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앞에 나서거나 이벤트 만드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종종 이벤트 대장이 되는 경우가 생기고 있다.
작년 말에 어쩌다 보니 사모임 연말 회고와 직장 부서 팀 단위 대규모 회고 준비 위원이 되었다 그리고 6월 초에 회사 안에서 이틀 연속으로 두 번의 회고 모임을 하게 되었다.
첫 번째 모임은 업무 프로젝트 종료 회고였고, 두 번째 모임은 내가 이끄는 회사 내 동호회 회고였다. 작년 모임은 함께 진행할 사람들이 있었지만 두 모임 모두 내가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생각보다 챙길게 자잘하게 많았고, 예상 못한 변수들이 있어서 시작 전 두 시간 전부터 울렁거리는 마음이었다.
그래도 어쨌든 둘 다 무사히 끝냈다. 다들 좋아해 주셨고, 가끔 돌이켜보며 뿌듯한 기분을 느낄 때가 있었다. 오늘은 모임 준비할 때 하는 생각을 조금 적어보려 한다.
첫 번째 모임이었던 업무 프로젝트 회고부터 자세히 써보려 한다.
오랜 기간 동안 진행했던 프로젝트였고, 10명 정도 되는 구성원이 참여해서 그동안 있었던 일을 돌이켜보고,
그러기 위해 온라인 양식을 사용했었다.
참고로 나는 IT 회사에 다니는 기획자이고, 회고라는 형식은 애자일에서 자주 쓰이는 방식이라 들었다.
회고에 대해 더 궁금하다면 이 글에 대해 정리가 잘 되어있으니 참고해보셔도 좋겠다.
<미리 보는 목차>
0. 회고하고 싶은 이유 생각하기
1. 모임의 규모와 참가자의 성향 생각하기
2. 내가 바라는 모임의 모습 & 참가자가 어떤 감정을 얻고 싶을지 생각하기
3. 진행방식 및 프로그램 짜기
4. 필요한 항목 준비 후 참여 독려하기
5. 진행
6. 진행 결과 및 마무리
0. 회고하고 싶은 이유 생각하기
: 굳이 사서 고생이 되지 않으려면 원칙을 세워보자.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왜 이 회고를 하고 싶은가? 에 대한 마음이었다. 누가 나보고 하라고 시킨 건 아니었고, 개발자분들도 하자고 한 것도 아니었다. 대신 내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총대를 멘 것이었다.
예컨대 업무 프로젝트에 대해 부연 설명하자면, 이 프로젝트는 시작한 지 10개월 만에 겨우 내보냈다. 담당자 지정을 받는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고 그러다 보니 서로 낯을 익힐 틈도 없이 용병처럼 일하다 보니 불만이 있더라도 이야기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나는 고생한 우리의 노고를 칭찬해주고 싶었고, 중간중간 힘들었던 점을 홀가분하게 털고 가길 바랐다.
사실 회사에 와서 회고를 이끌어본 적이 없고, 프로젝트 회고는 더더욱 없었다. 그래서 떨렸고 해야 할까 고민이 되었다.
바빠 죽겠는데 오히려 방해가 될까? 싶어 고민도 많았다. 그런데 회사에 회고를 몇 번 진행하신 분이 계셔서 그분과 대화를 하면서 "오히려 회고가 필요한 상황"이라는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그분이 만든 회사 내 가이드북도 적극적으로 참고했다.
1. 모임의 규모와 참가자의 성향을 생각해보라
: 모임의 규모나 성향에 따라 진행 방식은 달라질 것이다.
모임의 구성원 대부분 프로젝트 참가한 실무자들이었다. 기획/PM은 나와 동료 한 분, 디자이너 한 분, 클라이언트 개발자 세 분, 서버 개발자 세 분, QA 한 분. 해당 프로젝트에 참가할 수 있는 공통점은 있지만 다들 너무너무 바빴다.
그리고 우리는 기능 조직에 있기 때문에 이 일 말고도 산적한 일들이 너무나 많았다. 우리는 한 번도 대면으로 전체가 모였던 적이 없었다. 그 와중에 이야기를 하라고 하면 다들 침묵만 지킬까 싶어졌다. 귀한 시간을 내달라고 할 만큼 모두가 진솔한 이야기를 하길 바랐다.
2. 내가 바라는 모임의 모습 & 참가자가 어떤 감정을 얻고 싶을지 생각하기
: 내가 바라는 모임의 모습은 어떨까? 참가자가 무엇을 얻고 가고 싶을까? 에 대해 생각해보자.
이 프로젝트에 대입해 생각해보자면, 우리가 너무너무 고생했다는 노고에 대한 치하를 하고 싶었고, 힘든 점에 대해 털어놓고 가는 시간을 갖길 바랐다.
3. 진행 방식 생각 후 프로그램 짜기
: 언제/어떻게 모일까? 간단한 설문이 필요할까? 무엇을 주고 싶을까?
