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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고 파일럿 Jun 17. 2021

다낭에서의 뒷방 부기장님

다낭 이야기 하나

다낭으로 비행 갔을 때의 일이다.


그때 나는 아직 훈련을 받고 있던 훈련 부기장이었다. 일반적인 비행이라면 칵핏에 기장님과 부기장 이렇게 두 명이 근무한다. 하지만 나처럼 훈련생이 교육받는 훈련비행의 경우에는 칵핏에 총 세 명이 탄다. 교관 자격으로 근무하시는 기장님과 훈련생인 나, 그리고 Safety pilot으로서 근무하시는 기성 부기장님 한 분. 훈련 부기장인 나는 저시정 상황이나 혹시 모를 비상상황에 적격 한 자격으로서 근무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일명 '뒷방'이라고 불리는 기성 부기장님이 칵핏 뒷자리에 동승을 한다.


낯설기만 한 ‘뒷방’이라는 단어는 사실 나조차도 그 어원을 알지 못한다.

마치 구전동화처럼 내려온 말이기에.

그럼에도 모두가 알고 있는 이 단어의 사용법은 다음과 같다.


동기들과 대화를 할 때는, "오늘 뒷방 누구셔?"

뒷방 부기장님에게 연락을 드릴 때는, "오늘 제 뒷방 타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쩌고 저쩌고."

등등.


추측컨데, 칵핏 뒷자리에 탑승을 하시기에 뒤쪽의 방(실제로 방은 없지만서도)에 있다는 의미로 뒷방이라고 하는 것 같다. 뭐 중요한 건 아니지만.


그리하여 다낭을 갔을 때도 교관님과 뒷방 부기장님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 비행기를 탔고 그날 스케줄에 동행하신 뒷방 부기장님은 조별과제를 혐오하는 어느 사회성 떨어지는 회계학과 출신과는 다르게 유쾌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었다.


약 4시간 40분 정도의 시간이 걸려서 도착한 다낭의 첫인상은 맛있었다. 다낭이 맛있다는 게 아니라, 고개 돌려 눈에 들어오는 식당 하나하나가 다 맛집 같아 보였다. 우선 공항에 도착하면 승무원들을 계약된 호텔로 데려가기 위해 버스 한 대가 오는데, 이를 보통 크루 버스라 부른다. 교관님과 부기장님, 사무장님을 포함한 객실 승무원분들 네 분과 나, 이렇게 총 7명이 크루 버스를 탔다. 크루 버스를 타면 보통 밀린 카톡에 답장을 하거나 기내에 있었던 일들에 대한 수다가 이어지는데, 나는 그저 바깥을 구경하는 데에 정신이 팔려있었다. 해외여행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사람처럼 크루 버스를 타고 호텔로 가는 길 내내 밖을 보았다. 길거리에는 내가 좋아하는 열대 과일 매대들이 즐비했고, 보이는 식당들은 하나같이 다 맛있는 음식을 팔 것만 같았다. 지금이라도 당장 크루 버스에서 뛰어내려 골목골목들을 샅샅이 돌아다니며 여행을 하고 싶었다. 해외여행을 안 해본 것도 아니고, 심지어 중국과 미국에서 각각 3년, 2년씩 살았던 나인데도 이런 낯선 풍경에서 오는 두근거림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일이었다.


생각보다 호텔에 금방 도착하였고, 버스를 타고 왔을 때 타올랐던 열정과는 다르게 비행하는 동안 지쳐있던 비루한 내 몸뚱이는 그대로 지금 당장 세상에서 가장 편한 침대 속으로 파고들어 누웠버렸다.



'띠리리리리리'



꿈속에서 누군가가 전화를 걸고 있다.



'띠리리리리리'



아무나 전화 좀 받지.



'띠리리리리리'



에라이 내가 그냥 받아야겠다.


“Hello?"

"기장님?"


응?

뭐지?


"누구세요?"

"아 오늘 같이 비행 온 XXX인데요~~"


꿈이 아니었다.

오후 1시쯤, 내 호텔 방의 전화벨이 울리고 있었다.

뒷방 부기장님이었고, 같이 식사를 하러 가자고 하셨다.


