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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치아 Jun 18. 2021

모든 집안엔 골칫거리가 한 명씩 있다.

故 김대환을 기리며 3

故 김광찬 (1906년생) - 황해도 광산에서 돈을 벌고 고향인 서산으로 내려와 간척 사업과 배 사업을 하시다가 안면도로 들어와 바지락 농사를 지으셨다. 1983년에 소천.


故 향자(30년생) 첫째 딸 - 안면도에서 고추 농사하며 2남 2녀를 기르셨고,  2013년에 돌아가셨다.


故 준환(33년생) 첫째 아들 - 안면도에서 아버지를 도와 바지락 농사를 열심히 지었으나, 막내아들을 사고로 잃고 술만 마시다 1982년에 돌아가셨다. 1남 3녀.


진환(38년생) 둘째 아들 - 16살 때부터 서울로 올라가 공장에서 일하며 가정을 꾸렸는데, 형님이 돌아가시자 안면도로 돌아와 바지락 농사를 지으시고 현재도 안면도에서 사신다. 슬하에 1남 4녀.


故 상환(43년생) 셋째 아들 - 배 사업을 해보겠다고 하다가 온 집안 식구들 돈 다 끌어다 쓰고 명의까지 빌려 다들 빚쟁이 만들어놓고는 1986년에 바다에서 익사체로 발견되었다 한다. 슬하에 1남 1녀.


미자(48년생) 둘째 딸 - 포항 부잣집으로 시집가 아들만 셋을 낳았다. 시장에서 이불과 의류업을 크게 해서 엄청 부유하게 사셨다가 IMF 때 사업이 기울어져, 우리 시아버지 근무하시던 천안으로 와서 식당을 하시며 다시 재기하시곤, 지금은 서울에서 미혼인 둘째 아들과 함께 사신다.


故 대환(56년생) 막내아들 - 우리 시아버지. 안면도에서 수재 났다고 해서 충남 공주 사대부고라는 명문고로 유학을 보냈는데, 이미 시아버지께서 고등학교 다닐 땐 가세가 기울 대로 기운 참이라 학비를 형들과 누나가 겨우 대주고 있는 터라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바로 체신국 공무원으로 근무하시다가 20년 근속 후 공인중개업을 운영하시다 2021년 영면하시다. 슬하에 2남 1녀.




1952년 안면도는 정말 해송이 가득한 산과 바다뿐이었다. 밭이랄 것도 없었단다.


그나마 농지로 다져놓은 곳은 광찬의 형과 그 자손들이 나눠 가져서


광찬은 소금기가 있는 땅뿐이었다.


사업가 기질이 있는 광찬은 주위 사람들이 농사도 못 짓는 땅이라고 혀를 찰 때 막아놨던 바닷물을 더 들여와 바지락 씨를 사 와 바지락을 키웠다.

(바지락 칼국수를 좋아하는 나도 시집오기 전까진 갯벌에서 캐기만 하는 줄 알았지 저렇게 바지락을 키우는 건 줄은 몰랐다.)


기존 땅에서 짓는 농사는 아침에 일어나 가서 일하고 밤에 쉬는 일정 노동시간이 정해져 있는 것이라면


바지락 농사는 물 때에 맞춰야 하기 때문에 이게 새벽일 때도 있고, 한밤에라도 물때에 맞춰 바지락을 캐고, 관리해야 한단다.


다른 농사보다 노동강도가 더 심하기도 하고,

예측가능성이 없는 데다,

바지락 판매처도 불확실할 때라서

마을 사람들은 "서산 아저씨 또 망할 거다"라며 저주에 가까운 험담을 했단다.


하지만 첫째 아들 준환이 옆에서 도와 집안은 또 한 번 일어섰다.

현금이 생기자 집을 멋지게 짓고, 그 당시 흔하지 않았던 냉장탑차도 구입하여 충청도, 전라도 일대의 큰 식당에 납품하며 이제 일손을 서넛두고 일해야 할 만큼 바지락 농장은 커졌다.


하지만 준환의 아들이 사고로 죽자, 준환도 50의 젊은 나이로 돌아가시고, 광찬도 바로 몇 달 안되어 돌아가시며 바지락 농사를 할 사람이 없었다.


준환이 술만 마시며 폐인 생활을 하자, 광찬은 둘째 아들 진환에게 와서 일을 돕지 않겠느냐 물었다.


진환은 초등학교만 마치고 집에서 하는 사업을 돕다 집이 쫄딱 망하자 서울로 올라간 터였다.

서울에서 작은 공장을 다니며 용접 기술도 틈틈이 배워 공장 쉬는 날엔 공사장에 가서 일당을 받으며 부수입을 올리는 주 7일 100시간을 일하는 삶을 살았다.


그 바쁜 와중에도 결혼도 하고 아이도 셋을 낳고, 방 한 칸짜리 월세집에서 마당 있는 독채를 전세 내어 이사도 하는 등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고향에 내려와 농사를 지으라니 고민이 많이 되었다.

