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에 권력공백이 생겼다. 사장님이 5년 만에 갖는 장기 휴가 여행 때문이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사장님은 책방 주인을 해보고 싶은 독서모임 회원들에게 각자의 색깔로 맘껏 책방을 운영해볼 기회를 제공해 주셨다. 덕분에 나는 작은 한옥 책방의 사장이 되어볼 수 있었다.
알다시피 책은 그리 ‘핫’한 상품이 아니다. 날 선 상업주의와는 거리가 먼 작은 책방이 주는 상대적 안전함과 편안함 때문인지, 내가 만난 책방 손님들은 책방이나 책방 주인에게 덜 방어적이고 심지어 호의적으로 보였다. 그런 훈기를 음으로 양으로 전해주신 몇몇 손님들께는 아쉬운 마음에 자연스럽게 차를 권하게 됐다. 작은 한옥 책방이 만드는 안온한 분위기 속에 예정에 없던 대화를 나누게 된 그들은 우리처럼, 평범한 듯 특별한 사람들이었다.
시험공부에 지친 자신을 위해 서촌으로 하루 나들이 나온 수험생. 그녀는 아침에 내린 부슬비에 굴하지 않고 평소 오고 싶던 책방에 오길 잘했다며, 예상에 없던 낯선 사람과 대화를 즐거워했다. 미 대사관에서 교환 학생 비자 때문에 꿀꿀 해진 기분을 풀러 서점에 온 대전의 에너자이저 두 자매. 책과 서점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는데, 독서모임이 활발한 우리 책방을 부러워하며 자기 동네 독립서점의 미래도 생각했다. 긴 면접 시간 대비용 커다란 에너지바와 빵을 건네며, 하이힐과 무거운 짐이 잔뜩 든 가방을 내려놓던 취준생. 그녀는 내가 추천한 책을 새내기 사장의 첫날을 응원한다며 선뜻 사줬는데, 긴 면접으로 지쳤을 텐데도 남을 생각해주는 그 마음씨에 감동받았다 (내가 사장이면 당장 채용!). 3년 만에 한국에 나왔다는 일본에서 활동하는 타투이스트. 그녀는 글을 써보고 싶다며 이 작은 책 방에서 글쓰기 관련 책 두 권을 골랐다. 지금도 눈에 선한 그녀의 맑고 차분한 눈망울은 읽어 본 적 없는 그녀 글에 이미 신뢰를 갖게 만들었다.
일면식도 없는 이들과 서로 눈 맞추고 얘기를 주고받다 보니 마음이 서서히 차올라 그득해지는 기쁨이란 게 이런 것인가 싶었다. 그날 서점에서 마주 앉은 우리는 안전하고 편안한 상태였다. 낯선 사람들이 잠시 경계심을 내려놓고 책을 매개로, 인간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작은 것들을 나누며, 자기도 모르게 서로 위로받는 그런 순간들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나와 이 공간을 믿어주는 것 같아 고마웠고 뿌듯했다.
이 특별한 경험은 내게 안전가옥을 떠올리게 했다. 어쩌면 책방이 사람들에 게 안전가옥 같은 역할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투 같은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무기와 방패를 내려놓고 휴식과 충전을 취할 수 있는 곳. 그래서 다시 세상과 마주할 힘을 얻을 수 있는 곳. 책방은 그런 장소가 될 수 있다. 지친 이들의 물리적 심리적 지원 공간인 안전가옥은 궁지 몰린 제임스 본드 같은 비밀 요원들만 필요한 게 아니다. 우리에게도 꼭 필요한 장소이다.
안전가옥에 비밀요원까지 나온 김에, 독한 얘기 하나 더 보태려 한다. 바로 아우슈비츠 수용소 얘기다. 정확하게는 프리모 레비의 세계적 명저 ‘이것이 인간 인가’라는 아우슈비츠 경험담에 나온 로렌초라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우슈비츠 수용자들의 평균 수명은 3개월, 사망률은 90~98%. 생존이 기적이다. 모든 것이 혹독한 상황에서 수용자들은 살기 위해 훔치고 뺏으며, 인간이 아닌 모습으로 체념과 무기력 속에 살다가 아주 가끔씩 찾아오는 수치심에 괴로워한다.
그런 상황에서 만난 이탈리아 민간인 노동자, 로렌초는 여섯 달 동안 매일 프리모 레비에게 빵 한쪽과 자기가 먹고 남은 배급을 가져다주었다. 낡은 스웨터를 기워서 주기도 하고, 고향에서 온 엽서도 받아주고 답장도 전해준다. 그런데 이 모든 일에 그는 어떤 보답도 바라지 않았다. 작가는 그가 착하고 단순한 사람이라 자신의 행동이 보답받을 만한 선행을 베풀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작가는 로렌초의 이런 무덤덤한 선행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다음과 같이 알려주었다.
‘나는 지금 내가 이렇게 살아 있게 된 것이 로렌초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물질적인 도움 때문이라기보다는 그의 존재 자체가 나에게 끝없이 상기시켜준 어떤 가능성 때문이다. 선행을 행하는 너무나 자연스럽고 평범한 그의 태도를 보면서 나는 수용소 밖에 아직도 올바른 세상이, 부패하지 않고 야만적이지 않은, 증오와 두려움과는 무관한 세상이 존재할지 모른다고 믿을 수 있었다. 정확히 규정하기 어려운 어떤 것, 선의 희미한 가능성, 하지만 이것은 충분히 생존해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로렌초 덕에 나는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을 수 있었다.’
훈훈한 책방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살벌한 아우슈비츠 얘기를 꺼내게 된 건, 로렌초의 모습에서 작은 책방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로렌초는 자신이 한 일을 대단한 선행이라고 생각지 않았다. 하지만 폭력과 증오가 판치는 전쟁 중에, 멸시의 대상인 유대인 수용자에게 자기에게도 부족한 배급 음식을 매일 나누고 편지 심부름을 해주며 낡은 옷을 기워주던 그의 행위는, 일상의 얼굴을 한 기적이라는 말 밖에 달리 할 말이 없다. 작가가 언급했듯 그를 살린 건 음식, 편지, 옷 같은 물질적 도움이 아니라 로렌초라는 사람의 존재 자체가 준 위로와 힘 때문이었다. 이런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 프리모 레비는 희미하게라도 선의 존재 가능성을 믿게 되었고 생존할 힘까지 얻게 된 것이다.
책과 거리가 먼 세상 시류에 아랑곳하지 않고, 책 없는 세상은 아예 생각해 본 적 없다는 듯, 특별할 것 없이 오늘도 덤덤히 문을 열고 있는 책방의 모습에서 나는 로렌초를 발견했다. 그런 작은 책방들의 존재 자체가 내겐 로렌초의 무덤덤한 선행과 닮아 보였다. 책이 주는 위로와 힘을 당연한 듯 여기는 이 묵직한 존재감 때문에, 조용한 품위와 근원적 힘까지 느끼게 된다. 책방이 내게 직접적으로 무엇을 주어서가 아니라, 존재 그 자체로 나는 위안과 힘을 얻는다. 그래서 책방은 있는 그 자체로 이미 내게 안전가옥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부디 이 안 전가옥을 이용하는 동지가 많이 생기면 좋겠다. 책 공화국의 무궁한 발전과 동지들의 안녕을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