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수 없이 사랑하는 나의 벗 그대여” (그대에게, 강아솔)
- 이수빈, 장혜수
✉수빈이 혜수에게
낯 간지러운 걸 병적으로 싫어하는 우리가 편지를 주고받는 날이 오다니. (‘오래 살고 볼 일이야’까지 쓰면 다른 분들이 웃으시겠지?) 하여튼, 좋다고 나는. 우리 햇수로 12년을 알고 지냈는데도 해본 일보다는 해보지 않은 일이 많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그리고 이렇게 처음 주고받는 편지를 너와 나 아닌 누군가가 읽는다고 생각하니 자꾸만 더 잘 쓰고 싶은 마음이 앞선다. 우리의 사적인 글을 들여다보는 누군가가 너를 좋게 그려낼 수 있도록, 너에 대한 칭찬과 자랑을 ‘논리 정연하게’ 쏟아내고 싶은 마음이랄까.
서촌 그 책방에 처음 들어섰던 날을 기억하냐고 묻는 게 민망할 정도로 선연하게 기억하지? 그날은 올해의 첫날이었고, 우리는 올해의 첫 손님이었어. 정확히 말하면 우리가 아니라 너였지. 나는 책을 사지 않았으니까. 너도 별반 다르지 않았겠지만 나는 책을 잘 읽지 않는 사람이었고, 잘 읽지 않는 것보다도 훨씬 더 잘 사지 않는 사람이었어. 집 앞에는 큰 공공도서관이 있고, 만 원 조금 넘는 책값도 부담이 되는 3년 차 취준생이었거든, 너도 알다시피. 그랬던 내가 올해에만 벌써 스물세 권의 책을 읽었고, 취업을 해서 돈을 벌고, 일찍 퇴근하는 날이면 가끔 책방에 들러 몇 권씩 책을 산다, 혜수야. 돌이켜보니 그 모든 걸 너와 나누었네. 읽고서 좋았던 책은 제일 먼저 너에게 권했고, 회사에 합격하자마자 너에게 알렸고, 책방에 들르는 날마다 너에게 연락을 했구나. 내가 좋아하는 건 너도 분명 좋아할 테고, 나의 기쁨은 곧 너의 기쁨일 테니까. 네가 좋았으면, 또 기뻤으면 해서. 그리고 나의 평안에 네가 안도했으면 해서, 내 일상은 더 이상 지난하지 않다고 전하고 싶었나 봐.
아, 글을 길게 늘였다가 전부 지우고 다시 돌아왔어. 책 한 권, 한 권을 떠올리며 적어볼까 했는데 A4 한 장이 생각보다 작구나? 대신에 우리 같이 읽은 책의 한 구절을 꺼내 볼까 해. “누군가의 책장을 곰곰이 살펴보면 찾을 수 있는 삶의 단서 같은 것이 있다. 이러한 관찰로부터 우리는 그 사람의 소망과 절망이 그곳에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188페이지에 나오는 구절을 빌려서, 아직은 빈 공간이 많은 우리 둘의 책장에 같은 책들이 꽂혀 있어서 좋다는 말을 하고 싶어. 그리고 이 두 문장을 빌린 김에, 네가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도 감히 말해본다. 나는 절대로 다른 이들이 내 책장을 곰곰이 살펴보게 두지 않을 사람인데, 그게 너라면 그냥 보게 둘 거야. 나의 삶의 단서들, 내 모든 소망과 절망을 진열해 둔 책장을 기꺼이 내보일 수 있는 사람은 네가 유일하지 않을까.
‘빌린다’고 하니, 6월의 독서 모임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네. 책을 빌려서 내 이야기를 했던 거, 민망스럽지만 후련했어. 그리고 너한테 많이 미안했는데 네가 알려나 모르겠다. 남들 앞에서 엄마 이야기하면서 우는 거 정말 싫은데, ‘부재’, 혹은 ‘결핍’에 대한 책을 읽고서 내가 나눌 수 있는 감상이 그것밖에는 없더라고. 하필이면 우리는 그날따라 멀찍이 떨어져 앉았고, 그 덕에 네 얼굴을 마주 봤는데 아차 싶었어. 너에게조차 한 번도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를 잘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덜컥 해버리는 나를 보고 네가 서운하진 않았을지, 그때를 떠올리면 여전히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약간의 변명을 덧붙이자면, 위로까지 받기가 좀 그랬어. 내 모난 면면이 이러하고 저러해서 모나게 되었다고 설명하지도 않았는데도 다 이해해주는 너에게, 힘듦을 털어놓으면서까지 구태여 위로받고 싶진 않았어. 너에게 이해받는 것으로도 이미 위로가 돼서 충분했어. 그렇지만 나도 너에게 이해와 위로를 전부 주고 싶으니까 너 또한 그러하겠지. 그러니 힘듦을 털어놓기 어려울 때는 책을 빌려 이야기할게. 더 많고 깊은 마음들을 책을 빌려 너에게 전할게. 그리고 이해와 함께 위로도 받을게. 이게 앞으로의 독서 모임이 기대되는 가장 큰 이유야.
