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숨’에 대해서 쓰고 싶었을까. 아마도 그 구절에서, 나의 숨과 당신의 숨이 서로 연결되어있다는, 당신이 내쉬는 숨을 내가 들이마시고 있다는, 그 짧은 구절에서 불현듯 5년 전 어머니의 하얀 숨이 떠올랐고 그것에 대해 언젠가는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본 그 여린 숨. 숨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처음으로 아, 사람은 숨을 쉬지 못하면 죽는 거였구나…라는 그 간단한 사실을 알게 된 그 시간들을.
행복하지는 않은데 불행하지도 않았다. 이유는 정확하지 않지만, 그저 그런 날들이 너무 그저 그래서 우울도 무기력함도 아닌, 알 수 없는 날들이었다.
소장니임~정혜윤 작가 아세요? 그분이 작가와의 대화하신대요! 저 그래서 언니들이랑 신청하려고요!!!
청명한 여름날 물기 어린 잎사귀처럼 소현 씨가 물었다. 모르는 작가이지만 저렇게까지 신나는 일인가 싶어 나도 덩달아 소풍처럼 따라나섰다. 그렇게 <서촌 그 책방> 독서 모임을 시작하게 되었다. 정혜윤 님의 《슬픈 세상의 기쁜 말》이라는 책은 이 세상에는 존재할 것 같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자신만의 고결함과 자존감을 지키고 사는 사람들에 관한 뜨거운 책이었다. 슬며시 가슴이 뛰기 시작했던 것 같다. 당신들처럼 그렇게 멋지게 살고 있지는 않지만 나도 한때 펄펄 뛰는 심장이 있었음을 누군가 말해주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뭔지 모를 ‘위로’를 받았다. 위로를 받는다는 것은 뭔가 슬프거나 안 좋은 일이 있는 경우일 텐데 나는 아무 일도 없었는데 위로받았다. 그것도 낯선 이로부터.
겨울의 문턱, 결혼식을 앞둔 어느 느닷없는 날이었다. 말 많고 악의 없이 참견하기 좋아하는 큰엄마가 어머니와 함께 동대문에 오셨다. 춘천에서 소 키우고 농사짓는 어머니를 데리고 이 먼 서울까지 오셨다. 새엄마도 엄마다~딸내미 결혼할 때 엄마가 이불 한 채 해주는 거다,라며 좋은 걸로 맞춰줘야 한다고 같이 서울 가자고 하셨단다. 그랬더니 조용하고 곧은 성품의 어머니가 따라 나오셨단다. 큰엄마를 따라 어머니는 산 넘고 물 건너 기차 타고 지하철 타고 동대문에 도착하셨으리라. 우리 서울 왔다~ 낭랑한 목소리로 큰엄마가 전화하셨다. 부리나케 달려나갔다. 춘천 시골집에는 소, 닭, 염소, 개, 토끼, 길고양이들까지 짐승들이 많았고 어머니는 그 짐승들 밥 주는 것 때문에 긴 외출이 쉽지 않았다. 서울에서 어머니를 만나는 건 처음이었다. 실은 명절이나 생신이 아닌 날 따로 만난 적이 거의 없었다. 셋이 다 잘 모르는 퀴퀴한 동네에서 결국 들어간 곳은 ‘이브자리’.
좋은 걸로 골라봐.
나지막이 웃으셨다. 분홍색 꽃들이 잔잔한 ‘좋은’ 이불 한 채와 배게 세트를 양손에 들고나왔다. 아부지 기다리신다고, 빨리 짐승들 밥 주러 가야 한다고 하시는 걸 나도 숫기가 없어 맥없이 그냥 보내드렸다.
어머니는 나의 결혼식이 끝나고 석 달 후 중환자실로 들어가셨다. 갑자기 호흡기에 문제가 생겨 쓰러지실 때까지 식구들 모두 어머니가 별일 없이 잘 사시는 줄 알았다. 그런데 어머니는 2년간 혼자 이 병원 저 병원 찾아다니고 심지어 굿도 해보셨다고 한다. 각자 사느라 바쁜 자식들은 그제야 알게 된,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두 달간 나와 큰오빠는 하루 두 번 번갈아 가며 어머니를 면회하며 중환자실 앞을 지켰다. 큰오빠는 하루도 빠짐없이 대기실 의자에서 밤을 보냈다. 코드블루는 중환자실의 어둠을 고단하게 했다. 새어머니의 외동아들인 큰오빠를 처음으로 본 건 내가 중학교 때, 그의 결혼식장이었던 것 같다. 그 이후 불과 몇 달 전까지 제대로 함께 밥 한 끼 먹어본 기억조차 없었다. 하루하루 어머니의 상태를 나누고 점점 사라져가는 의식과 늘어가는 의료장치들을 걱정하며, 말할 수 없는 슬픔과 회한을 나누며 나에게는 처음으로 큰오빠라는 존재가 생겼다. 멀리도 못 가고 병원 앞 편의점에서 컵라면과 맥주를 함께 하곤 했다. 어머니를 많이 닮아서일까,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한 큰오빠가 이상하게 낯설지가 않았다. 어머니가 내 결혼식 때 ‘재훈아, 딸이 있는 게 이렇게 좋다’며 얼마나 기뻐하셨는지 모른다고 큰오빠는 망연한 눈빛으로 말했다. 나는 그냥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그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했던 것 같다.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쓸쓸한 봄밤이었다.
