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촌 그 책방
서촌 그 책방의 특이점은 무얼까? 한옥 공간에 한글 저자의 책만을, 그것도 책방지기가 읽고 재미있다고 느낀 책으로만 꾸렸다는 게, 그 첫 요건이다. 요즘 세상에 한글만 고수한다니, 무슨 국수주의자인가? 애정 어린 조언을 여러 번 들었지만, 우리글의 맛은 한글 저자가 제대로 살린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책방지기가 읽고 재미 여부를 판단한다는 책, 또한 이견이 있을 것이다. 너무 주관적이지 않느냐는 반론이 많았다.
세상에 어떤 의견이 처음부터 객관적일 수 있을까? 누군가의 주장이 다수의 인정을 받으면 소위 말하는 말빨이 서지 않을까 생각할 뿐이다. 어느 정도 신뢰를 쌓기까지 나는 다만 부지런히 읽으며 밑줄 치고, 감상을 적어가며 책을 고른다. 현란한 영상의 시대에 싫증 잘 내는 독자의 만족을 위해. 따끈따끈한 신간 위주로. 그리고 그 결과물을 책 표지에 붙여두었다. 대부분의 추천사가 책의 내용을 인용한다는데. “나만의 문장으로 쓴 손 글씨 추천사”, 누가 인정하든 말든 이게 서촌 그 책방의 매력 중 하나다.
세상 모든 일에는 빛과 어두움이 존재한다. 이렇게 읽은 책을 서고에 똬아 전시해 두었더니, 헌책방이냐? 대여점이냐는 질문이 날아든다. 책방의 정체성을 제대로 읽은 결과라 생각해서 요즘은 웃으며 말한다. “사실 책방은 부캐이고 본캐는 독서모임입니다”. 조용한 서촌 골목 햇빛 잘 드는 곳에 책방을 차린 이유? 저자와 독자를 있어주는 소개팅 장소가 필요해서다. 초반의 탐색기를 통과하면 본격적인 만남이 기다리고 있는데, 그게 바로 독서모임이다.
창업을 준비하며 여러 책방을 방문해 보았다. 출판 분야에서 일하던 젊은 주인이 많아서, 아 하! 어쩌면 여기서는 내 나이가 오히려 희소성이 있겠구나 했다. 독서모임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모임 참가자의 대다수가 주로 청년층, 많아야 40대 정도였다. 그럼 장년층은 어디서 놀지? 내가 이들의 구심점이 된다면, 승산이 있지 않을까. 근자감으로 시작했는데, 결과는 더 놀라웠다. 요즘 우리 회원의 연령대는 20대에서 60대까지 정말 다양하다. 관공서와 사무실이 많은 서촌이라는 장소가 준 일종의 어부지리라고 할까?
사람만 모은다고 저절로 굴러가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여기서도 책이 가장 중요한 변수다. 책이 선정되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 혼자였으면 절대 읽지 않을 책이라고 한다. 덕분에 독서 편식을 없앴다는 반응도 나로서는 듣기 좋다. 매달의 책이 좋아야 하지만, 학기제로 운영되니 책 간의 흐름도 무시할 수 없다. 다양한 주제는 기본이고, 너무 어렵거나 너무 가벼워서도 안 된다. 소위 말하는 단짠단짠 조합이 필요하다. 회원 각자의 준비된 열정도 토론의 재미를 배가 시킨다.
서촌 그 책방의 독서모임은 단순히 내용을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책을 읽는 내가 무엇을 느꼈는지 말하는 모임이다. 주인공은 저자도 책도 강사도 아닌 독자인 나의 느낌이다. 그러니 모두 듣기를 작정하고 입을 다물면 모두 재미없어진다. 요리조리 설득해서 활발히 자기 의견을 말하게 하는 것, 강사인 나의 역할이다. 어쩌다 서촌 그 책방의 정체성이 독서모임이라는 소문이 퍼졌는지, 노하우를 묻는 분들이 가끔 있다. 글쎄다. 명품의 비법은 디테일에 있다고 하지 않는가, 그 정확한 요인은 나도 잘 모른다. 이 모든 것의 합심이 불러온 적절한 조화가 아닐까 다만 유추할 뿐이다.
요즘 들어 부쩍 저자와의 대화에 심취해있다. 매달 모임이 끝나면 반드시 저자와의 대화 날을 잡는다. 여기서도 나름 새로운 방법을 시도 중이다. 저자를 모셔다 강연을 듣고 질문을 던지고, 사인을 받고 사진을 찍으면 끝내는 게 일반적이다. 서촌 그 책방 저자와의 대화는 명칭부터 특화시켰다. ‘저자와 나누는 질문 대잔치 날’. 책을 미리 읽는 것은 기본, 읽으며 생긴 의문을 질문하는 날이 바로 저자와의 대화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질문하고, 저자는 강연 대신 대답을 하는 방법이다. 지난 정용준 작가와의 대화에서부터는 하나의 항목을 더 추가했다. 저자도 궁금한 것이 있으면 회원에게 질문할 수 있다고.
작가와 함께하는 작은 서점 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임승훈 작가와 소설 낭독회를 진행 중인데, 이것 또한 너무 재미있다. 독서모임을 해보면 독서의 필요성은 충분히 인지하는데, 미리 읽어오기 힘든 분들이 의외로 많다. 일만으로도 충분히 피곤할 뗀데, 퇴근후 책을 읽겠다는 이 기특한 사람들을 위한 현장 진행형 독서모임. 이걸 어떻게 구현할까 고민 중이다. 박시하 시인이 이끄는 글쓰기 교실도 순항 중이고. 회원들의 글 솜씨가 늘어갈수록 또 다른 꿍꿍이도 무럭무럭 자란다.
나는 왜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는가? 오래 고민해 보았지만, 이 못된 승질을 바꾸기엔 좀 늦은 감이 있는 듯하다. 차라리 이걸 특화하기로 마음을 고쳐먹는다. 그래서 책방의 가장 큰 특이점을 '은근한 변덕’에 두기로 했다. 무한한 호기심을 주체하지 못해서 끊임없이 새로운 일을 모색하지만, 원래 가졌던 초심은 그대로 뭉근히 고수하는 책방. 이것 또한 언제까지 재미를 느낄지 모르지만, 밀고 나가보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