다행히 오미크론이 풀리던 상황이라 대면이 가능했다. 오랫동안 고생하면서 우리가 되뇌었던 마법의 주문이 있다. "끝나고 소고기 먹자!". 그래서 회고 이후 회식을 하는 프로그램을 짰다.
모임의 취지를 설명하고, 투표로 날짜와 참석자를 받았다.
구체적인 진행방식은 커피 한 잔씩 마시며 협업 툴을 사용해 회고를 진행하겠다 결정했다.
시간은 두 시간 정도로 정했고, 중간 휴식시간 10분을 두었다. 시간이 너무 길어지면 좋지 않을 것 같아 다음과 같은 순서로 짰다.
<모임 순서>
체크인(10분) 서로의 온도와 기분을 이야기하면서 입을 푸는 시간
타임라인 리마인드(30분) - 길다면 긴 시간 동안 있었던 일을 복기해보고, 그때 겪었던 감정을 함께 상기시키기
3L 회고(20분) - 참가자들이 배웠던 점(Liked), 부족했던 점(Lacked), 배웠던 점(Learned)을 포스트잇으로 붙인다. 이 양식은 여러 템플릿들을 살펴보다 확인해보았다.
앞으로의 실천 양식 잡기(Action) - 그냥 하소연만 하면 재미없으니,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생각하기
회고 마무리하기(10분) - 오늘 회고에서 느낀 점을 말하고, 다음에 어떻게 할지 고민해보기
이때 활용한 프로그램은 피그마의 서브 브랜드 피그잼이다. 무료 화이트보드 정도로 생각하면 되는데, 투표나 포스트잇 등으로 협업이 가능하므로 충분히 괜찮았다. 아래 소개글대로, 피그잼 모르는 사람 없게 해 주세요..
사내에 비슷한 회고 양식들이 있어서 참고했고, 회고 가이드북이 정리된 것이 있었다.
글쓰기를 위해 간단히 회고 양식을 재구성해봤다) 안에 있는 정보들은 전부 가안이다.
4. 필요한 항목 준비하고 참여 독려하기
: 모임을 위해 필요한 사전 준비를 하고, 최종 참가자 체크하기
회고를 하겠다고만 생각하고 판을 만든 건 하루 전날이었다. 최종적으로 와야 할 사람들을 챙기니 일곱 명이 되었다. 서버 개발자 세 분과 클라이언트 개발자 세 분, 그리고 나 하나. 동료 기획자나, QA와 디자이너분은 참여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QA의 경우 앞으로 계속 협업해야 하고 업무 방식을 정리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분과는 따로 시간을 내어 1:1 미팅을 하기로 했다.
회고가 4시에 시작하니 3시 반까지 스벅 주문을 받아두고 4시에 모였다.
사실 이 부분에서 여러 변수들이 발생하기도 한다. 회고 때 온라인 협업 툴을 쓰려했던 건 온라인으로 들어올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였는데, 정작 온라인으로 들어오려던 분들이 회의에 연결을 잘 못한다는 문제점이 생겼다. 웬만하면 온라인 <> 오프라인 믹스는 안 하는 게 낫겠다는 결론도 얻었다.
5. 진행!
이젠 쇼타임이다. 사실 나는 남 앞에서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사람을 만날 때 1:1 대화를 선호하며, 네 명 이상 넘어가는 자리에서 이야기하면 엄청 당황한다. 사실 이번에도 속으로 그랬다. 그럴 때마다 안절부절못했지만 어쨌든 해야만 해서 한다. 이것이 바로 월급이 낳은 E 성향인가.
내가 떨리는 만큼 참가자들도 떨리겠지. 먼저 이야기를 꺼내지 않으면 돌아가면서 이야기하는 방법도 써도 좋을 것 같다. 대신 영혼을 다해서 이야기를 이끌 수 있게 노력해야 한다.
또 진행하다 보면 원래 생각했던 프로그램의 타임라인을 지키기 어려울 수 있는데, 그럴 경우 융통성을 발휘하여 조절해보는 것도 답일 수 있다.
실제로 우리도 10개월에 걸친 이야기를 복기하다 보니 초반에 많은 시간이 들었다. 진솔하게 많은 이야기를 쏟아내 주신 것이나 오히려 감사할 따름이었다.
6. 진행 결과&마무리
이런저런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다들 좋아해 주셨다. 다들 열심히 참여도 하고 온라인 화이트보드에 낙서들도 많았다. 사실 회식 이후 소고기를 먹기로 했기 때문에 뭐라도 좋았던 걸까.
“이렇게 체계적인 회고는 처음이에요”
“오프라인이더라도 포스트잇 쓰는 거보다 나은데요? 다시 돌아갈 수 없네요"
-회고를 마친 개발자분의 소감이었다.
다음 글에서는 연이어했던 글쓰기 모임과 회고를 마친 소감, 소소한 팁에 대해 써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