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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홋카이도 갈래요?

1화. 함께 홋카이도 갈래요?

by teaterrace

이 여행이 나를 구할까, 아니면 더 어렵게 만들까.

가고 싶다,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두 마음이, 하루에도 열두 번씩 뒤집혔다.


비행기 안.


말씀을 드릴까말까 고민하다 보니 시간이 많이 지났고, 맡아야 하나 아닌가를 고민하다가 부장이 되어버렸다.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갈 수 있나, 어려운가. 무게 저울의 양쪽 접시에 이를 올려두고 매일 고민했다. 한 달 동안의 고민에 결론은 못 낸 채로 지원은 비행기에 올라 있다. 떠나는 데엔 용기가 필요하다고들 말하지만, 지원은 그냥 도착해 버렸다.


작년 겨울, 잠시 홋카이도를 여행하고부터였다.


홋카이도의 사계절을, 홋카이도의 곳곳을 누벼보고 싶다는 열망이 그녀를 잠식했고, 지원은 일 년 동안 틈만 나면 항공권을 검색했다. 일 년에 한두 번씩 진행하는 특가는 번번이 놓치고, 그 특가의 가격을 알고 나니 일반 항공권은 엄두가 안 나 고민만 하다 그것마저 놓쳤다. 이제는 고가의 항공권만 그녀를 유혹하고 있는 찰나, 그나마 저렴한 항공권이 나왔다는 알림이 왔고, 그녀는 예약을 해버렸다. 그리고는 그 항공권을 붙잡고 한 달여 기간 동안 번민의 시간을 오간 것이다.


남편의 생일을 기념하여 여행을 떠날 것을 기획했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시기는 남편의 업무상 도저히 자리를 비울 수 없는 시기. 지원은 남편과 함께 갈 수 없게 되었다. 비교적 저렴한 항공권을 손에 쥐고도 그녀가 고민을 계속한 것은, 이 때문이었다. 지난겨울처럼 남편을 동반하고 아이와 함께 오붓하게 떠날 수 있다면야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괜찮을 일이었지만, 지금은 조건이 완전히 다르다. 선택의 순간마다 현명하게 결정해 주는 남편이 없고, 오롯이 그녀 혼자서 해내야 하는 일상이라니. 아니, 차라리 혼자라면 어떻게든 헤쳐 나갈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아이가 있다면 2인분의 몫을 혼자 지고 나가야 하는 부담감이 그녀를 막고 있었다.


차라리 확고하게 결정을 내렸다면, 그 한 달은 어떻게든 의미 있게 보냈을지도 모른다. 여행을 준비하는 설렘을 안고 차근차근 계획을 하든지, 여행을 포기하고 그 기간을 보낼 대체재를 찾는 시간으로 보내든지. 어떻게든 의미 있게 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지원은 이도 저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상황이 결정해 주기를 바랐다. 그런 성격의 지원에게는 그 한 달이 그야말로 괴로움의 시간이었다.

취소 수수료 대비 더 괜찮은 조건의 항공권이 없는지 뒤적이다, 어느 지역에 갈지, 숙소는 어디가 좋을지 헤맸다. 검색의 조건이 그야말로 중구난방이었다. 도대체 가겠다는 검색인지, 미루고 다음에 가겠다는 검색인지, 아니면 이를 계기로 포기를 하겠다는 검색인지 스스로도 헷갈려서 밤늦게까지 핸드폰만 붙들고 있다가 잠이 들기 일쑤였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잠이 부족한 상태로 출근했고, 거기에 학년말 마무리 작업까지 한꺼번에 쏟아졌다. 그러다보니 지원은 방학을 맞이하자마자 바로 독감에 걸려버렸다. 고열을 동반한 두통과 기침. 묵직근한 두통은 기침을 하면 두 세배로 머리를 흔들었고, 두개골과 뇌가 따로 노는 느낌마저 들었다. 두 엄지로 관자놀이를 꼭 누른 채 기침을 해야 겨우 견딜 지경이었다. 또한, 콧물이 비강의 깊은 곳에 꽉 눌러 차서 풀어도 도저히 나오지 않았고, 그것이 머리를 더 띵하게 만들었다. 몸은 으실으실 춥고 쑤시는데 이것이 목디스크에서 오는 통증인지 독감으로 인한 몸살통 인지조차 구분이 가지 않았다. 그러다 출발 바로 이틀 전인 토요일. 독감을 확진 받았다. 그렇게 못 가는 조건이 되어 버린 것이 차라리 마음이 편해지는 아이러니.