두 달. 고작 두 달이 지나니 중환자실의 텁텁하기만 했던 공기가 못 견딜 정도로 역겨워지기 시작했다. 각종 소독약과 알 수 없는 약품 냄새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우르르 달려들었다. 얼마 안 가 의사가 오빠와 나를 불렀다. 쉰을 앞둔 큰아들의 애절함을 아는 듯, 의사는 조심스럽게 마지막을 알렸다. 고심 끝에 오빠는 어머니의 마지막 가는 길을 식구들이 다 함께 할 수 있도록 며칠만 일반병실에서 지내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중환자실이 아닌 일반병실은 만일의 사태가 와도 응급처치를 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모든 식구가 다 모였다. 아부지는 이웃에게 소를 부탁하고 왔다. 오빠는 어머니의 친언니와 각별한 친구, 친척들에게 전화를 드렸다. 빨리 오셔야 한다고. 꼭 오시면 좋을 분들이 먼 곳에서 놀란 마음으로 급하게 오셨다. 작별 인사를 하시는 동안 우리는 방을 비워드렸다. 미동도 없는 어머니가 그래도 듣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눈물 바람으로, 여전히 믿지 못하는 눈빛으로 몇 분들이 오가셨다.
이제 각자 어머니한테 할 말들 하자.
우리는 1인 병실에 꾸깃꾸깃 들어앉아서, 몇몇은 병실 문밖을 서성이며, 손녀딸들은 한없이 할머니의 얼굴과 손발을 쓰다듬으며 긴장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밤이 되자 오빠는 각자 어머니와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돌아가며 자리를 갖자고 했다. 눈물이 끝도 없이 흐르는 착한 큰 손녀딸은 거의 실신 지경이었다. 새벽이 될 때까지 우리는 작은 병실 안에서 선량했던 어머니의 손을 잡고 처음으로 서로의 몸에 기댄 채 다 함께 밤을 새웠다. 엄마... 큰 올케는 결혼한 이후로 어머니를 엄마라 불렀다. 엄마, 여보, 할머니, 어머니의 이름들이 서로의 심장에 닿았다. 간호사는 시간마다 와서 맥박수를 재고 알려주고 갔다. 맥박수가 점점 달라졌다. 할머니의 가슴팍에 쓰러져있던 손녀딸 너머 어머니의 투명한 얼굴 위로 하얀 숨을 본 건 내 상상일 것이다. 숨이 희미하게 옅어지는 것은 소설 속에나 있는 일인 줄 알았다. 숨을 거둔다는 표현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어머니는 정말 숨이 옅어지며 하얀 숨이 작고 흐려지며 아주 많이 흐려지더니 정말 흐려지더니 사라졌다.
내가 뱉는 숨을 내 옆 사람이 마시죠. 내 옆 사람이 뱉는 숨을 내가 마시는 거고요. 그렇게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있는 존재입니다. 박보나 작가가 말했다. 그의 《태도가 작품이 될 때》, 《이름없는 것도 부른다면》을 읽고 작가와의 대화를 하던 중이었다. 늦은 밤 책방에서 옹기종기 모여앉아 재미나게 이야기를 듣던 내게 푸른 종소리 같은 게 들렸다. 언젠가부터 독서 모임에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엔 책의 세계가 이렇게 삶을 풍요롭고 화창하게 만들어 주는구나, 기대어 살 무언가가 생겼구나! 기뻤다. 그러다 작가와 나만 존재했던 세계에 낯선 그림자가 언뜻언뜻 비쳤다. 고개를 들어보니 사람들이 책의 이야기 위에 자신들의 이야기를 얹으며 서로의 숨을 나누고 있었다. 딴 데서는 혼자 이상한 사람 될까 봐 이런 말 못해요... 누군가 수줍게 웃었다. 그제야 나는 5평 남짓한 이 작은 한옥이 이상한 사람이 되어도 괜찮은 곳임을 알게 된 것 같다. 반짝이는 비눗방울이 점점 커다랗게 부풀어 올라 부드럽게 책방을 감싸고 있는 듯한 느낌. ‘아무도 이상하지 않아요. 당신도 나도’라고 서로가 서로에게 말을 하는 듯하다. 나의 작은 숨을 더하여, 별일 없이 사는데도 위로가 고마운 내 지금의 시절을 잘 살아내고 싶다. 내 숨의 색깔과 모양은 어떤 걸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당신의 숨은 안녕하신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