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치아 Aug 11. 2021

나는 왜 그녀를질투했던 걸까?

논어(論語)이인(里仁) 편14장

....不患無位   患所以立...
불환무위   환소이립

벼슬이 없다고 근심하지 말고
그 자리에 설만한 능력 갖추는 데 근심하라.


                                                                          -논어(論語) 이인(里仁) 편 14장에서 발췌



 집에서 걸어서 20분~30분 걸리는 거리에 대학 평생교육원이 있다.


예전엔 3년제 간호전문대 건물이었다가 간호전문대가 근처 국립대와 합치며 4년제가 되고, 얼마 후 그 국립대 중앙 캠퍼스로 간호대 건물이 생기며 몇 년째 빈 건물로 방치되었다가

평생교육원과 여성 새로일하기 센터 등으로 쓰이고 있다.


간호 단과대였을지라도 명색이 대학 건물이었기에 도서관 건물, 식당 건물 등 수업이 있는 건물 외에도 편의시설 건물까지 4개 동이 있는데

평생교육원만으론 한 개동으로 충분하기에 여전히 건물 여러 개동이 놀고 있다.


몇 년 전부터 유아부터 성인까지 장애인들의 전방위적인 교육을 위한 특수교육 전문학교로 쓴다는 말이 돌아

괜찮은 생각이다 싶었는데

아무래도 그 주변 아파트 부녀회와 상가위원회가 특수학교가 들어오면 집값이 떨어지고 장사가 안된다는 이유로 반대를 하는 모양이다.


여하튼 늘 평생교육 프로그램들 보면서 한 번은 배워보고 싶은 수업들이 꽤 있었다.

명리학을 배워 내 그지 같은 인생에 운이 따라주는 때가 있나 한 번 들여다보고 싶기도 했고,

성악 수업으로 호흡법 정도만이라도 배워보고 싶은 생각도 들고

기타를 배워볼까, 드럼을 배워볼까, 악기 수업도 관심 갔었다.


하지만 여태 '시험 합격해서 취직해야지'란 생각으로 많은 걸 미뤄오던 삶의 타성에 젖어

내가 진정 관심 있는 것에도 외면해왔는데

이제 나이 제한에 걸려 준비하던 시험도 아예 못 보게 된 참에 평생교육원 수업 신청을 해봤다.


대부분 12회 수업이고, 1회당 2~3시간의 수업 시간에 만 원~2만 원 수준의 가격이라 그다지 비싼 편은 아닐 수 있지만

그래도 3개 정도 신청하니 40만 원 가까이 수업료가 나가니

돈은 벌지도 못하면서 이 나이 먹도록 여전히 교육비가 드는 내게 또 한 번 한심함이 느껴졌다.


게다가 내가 진짜 배워보고 싶던 수업은 너무나 다들 인기가 있어 마감이고

'생활풍수 인테리어'같은 살짝 수상쩍은(?) 수업들만 남아 있었다.


돈이 없어도 돈 공부를 해야겠구나 싶었는데 재테크 관련 강의들은 인기가 좋아 다 마감이었으나

마침 무료 강의에 "평생 월급 만들기"같은 1회 강의가 있어 신청해봤다.


이 더운 땡볕에서 20분 넘게 걸어갔더니 책상 앞에 앉자마자 눕고 싶어졌다 -_-

(엄마들이 아이들에게 공부하라고 잔소리하기 전에 본인들이 공부를 해봐야 한다. 공부는 너무나 힘든 것이다...)


그래도 난 왕년에 모범생이자 성적도 나쁘지 않았던 가락이 있기에 맨 앞에 앉아 필기구도 준비해서 필기할 준비까지 하고 수업에 집중할 준비가 되어있었는데


강사가 수업을 시작하며 자기소개를 할 때

국민연금관리공단 직원이고, 회사 내 강사 공모에 합격해서 외부강사로 활동 중이란 말에

난 바로 그녀를 질투하게 되며 집중이고 뭐고 공부고 뭐고

그래, 좋은 직장 다니는 데다 직장 내에서도 능력 인정받았다 이거지?