"아 너무 좋죠. 30분 후에 내려갈게요."

"그럼 이따 봅시다잉~"


어느 정도 잤는지는 모르지만, 이 정도의 체력이면 바깥을 구경하고 오기엔 충분했다. 서둘러 일어나 준비를 마치고 30분 정도 후에 우리는 로비에서 만났다.


곧이어 로비로 내려온 뒷방 부기장님은 나를 발견하고 성큼성큼 다가와 내게 물었다.


"다낭 처음이에요?"

"네 처음이에요."

"아이 그럼 나가서 쌀국수 무야지."


그래, 다낭은 쌀국수지. 조종사 돼서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해외를 자주 나오게 됐는데 호텔에서 쉬고 있을 수만은 없다. 아무리 자세하게 여행 후기를 묘사한 책 보다 비행기 삯이 100배나 더 비싼 건 이유가 있다. 보고 듣고 만지고 먹고 놀아야 한다. 다낭을 처음 온 나와는 다르게 뒷방 부기장님은 다낭을 제집처럼 드나드신 위대한 분이었다. 뒤돌아서 걸어가는 뒷방 부기장님의 어깨는 그야말로 위풍당당했다. 아아, 멋있다. 무지몽매한 이 훈련 부기장을 쌀국수의 세계로 인도해주시려는 저분의 뒤태에서 빛이 나는 것만 같았다.


아, 20년이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안데르센의 미운 오리 새끼 소설을 마음속 깊이 공감하게 되었다. 단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의 이야기는 아기오리를 버리지 않는 어미 오리라는 점일까. 아기 오리(결국 백조로 밝혀지지만)가 어미 오리를 따라다닌 것이 공감이 됐다. 뒷모습이 늠름하다. 저 늠름한 뒷모습을 어찌 따라다니지 않고 배기겠는가. 나는 늠름한 뒤태를 자랑하는 뒷방 어미 오리님을 졸졸졸 따라 다낭 시내로 나갔다.


정돈되지 않은 거리에서는 불규칙한 경적소리가 끊이질 않았고, 오토바이들은 정렬되지 않은 채로 다니고 있었다. 행여 부딪히기라도 할라 나는 요리조리 피해 가며 뛰어가는데 내 모습이 우스꽝스러웠는지 뒷방 부기장님이 웃으며 말했다.



"자 요 봐봐요. 여기는 도로의 흐름을 깨면 안 돼."

"흐름이요?"

"마치 산책하듯 쭈욱 지나가야 쟈들도 우릴 피해 가지. 겁난다고 막 뛰고 그럼 안돼."

"한번 해볼게요."


다낭에서 어미 오리의 첫 가르침이다. 나는 장차 백조가 될 아기오리로서 이 가르침을 쉬이 넘길 수가 없었다. 가르침대로 유유자적, 오토바이가 오든 말든, 경적소리가 울리든 말든 개의치 않고 천천히 도로를 가로질렀다. 횡단보도에서 자연스럽게 걸어가는 비틀즈는 내 심정을 공감할까. 아 거긴 오토바이가 없었지. 나는 마치 다낭의 도로와 한 몸이 된 듯 걸었고, 빵빵 소리는 좀 들렸지만 그래도 횡단자와 오토바이가 서로 잘 맞물려 위험하지가 않았다.


반대편 거리에 안전하게 도착한 뒤,


"아 기장님, 해냈습니다!"

"처음인데 잘하네? 경력직이에요?"

"신입이에요."


그렇게 우리는 횡단보도 신호에 불도 안 들어오는 야생의 거리를 헤쳐 걸어 어느 한 식당 앞에 도착했다.


"최근에 오픈한 가게인데 음식 맛도 괜찮고 마사지도 시워~~~ 언 한데. 어때요?"

"저는 너무 좋죠.”



식당과 마사지를 같이 하는 곳이었는데, 어째 계산대에 서계신 사장님처럼 보이는 풍채 좋은 분이 낯이 익다. 아는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동족인 듯 보였다. 동족은 동족을 알아보는 법. 아니나 다를까 익숙한 언어가 들려온다.


“어서 오세요. 두 분이세요?”

