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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영남 서촌 그 책방 Oct 30. 2022

나의 크루즈


6년 전, 인터넷에서 발견한 골목 책방을 서툰 발길로 찾아 떨리는 가슴을 안고 들어섰다. 독서모임을 하고 싶은 마음은 간절한데 한마디도 못할까 봐 망설였다. 선뜻 용기를 내지 못하는 내게,  책방 대표는 "듣기만 해도 됩니다. 하지만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오셨으니 분명 말을 하게 되실 겁니다".  몇십 년 장사에 익숙한 내 눈에 그녀의 과하지 않은 몸짓과 목소리가 시크해 보였다.     


'책은 도끼다 '가 모임의 첫 책이었다. 인용된 글들이 어찌나 많은지 수험생처럼 책을 읽었다.  너무 어려웠다. 밥벌이에 몰두한 40년 세월 동안 책은 내게 멀리 달아나 있었다. 눈은 활자를 보지만 머릿속으로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새벽에 일어나 입으로 소리 내어 읽었다.  눈과 입 , 그리고 귀를 동원해야 비로소 글눈이 틔였다. 밑줄을 그어가며 열심히 읽고 첫 모임에 갔을 때, 다른 회원들의 입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영어 이름과 여유로운 말투에서 잔뜩 주눅이 들었다. 내 눈에 비친 그들은 명문대를 졸업하고 여유로운 삶을 살아온 귀족으로 보였다. 


내가 시장 상인들을 상대로 육체노동에 허덕일 때 빵과 커피를 마시며 책 토론을 해 온 우아한 그녀들 나와 반대인 사람들. 달뜬 목소리를 내며 손님들을 대하고 늘 몸을 먼저 움직이는 게 익숙한 나를 잘 알지 못하는 대표는 <당신의 서울은 어디입니까>  토론을 마친 날 <무지개 떡 건축>이라는 책을 추천해줬다. 다음으로 <명화가 내게 묻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여유로운 세상 이야기를 들여다면서 한 발 들어설 용기가 생겨나질 않았다. 내 삶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결국 나는 일 년 만에 그만두었다. 일벌레답게 다시 일자리를 찾았고 돈을 벌기 시작했다. 그러나 마음의 허기는 시도 때도 없이 생겨났다. 책방 소식에 귀를 쫑긋 세우고 그들과 함께 나란히 가지 못한 자신을 미워했다.   인스타 등에 소개된 책을 홀로 읽었다. 생각이 많아지는 날에는 수 십 년 독서모임을 해왔다는 대표의 탄탄해 보이던 자존감이 머릿속에서 달그락 소리를 내며 자극을 주었다.    

 

내 머릿속에 각인된 '서촌그책방'은 기품이 있었다. 여유로운 호흡 한번 해보지 못하고 통장 잔고만 좇으며 살았던, 잃어버린 자존감을 찾고 싶었다. 조금 단단해진 모습으로 다시 서촌그책방을 찾았다. 인터넷으로 구입하면 10% 할인된 금액으로 친절하게 다음날 배송되는 시스템을 알면서도 책방 대표가 추천해주는 책을 도전정신으로 읽기 시작했다. 아는 만큼 열리는 목소리로 추천해주는 대표의 안목은 몇 푼 안 되는 수수료 따위로 비교할 수 없는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몸에 밴 장사치의 얄팍함을 털어내고 가보지 못한 세상을 활자를 통해 간접 경험하기 시작했다. 한 달에 한 번 모임이 끝나면 책방에서 대여섯 권씩 책을 샀다. 길이 보이자 스스로도 책을 구해서 허기를 채웠다.


매년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을 읽으며 그들을 이해하려 노력했다.  퀴어, 젠더, 페미니즘 등 낯설었던 말들이 귀에 거슬리지 않게 될 무렵 <이웃집 퀴어 이반 지하>를 토의했다.  누구보다도 거칠게 반응했을 내가 어느새 다름을 인정해야 하며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하고 있었다. < 멋있으면 다 언니>,

< 우리가 사랑한 내일들>, <언니 나랑 결혼할래요?>  등을 읽는 동안 단단히 채워졌던 빗장이 열린 것이다.