... 난 국민연금관리공단에 원서를 내볼 생각도 없었던 사람이고,

물론 신의 직장이라는 공기업에 다니는 사람들이 부럽다는 생각을 한 적이야 있지만 그냥 월급 많이 받고, 정년 보장된다는 단순한 조건만 듣고 "좋겠다~"란 느낌만 가졌던 거지 '질투'까지 갈 만큼은 아니었는데


수업받는 게 힘들다기보다

정확한 발음에 부드러운 제스처, 너무나 눈에 잘 들어오도록 높은 완성도를 보이는 ppt를 준비해온 그 강사 대한 질투심 때문에 괴로웠다.


넌 좋겠다~ 명함에 찍혀있는 어딜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직함 있으니까.

정말 부럽다~ 어쩜 저렇게 자료 준비를 잘할 수가 있지? 하긴 그러니까 회사 내에서도 인정받았지.

젊고 예쁘고 날씬하고 다 가졌네~ 다 가졌어~~


... 난 그녀를 모른다. 강의 내내 마스크를 쓰고 있었기에 얼굴도 모른다고 보는 게 맞고, 이름도 잊었다.

그녀가 그 자리에 서기까지 얼마나 노력을 했을지 가늠할 수 없고

그녀가 가진 고민이 있을지, 그녀 나름의 인생의 굴곡이 있을지도 전혀 알 수 없다.


그러면서 겨우 두어 시간 수업 들으면서 그녀를 너무나 완벽한 인생을 사는 여자로만 여겼다.

실제 그 강사분이 자기 스스로도 "난 완벽히 행복해!"라고 생각할지언정

내가 그녀를 덮어놓고 질투할 필요는 없었는데...

... 내가 현재 너무나 못나서 그렇다.


조금 논외의 얘기일지 모르겠지만

"곳간에서 인심 난다"라는 속담이 있다.

비단 경제적인 것뿐만 아니라, 삶에서 성취가 있는 사람들은 함부로 타인을 판단하고 부러워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너무나 성취가 없는, '성취 빈곤자'로서 살아왔기에 모든 직장인들에게 질투심을 느끼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애들 같은 반 학부모를 만났는데 나이가 대여섯 살이나 어린 엄마를 보면

"결혼 일찍 해서 애 일찍 키워서 좋겠다."란 질투를 하고 있고.

지나가는 여자의 청바지 뒤태가 예쁘면

"날씬하고 다리 모양까지 이쁜 좋겠다."라고 질투하고

번호판 앞자리가 3 자릿수인 올해 뽑았을 게 확실한 신차를 볼 때마다

"좋겠다~ 신차"라고 질투를 한다.


... 이래서 너무 가난하고, 가진 것 없고, 이룬 것 없는 사람은 멀리 하는 게 좋다.

질투심에 사로잡혀 제대로 된 사고를 못하고 있을 테니까.

... 나만 이럴지도.


이런 내가 너무나 부끄럽고, 대체 난 왜 이 모양일까 한탄이 나오지만

어쩌겠는가. 지금의 내가 이모양인데.


지금 당장 내가 질투하지 않는 건 불가능하다.

그 사람의 숨은 노력을 인정하고 나 또한 내 삶에 최선을 다할 수밖에.


그리고  患所以立, 그 자리에 설만한 능력을 갖추는 데만 신경을 쓸 것!!




논어(論語) 이인(里仁) 편 14장


子曰  

不患無位   患所以立

不患莫己知   求爲可知也

자 왈  

불 환 무 위    환 소 이 립      

불 환 막 기 지    구 위 가 지 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벼슬이 없다고 근심하지 말고

그 자리에 설만한 능력 갖추는 데 근심하라.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근심하지 말고

남이 알아줄 만한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인생 두 번째 망하고 읽는 논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