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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영남 서촌 그 책방 Oct 30. 2022

글짓기는 방학 숙제로나 했지.


마흔이 다 된 나는 무슨 생각으로 글쓰기 수업을 신청했을까?

2021년. 나는 서울에 머물렀고 ‘서촌 그 책방’이 있는 서촌 인근에서 직장을 다니게 되었

다. 즐겨보던 티브이 프로그램들이 시시해졌으며, 이 책 저 책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책

을 읽으며 느꼈던 감흥을 고스란히 친구에게 전달하고 싶은데, 말을 하는 도중에 점점 이

야기가 꼬여간다는 것을 느끼곤 했다. 나의 감정과 생각을 조리 있고 정확하게 전하고 싶

었다. 그렇다고 스피치 학원을 다니는 것은 부담스러웠다. 나는 내향인이다.

서촌 그 책방에서 독서 모임을 한다니, 그 무리에 껴서 나도 말 좀 해볼까 싶었다. 책도

읽고 말도 하고. ‘할 말이 없으면 그냥 듣기만 하지 뭐.’ 하는 마음도 있었다. 서촌 그 책방

과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역시나 첫 모임에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눈만 끔벅이고 고개만 끄덕

이다가 왔던 것 같다. 두 번째 모임도 크게 다른 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던 중 책

방 회원들이 모여 있는 단톡방에 흥미로운 글이 올라왔다. ‘작가와 함께하는 자서전 쓰기’

자서전? 보통 생각하는 자서전은 다음과 같은 것 아닌가? 성공한 어르신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나는 이렇게 살았소.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공하였소. 당신도 열심히 사시오... 이

런 것. 설마 저런 것이겠나 싶었지만, 어쨌든 무엇이든 표현해본다는 데 의의를 두면, 나쁠

것도 없었다. 말은 못 하겠으니, 글이라도 써보자. 내 안에 뭔가가 있긴 있는 거 같았고, 이

시점에서 한번 뱉어내긴 해야 할 거 같았다. 그렇지 않으면 지독한 마음의 변비에 걸릴 것

만 같은 느낌이 들던 때였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에 앞선 두려움에 약간 망설였으나, 일

단 신청했다. 수업은 공짜였다.

금요일 저녁. 서촌 그 책방. 활기찬 웃음이 문 밖으로 새어 나왔다.

글쓰기 수업 첫 시간. 일찍 와 계신 회원 분의 웃음소리였다. 이렇게 쾌활할 수가! 외향

인인가? 부담스러웠다. 큰일이다. 일단 하겠다고 용기는 내보았는데, 과연 잘 해낼 수 있을

지 의심스러웠다. 7명이 모였다. 최근에 읽는 책, 글쓰기 수업을 신청한 이유 등을 돌아가

면서 이야기했던 것 같다. 솔직히 말하면 기억도 안 난다. 그저 잔뜩 긴장해서, ‘아. 이거

해도 되나? 하지 말까? 어떻게 하지?’ 이 생각만 했다. 다음 주 화요일까지 글을 한편 써서

단톡방에 올리고, 금요일에 서로의 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고 한다. 알겠다 하고 집에 돌

아왔다.

글짓기. 초등학교 방학 숙제로나 했지. 나는 왜 이런 ‘쓸데없는’ 일을 하겠다고 했는가?

도대체 어떤 글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 머리를 쥐어뜯었다. 글쓰기 수업을 신청했던 과거

의 나를 탓했다. 방학 숙제를 꾸역꾸역 했던 것처럼 글쓰기 숙제를 가까스로 했다.

글감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것이 방귀였으니, 그동안 방귀에 관해 가지고 있던 나의 생각

과 경험을 썼다. 글을 쓰는 행위가 방귀를 뀌는 것과 같이 나의 생각을 뿡뿡 분출해내면

좋겠다는 소망을 담은 글 한편이었다. 첫 글 치고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림을 그

리면 화가, 글을 쓰면 작가. 나는 작가가 된 기분이었다.     

두 번째 금요일. 함께 수업받는 이들의 글을 읽으니, 내 글이 부끄럽고 너무 가벼웠나

싶었다. 나를 좀 더 깊이 들여다보고 진지하게 썼어야 했다. 작가 선생님께서는 00님이 쓴

진중하고도 뭔가 비밀스러운 느낌의 글을 칭찬했다. 아. 저렇게 써야 하는 건가? 반성하며

그다음 주부터 내 마음속 상처가 뭐 없나 뒤지기 시작했다. 기억나는 에피소드들이 있어

서 주섬주섬 꺼내 썼다. 마무리를 어떻게 지어야 할지 몰라서 며칠을 고민하다 마감시간에

떠밀려 마침표도 찍지 못하고 내버리기도 했다.

다시 돌아온 금요일 합평 시간. ‘대체 무슨 소리냐?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좋다

는 거냐, 싫다는 거냐?’ 이런 피드백이 있었다. 상처를 꺼냈다가 상처가 또 생겼다. ‘에이.

괜히 한다고 했어.’ 후회하기도 했다. 그래도 일단 말하고 두들겨 맞아보자고 시작한 일이

었기에, 아프지만 참아보았다. 역시 아프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인지 나조차 모르고 썼던 글의 귀퉁이에서 용케도 마음을 읽어

내고, 상처를 발견해 ‘마데카솔’(혹은 ‘후시딘’)을 발라주던 사람들. ‘힘들었겠다. 나도 비슷

한 경험이 있었는데, 마음이 아프다. 화자를 응원한다.’ 이런 감정과 말들이 오갔다. 그렇게

6주 동안 글과 마음을 함께 나누었다.

우리는 나이도, 이름도, 직업도 정확히 몰랐다. 알고자 하면 만난 지 6분 만에 알 수 있

는 것들임에도 어느 누구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저 글이 보여주는 마음의 구석을 함께 바

라보았다. 서로의 글이 더 나아지길 응원하고 서로의 일상이 더 행복하길 바랐다. 금요일

밤 서촌 그 책방의 불빛은 따뜻했다.

덧붙임) 2022년 가을. 어쩌다 시작한 글쓰기는 계속되었고, 우리들의 단톡방은 송년 모임

이야기로 시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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