무당을 믿는 아내가 점집에 가서 물어보니 서울과는 기운이 맞지 않아 딸만 낳을 거라며(그 당시 아이 셋 다 딸이었다.) 고향으로 내려가야 아들을 낳는다는 말에 내려왔단다.

그 무당이 용한 건지 진짜 안면도로 오자마자 아들을 낳았다.


집안에 흉사가 있긴 했지만 그래도 바지락 농사 외에도 굴도 양식하며 동네에서 현금이 제일 많아 수협 vvip로 대우를 받을 때


셋째 아들 상환이 아버지의 골든에이지를 본인이 다시금 누려보겠다며 배를 사야겠다고 나서면서 집안엔 다시 암운이 드리운다.



상환은 아버지 광찬을 졸라 선산으로 사놓은 산을 담보로 대출한 돈으로 배를 샀다. 배 사업은 배를 사는 것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유지보수비용이 꽤 나가고, 석유값도 많이 든다.

70년대 후반 국제 유가가 뛰며 석유파동이 있을 당시 파산 위기에서

아버지도, 형들도 더 이상 돈을 주지 않자.

이제 막 입사해서 결혼하려 하는 동생 '대환'의 명의로 대출을 하고. 동생의 아내 퇴직금까지 뺏어 넣는다.

그 동생이 바로 우리 시아버지시다.


상환은 사업 수완이 없었다기보단 천성이 게을렀다.

배를 남에게 빌려주기만 하면 앉아서 돈을 벌 수 있다는 철부지 같은 생각만 하고 있었지

꼼꼼하게 계약을 확인하고,

배에 하자가 생겼는지 살피며 스스로 고치고

줄을 매고 배에 붙은 따개비를 떼야하는데

사장님 소리 듣기만 좋아하니 사업이 잘 될 리가 없었다.


2차 파산 위기에서는 돈을 빌릴 데도 없고 이미 온 가족이 빚더미에 앉아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상환은 어느 날 밤 술 약속이 있다고 나가서는 3일 동안 집에 들어오질 않았다.

그런 적이 여러 번 있기에 다들 언젠간 들어오겠지, 하고 기다리고 있다가 경찰에게 연락이 온다.

바닷가에서 익사체로 발견되었다고.


그때 딸의 나이 13살, 아들의 나이 10살이었다.


그 후 상환의 아내와 딸, 아들은 1년여간 친척들의 도움으로 겨우 연명하다시피 살다가, 부산의 친정 쪽 어르신이 집 한편에 방을 내어주겠다는 말에 부산으로 내려갔다.


상환의 딸과 아들은 공부를 곧잘 해 부산대를 나오고 각각 공사에 취업하고, 해양경찰이 되었다.


우리 시어머니는 셋째 아주버님인 상환에게 본인 퇴직금도 뺏기고

(시대가 얼마나 어수룩했는지, 시어머님이 체신국에서 일하시다 그만두는 날, 퇴직금을 찾으러 경무계에 가보니 "시숙이란 분이 이미 찾아가셨어요"라고 그 큰돈을 모르는 사람에게 줬단다.)

아버님 명의로 대출을 해주는 바람에 오랜 세월 그 빚을 갚느라 고생하신 터라


우리 시아버지께서 쓰러지시고 상황이 안 좋을 때

상환의 자녀들이 월급 많이 받는 데로 취업 잘했단 얘길 듣고는

그들의 아버지 빚을 다 갚으리란 기대까진 안 하지만 그래도 100만 원이라도 봉투를 해오지 않을까 내심 바랐는데

전혀 인사도 안 오는 바람에 아직도 속상해하신다.


그런데 그 잘 나가던 분들이

따님은 카페를 차린다고 갑자기 회사에서 나와 대출을 잔뜩 끼고 5억 권리금을 낀 카페를 인수했는데 운영도 잘 안되고, 뭔 사기꾼 무당에게 꼬여 1억을 뜯겼다 하고


아드님도 승진 시험도 잘 보고, 근평도 좋아 초고속 승진해서 연봉 8천에 이르는 경찰 간부가 되었는데 자기 발령지가 마음에 안 든다고 상관과 싸우곤 사표 내고 나와 지금 본인 엄마와 누나와도 연락이 끊겨 생사도 모르게 된 지 꽤 됐다 하니


사람 일은 참 모르는 것이다.


내가 과업을 저지르면 내가 받던가, 내가 받지 않으면 자손이 받는다고

걔들 좋은 데 취직했다고 그렇게 자랑하더니 이제 나이 50도 안돼서 다 저렇게 안 되는 거 보라고

우리 시어머니의 끌끌 혀를 차는 말들에서


역시 사람은 다른 사람의 가슴에 피눈물 내는 일은 하지 말고 살아야겠다, 고 다짐하게 된다.






우리 시아버지 이름만 같고, 다른 분들의 성함은 조금씩 바꿔서 썼습니다.


아예 이름을 안 쓰자니 "둘째 형님" "셋째 형님"으로만 쓰기엔 읽는 분도, 저도 헷갈리고


실명 그대로 쓰자니 이미 돌아가신 분이 많은데 고인에 누가 될까 봐

(이야기는 살아있는 사람들의 기억으로 조작되니까요)


조금씩 바꿔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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