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쓰러운 마음 대신 사랑하는 마음만
노화는 자연의 섭리다. 우리 모두는 나이 들고 언젠가는 죽는다. 당연한 사실인데 그럼에도 반려견의 노화는 쉬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반려견을 떠나보낸 지금 내가 후회하는 일 중 하나는, 반려견의 노화를 애써 외면하려고 했던 것이다.
나의 반려견 제니는 14살 무렵 백내장이 찾아왔다. 증상은 급격하게 악화됐고, 점차 한쪽 눈이 희뿌옇게 변해갔다. 제니는 시츄라는 종의 특성상 워낙 눈이 커, 한쪽 눈의 이상이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제니를 데리고 산책을 나가면 멀리서 강아지의 형체를 보고 반갑게 다가왔다가, 흠칫 놀라며 말을 잊지 못하는 행인들을 종종 만나곤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들의 반응도 이해가 간다. 생경한 모습에 당황했을 수도 있고, 안쓰러운 마음에 그런 표현을 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때는 그런 반응 하나하나가 신경 쓰이고 언짢았다. 그래서 언젠가부터는 누군가 제니를 향해 반갑게 다가오면 지레 겁이나 재빠르게 자리를 피하거나, 인적이 드문 늦은 밤에 산책을 나가곤 했다. 그때는 제니를 보고 흠칫 놀라거나, 안쓰러운 눈으로 병명을 묻는 이들이 무례하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면 나 역시 제니에게 무례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선 나 역시 제니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이니까.
한쪽 눈이 먼, 두 다리가 온전하지 못한 나의 반려견의 모습이 누군가에겐 어색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오늘이 지나면 더 이상 만나지 않을 타인일 뿐이다. 그런 이들의 시선에 괜히 마음 써 얼마 남지 않은 나와 반려견의 시간을 낭비하는, 나와 같은 실수는 하지 않길 바란다. 그러니 되뇌자. '겉모습이 변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거라고.' 말이다. 빠르게 변해가는 반려견의 모습이 가족에게는 가슴 아플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인정해야 한다. 반려견은 우리보다 빠르게 나이 들고, 그건 어쩔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 대신 생기 있던 너의 모습만큼이나 나이 든 지금의 너의 모습까지 사랑하고 있다고 끊임없이, 계속해서 말해주자.
안쓰러운 마음을 잠시 접어두면 반려견과의 남은 시간을 더 풍요롭게 보낼 수 있게 된다. 거동이 불편한 반려견에게 무리가 될까 고민했던 여행을 떠날 수도 있고, 안쓰러워 차마 찍지 못했던 사진들도 여한 없이 남길 수 있을 것이다. 엄마와 나는 제니가 곧 떠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끝내 고민만 하다 강아지 유모차를 구매하지 않을 것을 아직까지 후회한다. 제니의 가장 젊은 날이었을 '그때' 유모차를 구매했더라면, 조금이라도 더 많은 세상을 제니에게 보여주고, 조금이라도 더 많은 추억을 쌓을 수 있었을 텐데. 비단 반려견과의 관계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닐 테지만, 지금 내 눈앞의 반려견의 모습이, 그 아이의 가장 젊고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생각하며, 남은 매일을 더 알차고 충만하게 보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