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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영남 서촌 그 책방 Oct 30. 2022

 출판사와 책방, 그 수줍은 연대

2018년 봄 이후로 한동안 어쩐지 동네책방의 문을 열고 들어가기 쉽지 않았다. 책방은 어느 도시에 가도 먼저 찾는 것이 자연스러울 만큼 익숙했다. 독자로는 말할 것도 없고, 다니던 출판사 직원으로도 자연스럽게 환영받던 곳이었다. 책방 문을 선뜻 열고 들어가지 못하는 건 내가 달라졌기 때문이었다. 편집자로 일하다가 직접 출판사 ‘혜화1117’을 차려 첫 책을 펴낸 것이 바로 2018년 봄이었다. 책방은 더 이상 독자인 나의 취향을 공유하고 확인하는 장소일 수만은 없었다. 가급적 많은 책방에 ‘혜화1117’ 책들이 꽂히도록 해야 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바람일 뿐, 책방마다의 책꽂이에는 한 해에 수십수백 권의 책을 내는 출판사, 이미 빛나는 목록을 품고 있는 1인 출판사 책들로 빼곡했다. 신생 출판사의 빈약한 목록에 눈길을 주기에 그들은 너무 바빴다.

책방에서 ‘혜화1117’의 책을 만나는 일은 거의 없었다. 한 권, 두 권, 세 권쯤 냈을 때였던가. 기대 없이 서촌에 생긴 지 얼마 안 된다는 책방 유리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리고 나는 발견했다. 

 “나는 핵심을 정확하게 간파하는 대담 형식의 책을 좋아한다. 더구나 평생 한국근대미술사의 현장에서 헌신해온 미술사학자 최열과 주목받는 소장학자 홍지석이 마주 앉았으니 뭘 더하랴! 그간 박물관과 미술관을 드나들며 품은 답답함과 의문을 제대로 풀 수 있어서 좋았다. 시대적으로는 조선과 일제와 대한민국을 섭렵하고, 동양화와 서양화를 막론하며, 화가와 비평가의 시선을 다 담았으니, 한국 미술 전반을 통섭하며 종합적으로 정리하는 느낌. 가슴에 콕 박힌 지적. “미숙한 자의 오만함을 경계해야 합니다. 자신의 부족한 지식과 미숙한 감각을 내세워 근대미술을 선 규정하고 재단하며 판단하는 태도를 버려야 합니다.” 어이쿠, 죄송!”

 ‘혜화1117’의 세 번째 책에 붙은 책방 사장님의 손글씨 추천사였다. 번역서보다는 한글로 쓴 책을, 출판사에서 알리려는 책보다는 책방 사장님이 직접 읽고 고른 책을, 책을 파는 데서 그치기보다 독서모임을 꾸려 함께 읽고 토론하는 걸 즐기는 서촌그책방과의 첫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혜화1117의 책들은 동네책방에서 그리 인기가 높지 않다. 대체로 두껍고 책값도 비싸다. 편하게 선뜻 골라 펼치기가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촌그책방 사장님의 손글씨는 자주 붙는 편이다. 우리 책에 붙은 손글씨를 볼 때마다 마음이 쓰인다. 많이 팔릴 법한 책에 추천사를 붙이셔야 매출에 도움일 될 텐데, 어쩌나 하는 마음. 좋으면서도 어쩐지 신경 쓰이는 그 마음. 그런 한편으로 내가 어떤 마음으로 책을 만드는지, 그분은 어떤 마음으로 책을 파는지 이심전심으로 통하고 있다고 내 멋대로 믿어버리는 마음. 6권의 책을 펴낸 2019년 가을, 처음으로 만든 도서목록에 서촌그책방 사장님의 추천사를 실었던 건 역시 그 마음에서 비롯했다. 

 “혜화1117은 수줍은 자들의 연대를 꿈꿉니다. 드러내 놓고 스스로를 알리는 데 서툰 사람들끼리 어깨를 겯고 함께 나아가고 싶습니다. 서울 경복궁 인근 서촌 골목 안 작은 한옥에 자리 잡은 ‘서촌 그 책방’은 혜화1117과 나란히 가는 곳입니다. 이곳에서는 책방의 대표가 읽고 좋았던 책, 특히 한국어로 저술한 책을 선별해서 판매합니다. 책마다 손글씨 추천사를 정성껏 써놓고 한 달에 한 권을 선정해서 독서모임을 활발하게 꾸리고 있습니다. 우연히 만나게 된 이곳에서 혜화1117의 책들마다에 붙은 책방 대표님의 추천글을 보았습니다. 우연히 닿은 인연으로 이곳에서 독자와의 만남도 갖게 되었지요. 책 골라주는 일을 업으로 삼은 하영남 대표님의 글을 중심으로 혜화1117의 책을 소개합니다. 이렇게 책을 통해 이어지는 모습이 그저 좋기만 합니다. 책이 만들어내는 더 많은 인연, 그것으로 만들어지는 작지만 견고한 이야기를 기대합니다.”

 그로부터 만 4년이 지났다. 어느덧 18권의 책을 만들었다. 지금은 어떨까. 혜화1117의 책이라면 무조건 믿고 책방에 들여놓아 주시겠다고? 천만의 말씀. 여전히 맘에 든 책만 들여놓는다는 사장님의 원칙은 변함이 없다. 그래서일까. 새 책이 나온 뒤 들른 책방에 우리 책이 놓여 있는 걸 본 뒤에야 나는 비로소 안심한다. 이번에도 무사히 책방에 진입했구나 하는 그런 마음이다.

출판사와 책방은 어떤 관계여야 할까. 서로의 이익에 크게 기여하는 관계도 좋을 것이다. 서로가 하는 일이라면 무조건 믿어주는 관계도 좋을 것이다. 여기에 더해 하고 있는 일에 긴장하게 하는 관계라면 어떨까. 나에게 서촌그책방은 그런 곳이다. 관성에 젖지 않고 내가 지금 만들고 있는 책이 이곳을 통해 독자들께 가닿는 데 부족함 없도록 한 번 더 살피게 하는 그런 곳. 출판사와 책방 사이에 흐르는 이런 긴장감이 나는 제법 마음에 든다. _혜화1117 이현화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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