지원은 그런 사람이었다.


“저어, 선생님. 제가 월요일에 일본 여행 계획이 있습니다. 지금대로라면……, 어렵겠죠?”

의사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고 대답을 했어야 했다.

“에이, 가셔야죠. 며칠 안 남았는데. 수수료도 아깝고. 약 드시고 얼른 나으셔서요.”

독감 확진을 받기 직전 진료에서도, 현재 증상으로 해줄 수 있는 처방은 이런 것이며 약을 복용하다가 열이나 몸살이 동반하면 내원해서 독감 검사와 코로나 검사를 받아보는 게 좋겠다고 매우 상세하고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던 분. 이분이 못 간다고 하면 지원은 못 가는 사람이 될 작정이었다. 내 결정이 아니라 상황이 그러했기에, 내려진 결정에 따르는 삶. 그것이 지원의 삶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의사는 너무도 명쾌하게 가야 한다고 했다. 지원은 그 순간만큼은, 알 수 없는 확신이 밀려 올라왔다.

“하하. 정말요? 그럼 페라*플루 그거 맞을게요. 아이가 맞아보니까 그 링거 한 방이면 하루 꼬박 앓고 괜찮아지더라고요.”

“맞아요. 근데 어쩌죠. 그 약은 이 동네 모두 동이 났어요. 며칠 전 한 어머니도 그 약 찾으시느라 동네 여기저기 알아보셨는데, 결국 못 찾으셨다고 하더라고요.”

아. 그럼, 아픈 채로 출발할 순 없잖아. 5일 꼬박 약을 먹어야 겨우 나을 텐데. 지원의 뇌가 이렇게 ‘자위’의 작동을 반사적으로 시작한 찰나.

“대신……” 의사가 바로 말을 이었다.

“1회 복용약이 있는데, 원하시면 그거 처방해 드릴 수 있어요. 비급여 약이라 비싸서 권해드리지 않고 있는데, 상황을 보니 그쪽이 나을 것 같네요.”


이 정도면 계시다. 떠나라, 는.


“아! 그러면 그거 처방해 주세요. 혹시 아이도 먹을 수 있나요? 아이랑 둘이 가는데, 저랑 같이 먹고 같이 잤던 아이라 필시 걸렸을 것 같아서요.”

“만으로 12세 이상의 아동만 가능해요. 안타깝지만, 안 걸렸기를 바라보시죠.”

지원의 성격에 이런 의사를 만나는 것은 마치 신을 영접한 것 같다. 명확하게 결정을 해주는 데다 원하는 대답을 들려준다고 생각했다. 잠깐! 원하는 대답이라고? 그렇다. 지원은 스스로 외면한 답을 찾은 것만 같았다. 가고 싶으나 자신이 없었던 그녀에게 “뭘 망설여. 그냥 가. 가면 어떻게든 해결이 돼”라는 대답을 들려줄 누군가가 필요했던 것 같다. 지원은 그 답을 알면서도 자신이 없었던 터였다. 코로나, 라는 길고 긴 지구촌의 암흑기를 경험하면서, 외국 땅에서 아이라도 아프면 어떻게 대처할지 막막했고, 남편이 없이 아이와 함께 보내는 일이 상상이 가지 않았을 뿐, 그녀의 내핵에서는 가고 싶다는 열망이 열렬히 끓고 있었던 것이다.


-남편! 나 한 달 가볼까?

-응? 어디? 홋카이도?

-응. ㅋㅋ 놀랐어? 집 구해서 한 달 동안 밥 해먹고, 사는 거지.

-ㅎㅎㅎ 해봐요. 겨울이라 교통이 좀 걱정되긴 하지만, 새로운 경험이겠다.

-말려 볼 생각은 없어? 내가 제 정신인가 싶어서.