“네.”

“위층에서 식사하시고 내려오세요.”


한국 사장님이 운영하는 이곳은 오픈한 지 얼마 안돼 보였고 그래서 그런지 깔끔한 느낌이 있었다. 한걸음만 나가면  바닥과 내가 물아일체 되는 마음으로 거닐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야생의 거리와는 다르게 이곳은 모든 것이 정돈되어 보이고 정렬되어있었다. 우리는 직원의 안내를 받아 2층으로 갔다. 그리고  기대하던 쌀국수와 각종 다낭의 음식들을 먹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배가 고팠던 상태라 정갈하게 고명이 올라가져 있는 쌀국수를 젓가락으로 휘휘 저어 섞어낸 뒤 면을 길게 뽑아 올렸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쌀국수를 입으로 몇 번 후후 분 뒤 나의 입 안으로 가져왔다. 입안을 가득 매운 통통한 쌀국수 면과 코 끝으로 전해지는 진한 향신료의 향이 전해왔다. 정말이지, 다낭 현지에서 먹은 그 쌀국수의 첫 입은 평생 잊을 수 없을 정도로 놀랍도록 우리 동네 앞 쌀국수집과 그 맛이 똑같았다. 역시 한국은 맛집의 나라이다.


하지만 음식은 맛으로만 먹는 것이 아닌 법. 다낭의 음식들은 그 자체로 분위기를 풍겼다. 같은 그릇이라도 이곳은 다낭이었고, 같은 음식이어도 이곳은 다낭이었다. 땅콩소스 부탁드린다는 나의 요청에 한국 쌀국수집이었다면


“여기 있습니다~!”


라고 말했을 테지만,

여기는 같은 요청에도


“디스 이즈 뽀 유.”


와 같은 다른 언어를 뿜어댔다.

이곳은 다낭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바로 1층으로 내려와서 타이마사지를 받았다. 나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동남아시아는 마사지의 본고장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마사지는 손으로 누르고 주무르고 비비고 쓰다듬는 것이 전부가 아닌 고대로부터 치료의 목적으로 행해져 온 의술이다. 태국에서는 인체의 에너지를 센(sen)이라고 부르는데, 우리의 몸에는 총 10개의 일차적인 센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센들을 이은 에너지의 선을 센 십(sen sib) 이라고 하는데, 센 십은 또 배꼽 아래를 중심으로 72,000~92,000개의 나디스(Nadis)로 나뉘어있다. 이 모든 에너지는 내 전신에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만약 센과 나디스가 방해를 받아서 그 에너지 흐름이 끊긴다면 우리 몸에 병이 난다고 한다. 타이 마사지는 이러한 센들에 체중을 실어 적당한 압력을 이용하여 자극을 주는 행동이다. 그리고 지금 에너지의 흐름이 원활하지 못한 나의 가여운 센들은 마사지의 중심인 동남아시아의 어느 한 마사지샵에 누워 전문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마사지를 받으러 온 것이 아닌, 나는 지금 의학적인 치료를 받으러 온 것이다. 비행으로 쌓인 그 피로에 대해서 말이다.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누워있으니 전문가가 들어와 나의 센들을 꾹꾹 눌러주시며 치료를 시작해주셨다. 그리고 그 실력은 정말이지 놀라울 정도로 우리 동네 더풋샵에서 나의 뭉친 어깨를 조물조물 눌러주시며 “이번 달은 일이 좀 힘들었는가베!”라고 외쳐주시던 이선생님의 실력과 똑같았다. 우리 동네 더풋샵 이선생님은 타이마사지를 본고장에서 배운 유학파 출신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놀랍도록 현지와 같은 시원함을 선사해주실 리가 없기 때문이다. 한국은 마사지 맛집이 분명했다.


하지만 마사지는 프롤로그였을 뿐이다. 마사지가 끝나고 나서야 비로소 다낭에서의 여정이 시작됐다. 마사지가 끝나고 우리는 다시 야생으로 나왔고, 뒷방 부기장님께서 나에게 시장거리를 걸어보겠냐고 물었다. 나는 당연히 좋다고 대답했다.


다음 편 : 다낭 이야기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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