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aisie Nov 28. 2020

Homo Avoidancus (회피하는 인간)

나도 모르는 의외의 나는, 아직 많이 남은 것 같아요

지금의 내가 2015년으로 돌아가 다시 노트에 글을 쓸 수 있다면 아마 대부분을 욕으로 채울 것이다. 당시의 나에게 얼마나 지옥 같았으면, 기억을 통째로 들어내는 극단적인 방어 기제를 썼을까. 그 정도로 트라우마를 만들어준 대상들에게 하고픈 욕을 실컷 퍼붓고, 엄청난 분노를 표출하는 글로 채우고 싶다. 희대의 데스노트-어차피 나만 볼 건데 무슨 쌍욕을 써놓든, 악담을 써놓든 알게 뭔가-같은 것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그리고 감정의 앙금들이 가라앉고 마음이 차분해진다면, 이 이야기를 꼭 적어 놓고 싶다. 많은 시간을 기억하지 못하는 건 내가 나약해서도 아니고, 내 잘못도 아니라고. 그저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충격과 공포였기에 이런 반응은 자연스러운 거라고, 모두 괜찮다고 나를 다독이고 싶다. 2015년의 나와 시간의 바깥에 서 있을 2020년의 나를 위해서. 그리고 잊지 않고 조금은 칭찬해주고 싶다. 이렇게 글쓰기를 통해서 무엇이라도 정리하고 남겨두려고 한 건, 지금까지 해온 일들 가운데 가장 잘 한 일일지도 모른다고.

살면서 단 한 번도 내가 글쓰기를 시도해볼 거라는 생각은 개미 눈물만큼도 해본 적이 없다. 학창 시절 글쓰기 수업 때마다 선생님께 심히 걱정스럽다는 평가를 받곤 했기 때문이다. 대개는 서론, 본론, 결론의 구조를 기반으로 책을 인용한다던가, 경험담 같은 것을 추가하여 풍성하게 글을 전개해 나가는데, 나는 너무 요점 밖에 없는 빈약한 글을 쓴다는 것이 문제였다. 달랑 나의 주장과 그에 대한 근거만 뙇 하고 던져 놓는 나의 글은 좋지 않은 글이라고 하셨다.

이전의 나는-지금의 나도 여전히 노력 중이지만-잘 못 한다는 평가에 참 쉽게 위축되고 포기해 버리는 극단적인 사람이었다. 선생님의 평가 한 마디에 나는 스스로가 글쓰기는 젬병인 사람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다. 생각나는 대로 끄적거리는 일마저 담을 쌓고 살았다. 안 그래도 매사 자신감이 없는 나인데 굳이 못한다는 일을 하면서 나를 괴롭힐 이유는 조금도 없었다. 당신은 어떠하다고 단정적으로 말하거나 함부로 평가하면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그런 내가 자발적으로 글쓰기 모임에 찾아가 글을 쓰고 있다. 그것이 좋은 글이다, 아니다를 떠나 참 용기 있는 시도라고 생각한다. 변화를 만들어 내기 위해 새로운 일에 도전하다니, 정말 나.답.지.않.은 선택이었다. 아마도 글쓰기를 기점으로 무언가를 정리하고, 과거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들을 시작한 것일 테다. 실제로 별 볼 일 없는 작은 시도가 사람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는 법이니까.


비록 나는 인지하지 못했지만 나의 무의식은 절박함이 담긴 조난 신호를 놓치지 않았다. 덕분에 생각지도 못했던 글쓰기에 마음을 쏟게 되었다. 나의 글을 읽고 쓰다 보면 확실히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제법 다르다는 것이 느껴진다. 꾸준히 쓰고  쓰다 보면 내가 보지  했던 내가  녹아 나오지 않을까. 나도 모르는, 의외의 나는 아직 많이 남은  같다.



어쨌든, 감사일기

글을 써내려 가면서 막연한 과거로부터 벗어나 글 쓰는 현재에 집중하는 순간들이 점점 많아졌다. 그것이 원동력이 되어 뒷걸음질 치지 않고 앞을 향해 걸어갈 수 있는 나로 변해 왔다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밑도 끝도 없이 나를 책망하거나 실패가 두려워 시도조차 하지 않는 나는 아니니까. 참 다행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Homo Avoidancus (회피하는 인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