-ㅋㅋㅋㅋㅋ. 우리 나이에 이렇게 간절하게 해 보고픈 게 있는 건 축복이지. 걱정도 되지만 응원해.

-내가 결혼은 진짜 괜찮은 사람이랑 했구나. 항공권 취소하려니 수수료도 아깝고 이렇게 저렴한 표를 구하는 것도 이젠 어렵고 그래서, 아깝고 놓치기 싫은 그런 심보로 버티고 있다가 갑자기, 불현듯, 섬광처럼, 스쳐 갔어, 이 생각이.

-ㅎㅎㅎ 쑥스럽구만!


남편은 지원의 고민을 알면서도, 무려 한 달의 여행을 응원했다. 평소 지원은 남편의 전생이 수도승일 거라 생각했다. 평생 욕심 한 번 부려본 적 없고, 도를 얻기 위해 수행에만 정진하는 그런 때 묻지 않은 천연의 승려. 그런 사람이 환생해서 자신과 결혼을 한 건 아닐까 생각했는데, 이번 역시 드라마 속 대사 같은 메시지를 보내는 남편이었다. 비록 그 덕에 한 달의 고민을 얻기는 했지만 말이다.


“숙소는 알아봤어?”

“아니! 나 진짜 가?”

“응? 가는 거 아니야?”

“하아- 가야 하는데. 자꾸 걱정이 돼서.”


지원은 틈틈이 숙소를 검색했다. 호텔 예약사이트와 에어-비엔비까지 가급적 교통이 편한, 역 근처의 숙소로 찾아봤다. 숙박객들과 여행 정보와 소감도 나누는 게스트하우스 같은 곳은 어떨까. 공용욕실과 공유 라운지를 사용하는 것은 아무래도 아이와 함께는 무리일까. 무려 한 달을 있으려면 너무 비싼 숙소를 예약하면 안 되는데. 그렇다고 아이랑 함께 허름한 숙소에서 지내고 싶지 않은데. 갖은 마음들이 상충했다.

우선 마음에 드는 숙소들을 찜해두고, 날짜가 지날수록 그 숙소들이 예약되어 하나하나 삭제해 가는 일을 반복했다. 숙소마저 예약하면 취소하고 도망갈 수 있는 마지막 구멍마저 사라질까 봐. 마지막 취소의 열쇠는 쥐고 있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리고 출발하는 날 새벽. 지원은 드디어 안 가면 안 되는 사람이 되었다.


“했어. 예약. 우선은 4박. 오타루에서.”

“잘했어. 이제 자야지. 내일 아침 10시에 집에서 나가야 하는데. 근데, 짐을 하나도 안 싸서 못 자겠네?”

“이제 싸보지, 뭐. 작년 여행보다 더 대충 가네. 열흘 여행 준비하면서 며칠 동안 방한용품 쇼핑하고 사진 찍을 때 예쁠 옷이 뭘까 한참 고민하고, 패밀리룩 고르고 그랬는데.”

“그러게 말이야. 당신 성격 생각하면 이번 여행은 정말 너무 준비가 안 됐는 걸. 아무래도 그대는 J는 아닌 거 같아. 이렇게 즉흥으로 떠나는 거 보면.”

“아니지. J니까 이렇게 끝까지 신중하게 고민하는 거지. 혹시 모를 사태를 생각해서 결정을 못 하는 거고. P였으면 이미 다 결정해 놓고 어떻게든 되겠지, 라는 심정으로 막 추진 했을걸?”

“그런가? 아무튼 어여 짐을 챙겨봐. 우선 여권이랑 돈만 잘 챙기고. 그럼, 혹시 빼놓고 간 게 있더라도 현지에서 사면 되니까. 다만, 내가 같이 못 가니까 짐은 최대한 간소화시키고 가급적 현지 조달을 하는 게 좋을 거 같아.”

“알겠어. 먼저 자. 당신도 컨디션이 그다지 좋지는 않으니까.”


그 무렵. 지원의 남편도 몸이 썩 좋지 않았다. 결혼 초창기쯤, 한 달여 넘게 고생하게 했던 때처럼 콜린성 두드러기가 온몸을 뒤덮었고, 무엇을 먹든 속을 태우는 통증을 동반한 위통이 시작되었다. 병원에서는 별다른 문제가 발견되지 않는다고 했는데, 처방약은 들을 기미가 없었다. 아픈 남편을 두고 떠나는 여행이라 마음이 더 가볍지 못했다.


