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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순 Jun 09. 2021

나는 왜인지 숨고만 싶어집니다

                

B. 


내 영혼이 더러워진 것 같아요.



아무리 세게 몸을 벅벅 닦아봐도

좋은 향기 속에 날 숨기고

멋진 옷으로 날 치장해도

이 더러운 영혼의 악취는 끊임없이 날 괴롭히네요.

거울 속의 나는 형편없어요.


가끔 당신의 맑은 눈동자와 눈이 마주치면

한없이 부끄러워지고 당신이 부러워집니다.

괜한 자존심에 무심히 눈도 돌려보고, 

상냥한 말들에 대꾸하지 않고, 

잘 가라는 그 흔한 인사조차 하지 않고 떠날 때가 있죠.


언젠가 당신이 나에게 “너의 차분함이 좋아. 너 옆에 있으면 조심스러워져. 함부로 다가갈 수 없는 아우라가 있는 것 같아. 난 그게 참 멋지다고 생각해”라고 말한 적이 있지요.


당신은 나의 찌질함을 차분함, 아우라, 멋짐으로 오해하고 계시더라고요.


그날 내 영혼이 더 부끄러워졌어요. 


이런 내 영혼을 어찌해야 좋을까요

당신의 눈을 하루만 빌리고 싶습니다.

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나를 바라보고 싶어요.


매일 멍한 눈으로 거울 속을 들여다보는 일

무섭고 끔찍합니다.


나도 웃던 때가 있었는데 기억이 잘 나질 않습니다.


내가 문제인 거겠죠. 당신은 그러지 않잖아요.

맞아요 이건 내 문제예요. 


당신을 만나고 돌아온 날 나는 그냥 숨고 싶어졌어요. 세상에서 제일 큰 이불을 끌어다가 그 안에 박혀 아무것도 보지 않고 아무 소리도 듣지 않은 채로 그렇게 백 년이 지나고 이백 년이 지나 조용히 소멸되기를 바랄 뿐이에요.


나 참 형편없네요.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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