너를 생각하면 나는 시공간을 가뿐히 뛰어넘어서 기숙사 303호 이 층 침대에 누웠다가, 자습실 앞 복도에서 찢어지게 웃다가, 간식시간에 운동장을 돌다가, 벚꽃 내리는 중간고사 기간에 벤치에 앉아서 벚꽃엔딩을 듣다가, 또 금방 낙산 공원에도 가고 묵호도 들렀다가 이내 서촌에 다다라 책방에 들어선다. 첫 독서 모임 때 나도 나름 긴장해서 눈알만 도록도록 굴리고 있었거든? 그런 내 옆에 붙어 앉아서, 너무 긴장돼서 어제부터 배가 아팠다고 소곤소곤 말하는 네가 “전화로 자장면 시키는 것도 잘 못 할 만큼 소심하다”라고 자기소개를 하던 2011년의 너랑 빈틈없이 겹쳐져서 나는 긴장을 잊고 웃었어. (야 근데 자기소개하면서 약점 드러내는 거 진짜 아무나 못 한다? 그거 진짜 용기 있어야 할 수 있는 거야) 아무튼, 너를 떠올렸을 때 들를 수 있는 시공간이 또 생겨서 좋다고. 너를 생각하면 언제든지 2022년의 서촌, 서촌 그 책방, 독서 모임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아서 좋다고, 혜수야.
우리는 좁은 기숙사 방에서 같이 살기도 했고, 각각 대구와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지금도 한 달에 두세 번은 볼 정도로 자주 만나지만, 독서 모임이 있는 날이면 새로운 친구 만나러 가듯 설레곤 해. 12년을 알고 지낸 너를 만나러 가는 게 아니라, 앞으로의 너를 미리 만나러 가는 기분이랄까. 둘이 있을 때는 깔깔대고 웃기 바쁜데, 독서 모임에서 작지만 단단한 목소리로 말하는 너를 보면 꽤 어른같이 느껴지거든. 그러니까 우리 계속 책을 읽자. 책을 읽고 든 생각을 말하고, 책을 빌려 마음을 나누고, 책장에 같은 책을 꽂으면서 더 나은 사람이 되자. 그렇게 시간과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다가, 삶의 어느 지점이든 둘이 함께 좋았던 곳으로 잠깐씩 돌아갔다 오자. 때로는 책 속으로 들어갔다 나오기도 하고, 아직 닿지 않은 시간도 슬쩍 엿보고 오자. 그러려면 우선, 이번 달 독서 모임 책을 얼른 읽어야겠지? 하하...
✉혜수가 수빈에게
나의 2021년은 헛되었고, 너의 2021년은 지난했어.
각자 다른 이유로 새해를 기다렸던 우리는 아주 우연히 서촌의 작은 책방 문을 두드렸지. 취미 하나 없이 일만 했던 나는 인생의 재미를 찾아 평소 즐겨보는 TV 프로그램에 나온 책방에 한번 가보자고 너를 꼬셨고, 마침 취업 준비 중 잠깐의 여유가 생겼던 너는 흔쾌히 좋다고 했던 거야. 그런데 이게 웬걸. 그 책방은 하필 신년 휴무였네. 나는 '그럼 그냥 맛있는 밥이나 먹자'며 식당을 찾아보고 있었는데 휴대폰 알람과 함께 네가 보낸 링크가 도착했어. '서촌 그 책방(도서) 서울시 종로구 자하문로 5가길 30-1'.
2022년 새해 첫날, 그 책방의 문을 열고 들어가던 순간을 아직도 기억해. 책방의 몸집에 비해 문이 꽤나 묵직했다는 걸. 그리곤 생각했지. 어쩌면 이 공간의 밀도가 높을 수 있겠다고. 이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너무 재미있거나 너무 소중해서 함부로 바깥에 새어 나가지 못하도록 이렇게 묵직한 문으로 꾹 눌러두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우연처럼 찾아왔지만, 필연처럼 또 찾아오게 될 거라고.
나의 예감은 의외로 정확했나 봐. 너와 나는 그 책방의 독서 모임 회원이 되었고, 책방은 우리의 서촌 필수 코스가 되었지! 우리의 아지트가 생긴 거야!