지원을 고민하게 만드는 순간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어렵사리 도착한 공항에서 홋카이도 카페의 공지는 그녀를 시험하는 마지막 관문인 듯 ‘천재지변’이라는 조건을 내걸었다.


현재 삿포로 근교 및 중앙부 일부 지역의 JR 선이 운휴이거나 감편 운행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은 내일까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므로, 현지에서 여행하시는 회원들은 미리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삿포로에서 오타루 방면, 오타루 시내, 오타루 교외 지역, 삿포로에서 신치토세 공항을 오가는 버스편, 요이치, 사코탄으로 가는 버스, 삿포로-하코다테를 연결하는 고속버스도 현 시각 대 운휴 중입니다.


“이거 봐봐. 공항에서 오타루로 못 가겠는데? 폭설로 운휴래. 어떻게 하지?”

“그러게. 오늘 숙소가 오타루인데, 큰일이네.”

“가지 말까? 한별이랑 길에서 자게 되면 어떡해.”

또다시 슬며시 고개를 드는 상황 신(神). 누가 등 떠밀어 가는 여행인 것처럼 지원은 또 상황에 기대어 취소를 바라보았다. 상황의 결정이지, 자신의 결정이 아닌 상황. 그래서 스스로 자신을 원망하거나 후회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지원의 곁에 슬며시 다가와 또다시 지원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별아, 별인 어떻게 생각해. 오타루에 눈이 너무 많이 와서, 거기서 못 잘 수도 있대. 우리 가지 말까?”

우문현답이라는 말은 이럴 때를 대비한 말이었을까. 지원의 어리석은 질문에 한별은 엄마의 입을 다물게 할 현명한 답을 내놓았다.

“엄마. 나는 아빠랑 한 달을 못 보는 게 제일 큰 고민이었어. 그래도 가겠다고 결심을 했어. 그렇기 때문에 이제 안 가면 안 돼. 가고 싶어.”

자신의 뱃속에서 어떻게 이렇게 결정을 잘 내리는 아이가 나왔단 말인가. 잠시 감탄을 하는 사이.

“방법이 있겠지. 우선 삿포로에서 숙박하는 것도 고민해 봐야겠다.”

남편이 말했다. 모든 조건은 지원을 홋카이도로 밀어 넣고 있었다.

“그럼……, 짐을 부칠까?”

남편과 아이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수하물 위탁을 하면 진짜 끝이다.

무를 수 없다.

내가 결정한 게 아니라, 남편과 아이가 결정해 준 거다.

우습게도 그 생각이 지원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짐을 부쳤다.

그 순간, 모든 망설임이 조용히 멈췄다.

이제 정말, 돌아갈 수 없다.


공항검색대. 이제 진짜로 남편과 헤어져야 하는 상황. 남편을 꼭 끌어안았다.

“잘 다녀올게. 걱정하지 마.”

이번에는 지원이 남편을 안심시켰다. 헐랭이 두 명이 얼마나 잃어버리고 다닐까 염려된다는 남편의 농담에 깔깔거리며 웃었다. 한별도 제 아빠를 꼭 끌어안았고, 지원은 이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었다. 남편도 지원과 아이의 바이바이를 영상으로 찍었다. 서로가 서로의 이별을 촬영하며 진짜 이별을 고했다.


스마트 패스를 깔아두어 공항검색대까지는 금세 입장을 했다. 수하물 검색까지 꽤 걸리기는 했지만, 역시 대한민국의 공항은 일사천리로 잘 진행 시켰고, 지원과 한별의 모든 짐이 무사히 검사를 통과했다. 이제 면세품을 찾고 탑승을 기다리면 된다. 여행의 순간순간을 담고자 미니카메라, 고프로를 샀다. 출발 3시간 전까지 구매하면 공항에서 받을 수 있는 상품이라 집에서 출발 직전에 사 두었다.

