'다. 사적 재산권이 보장되는 나라에서 '내 집인데 왜 내 맘대로 못하냐'는 주장. 그런데 의식주 중 하나에 해당하는 '주거'는 우리 삶의 꼭 필요한 부분이다. 안정적인 주거 환경을 보호받는 건 시민들의 기본적인 권리라고 생각한다. 


다음 편에선 임차권등기명령 신청과 임대보증금 지급명령을 신청한 후기를 쓸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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