더욱이 책방은 우리가 친구로서 보통 사이가 아니라는 걸 확인해주는 공간이었어. 책방에 진열된 책 중 네가 추천하는 책은 '역시나' 재미있었고, 독서 모임에서 이야기하는 너의 생각과 말은 '역시나' 나의 것과 같았거든. 당연한 일이라고 여겼어. 나는 너를 다 안다고 생각했으니까. 우리가 공유한 경험과 함께 보낸 시간이 그걸 증명한다고 믿었거든. 여느 친구와도 그렇듯 내가 너와 어떤 계기로, 어떤 사건으로 친해졌는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이해해 줘. 기억력이 다소 부족해.), 보통의 여고생처럼 매일같이 붙어 다니면서도 다투기도 하고, 귀여운 일탈도 저지르며 서로의 일상이 되었어. 대학에 가서도 변한 건 없었어, 너와 함께라면 모든 게 어설퍼도 재미있었고 모든 게 단순해져서 용감했어. 너는 뭔가 말이 잘 통하는 게 있고, 취향은 물론 생각하는 것도 비슷하달까? 어찌나 잘 맞는지 대화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를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어. 카페 아르바이트생의 따가운 눈초리에 못 이겨 마감 시간이 다 돼서야 쫓겨나듯 나와 아쉬움 가득히 헤어지던 게 일상이었잖아.
그런데, 6월의 책방에서 나는 네가 낯설어진 거야. 소설 '선릉 산책'의 사라지던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너는 울었어. 이제 그만 살고 싶다는 어머니와 아들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너는 그동안 애써 묻어둔 '어머니의 부재'를 담담하게 털어놓는가 싶더니 와르르 쏟아졌어. 나는 마치 그날 널 처음 본 사람처럼 생경한 표정을 한 채 너의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었어.
너에 대한 나의 첫 기억은 10년 전 고등학교 오리엔테이션 첫날로 거슬러 올라가. 유독 낯을 심하게 가려 새 학기마다 고생하던 나는 운 좋게도 나에게 호의를 베푸는 친구를 만났고, 그 친구의 손에 이끌려 네가 있는 곳으로 가게 된 거야. 너는 대강당 맨 앞자리에서 이미 친해진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있었어. 뒤에서 소심하게 다가오는 인기척을 느꼈는지 네가 몸을 돌려 나를 올려다보았고, 그 순간 내 눈에 들어온 너의 또랑또랑한 눈동자는 너의 가늘고 여린 몸집을 압도하기까지 해서 어쩌면 보기보다 내면이 단단한 사람일 수 있겠다 싶었어.
그러다 얼마 지나지 않아 너에게서 문자 한 통을 받았어.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셨다고. 아주 어렸을 적 일이라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다고. 그러니까 조심스러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다른 친구들처럼 거리낌 없이 똑같이 편하게 대해달라고 말이야. 나는 널 처음 봤던 그날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고, 너를 그렇게 이해할 수 있었어. 근데 한 가지 실수, 나는 순진하게도 무척이나 담담한 너의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버렸던 거야. 11년이 지난 그날까지도.
6월의 책방에서 그제야 나는 네가 왜 이 책을 읽기 싫다고 했는지 알게 됐어. 참 부끄럽더라. 너는 이 책을 읽으면 마음이 안 좋아진다고 내게 이야기했었는데 난 별 대수롭지 않게 흘려들었어. 너를 다 안다고 자신하면서도 나는 그 이유를 알아차리지 못했던 거야. 마치 너의 아픔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외면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지. ‘내가 알던 너는 늘 씩씩한 친구였는데 아무렇지 않다는 말은 순 거짓말이었구나. 난 널 순간순간 외롭게 했구나. 그래서 더 외로웠겠구나. 너는 그것마저도 이해해주었구나.’라고 말이야. 한편으로는 속 이야기를 잘 꺼내지 않는 네가 이렇게라도 책방에서 털어놓아 준 게 고마웠어. 또 나보다 멋진 책방 어른들이 너를 따뜻하게 위로해주어 참 다행이라고도 생각했어.
우리 시시콜콜해지자고 했던 거 기억나? 그 소원 참 이루기 어렵다며 웃어버렸잖아. 평범해지는 게 결코 쉽지 않은 것처럼 말이야. 돌이켜보니 우리는 그 소원을 이미 이룬 것 같아. 행복하고 즐거운 일은 함께 누리고, 슬프고 힘든 일은 함께 나누어 훌훌 털어내고 마는 것. 그렇게 가벼워지는 것. 6월의 책방이 그랬던 것처럼.
나의 오랜 친구 수빈아, 그날 이후 집에 돌아와 혼자 끄적이다 미처 부치지 못한 문장들을 함께 전한다.
"살아온 시간은 같은데 나보다 더 어른이 되어버린 너. 나의 어리석음과 미성숙함이 너를 아프게 했던 적도 있었지만 너는 나보다 더 어른인지라 그마저도 이젠 괜찮다며 손사래를 치네. 그런 너는 나를 돌아보게 하고 더 나은 사람, 더 나은 친구가 되게 해. 너와 함께 있으면 나의 시간은 17살 학교 복도에서 깔깔대던 그때로 돌아가 멈춰. 삶이 버겁거나 감당하기 어려울 때면 나에게만큼은 언제든 가볍게 찾아와. 아무 걱정 없던 열일곱의 모습으로 너를 반겨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