제일 뒷좌석을 예약해 둔 두 사람은 항공기의 꼬리로 향했다. 통로석에 먼저 앉아 있던 아주머니가 눈에 보였다. 평소 한별과 함께 비행기를 타면 지원은 늘 긴장했다. 아이들의 부산함과 시끄러움이 불편한 사람들의 눈치를 살펴야 했기 때문이었다. 다행스럽게도 그 아주머니는 맘씨 좋은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서, 천천히 하라고 이야기 해주었다. 좋은 시작이다.


자리에 앉자 한별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엄마, 맨 뒷자리에 앉으니까 뒤에서 차는 애들도 없고 되게 좋다. 뒷자리에 애들 앉으면 진짜 별로인데.”

순간, 지원은 머리가 띵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고민하고 눈치를 봐야 했던 사람들이 하는 생각을, 자신의 아이도 하고 있었다니.

“별아.”

지원은 아이의 이름을 먼저 부르고 후- 하고 조용히 숨을 골랐다.

“별이의 그런 불편한 마음은 엄마도 충분히 이해해. 그런데 있잖아……, 그동안 별이가 어려서부터 편안하게 비행기를 탈 수 있었던 것은 그걸 이해하고 기다려 주는 사람들이 더 많았기 때문이야. 무작정 아이들은 그럴 거라고 생각해서 싫어하는 것을 ‘혐오’라고 하는데, 별이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

아이는 두 눈을 끔뻑거리며 엄마를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미안해. 엄마. 내가 누군가를 혐오하는 사람이라고는 생각해 보지 못했는데, 이제 안 그럴게.”

“미안하긴. 어른들도 그러는 걸. 하지만, 이제부터 안 그러면 돼.”

“응 알겠어. 엄마. 우리 잘 다녀오자.”

또래에 비해 생각이 깊고, 기특한 아이라 늘 안쓰러운 마음이 앞서는 지원이었다. 아이의 다짐을 들으면서도 여전히 흔한 ‘아동 혐오’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한번은 SNS에서 ‘제발 애들 데리고 비행기 좀 타지 마세요. 데리고 탈 거면 약 먹여서 재우기라도 하던지. 같은 돈 내고 완전 손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생각지도 못한 발상에 머리가 띵했던 기억. 그런 젊은이들 사이에서 자신의 아이가 성장해야 한다는 사실에 절망했던 기억을 떠올리니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더더욱 아이의 ‘혐오 발언’에 발끈하며 반응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더 많기에 세상이 움직여가는 거라고 알려주면서도 여전히 씁쓸한 마음은 지울 수가 없어 안타까운 마음으로 한별을 바라보았다.


슬슬 비행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예정했던 출발 시간보다 1시간 정도 늦어진 상황. 홋카이도 카페에 질문 글을 달았다. 혹시 삿포로까지는 갈 수 있는 상황인지 묻기 위해. 그리고 낯익은 닉네임에게 말을 걸었다.

홋카이도 일주. 그의 아이디였다. 그는 삿포로의 한 호텔을 알려주며 아직은 예약이 가능한 상황이라며 몇 시쯤 도착 예정인지 물었다. 그리곤 삿포로까지의 JR은 일부 운휴라 운행하는 버스가 있는지도 알아봐 주겠다고 했다. 신치토세 공항까지 3시간 정도 걸리니 그 무렵 상황은 또 달라질 수 있으니 너무 염려하지 말라고도 했다. 그를 알게 된 건 참으로 행운이었다. 어떻게든 날씨 요정이 심술을 멈추기를 기다리며 오늘 그들의 운세에 기대보기로 했다.


“꼭 한 달을 채우려고 애쓰지 말고, 힘들면 언제든 돌아와.”

남편의 말을 떠올렸다. 그래. 힘들면 일주일 안에라도 돌아가면 된다. 나는 이 여행에 의무를 지지 않았으며 언제든 돌아갈 길이 열려있다. 지원은 다시 한번 다짐을 하며, 한별을 바라보았다.


비행기를 탈 때마다 지원과 한별이 동시에 흥분하는 구간이 있다. 바로 비행기의 바퀴가 지면과 떨어지며 붕- 하고 오르는 그 순간.

지금이 그 순간이다.

둘은 맞잡고 있던 손을, 서로 꽉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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