도슨트를 했다는 책방 대표가 권했던 미술 관련 책도 조금씩 '낯 섬'을 털어내고 있었다. 그림 관련 책을 읽어가며 화실을 다니기 시작했고, 독서모임 회원들과의 토론에 등장한 자료를 꼼꼼히 읽어 내 것으로 만들었다.  자신이 붙어가던 무렵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이라는 책에서 다시 원점. '미학'  이라니. 이반 지하를 읽을 때 욕도 인터넷으로 찾던 기억을 더듬어 도무지 읽히지 않는 텍스트를 향해 글눈이 반응할 때까지 반복 돌진을 했다. 너무도 아름다운 언어들이 숨 쉬던 미학 책을 계기로 나는 귀족이 되었다.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나를 사랑해주기로 했다.


눈물보다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정확한 의사표현을 했더니 제왕적 포스였던 남편이 슬며시 물러났다. 꿀꺽 참는 게 다가 아님을 알려준 책방은 완벽하게 '꿈꾸는 다락방'이 되어주었다. 여세를 몰아 임승훈 작가의 에세이 쓰기 수업을 신청했다. PDF 파일로 글을 써서 제출하라고 했다. 들어보지도 접해본 적도 없던 말에 나는 머릿속이 하앴다. 포기해야겠다며 책방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필순 씨는 칼질이 서툴 뿐이에요. 누구보다도 풍성한 재료를 가졌으니, 훌륭한 맛을 낼 수 있을 겁니다. 겁먹지 말고 먼저 워드를 익힌 후 천천히 해요."      


감동을 받은 나는 열정적으로 다시 시작했다. 친절하지 않은 남편과 아들에게 사용법을 배우려니 당장 때려치우고 싶었지만, 화를 꾹꾹 누르며 묵혀둔 마음을 글로 풀었다. 코로나 시국이라 에세이 수업은 줌으로 진행되었다. 맞춤법 , 띄어쓰기, 행간 조정 등을 지적받을 때마다 부끄럽고, 상처받은 자존감으로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다. 같이 수업을 받는 젊은 회원들에게 나이 든 내가 부담을 주는 건 아닌지도 염려되었다. 먹고사는 일도 아닌데 굳이 이럴 필요가 있는가 하는 생각이 수시로 고개를 쳐들었으나 버텼다.


1기 수업을 마치고 매일 글을 썼다. 어렵게 들어선 글쓰기를 그만두게 될까 봐. 애달픈 심정으로 새벽에 눈을 뜨면 무조건 자판을 두들겼다. 누군가에게 글을 공개하는 것은 민낯을 보이는 것처럼 부끄러웠다. 그러나 글쓰기는 막힌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주는 사이다 같은 매력이 있었다. 시간이 흐르자 울고 있는 내면 아이와 마주할 수 있었다. 장성한 아들이 있는 내가 8살의 시야에 갇혀 울고 있었다. 나는 그 내면 아이를 엄마의 마음으로 안아주었다. 글을 쓰고 읽으며 깊숙이 똬리 튼 슬픔을 게워 낼 수 있었다.  2차 글쓰기를 신청했을 때는 단순한 자기 고백에서 벗어나 타자의 시선을 의식하며 글을 썼다. 


시간이 지나면서 책방은 친정처럼 편안해졌고, 한층 다양해진 책방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했다. 시 쓰기 수업도 참여해 돌덩이처럼 굳어가던 감성을 깨워냈다. 독서모임의 책중 소설을 뺀 나머지는 여전히 생소하고 어렵지만 내게는 반복 읽기라는 절대무기가 있기에 즐길 수 있다. 


독서모임에 가는 날은 늘 설렌다. 진솔한 대화를 통해 다른 세상의 이야기를 듣는다. 수다로 끝나는 친구들 모임은 가난한 마음으로 돌아오지만, 서촌에서 돌아올 때의 나는 마음 부자가 된다. 책장에 빼곡히 쌓인 책 제목을 읽고 있노라면 대학 문턱을 밟지 못했다는 주눅 같은 것은 이제 없다.


6년 전 큰 바다를 향해 맨몸 수영을 시도했던 나는 100미터도 못 가서 다시 육지로 돌아왔다. 노력했다.

뗏목을 만들었고 느리지만 멈추지 않고 나만의 속도로 5년을 꼰대 냄새를 지우려 책을 읽었다. 요란하게 소리 내지 않으며 많이 듣고 끄덕여주는 연습을 한다. 나이를 잊은 나는 빨간 하이힐을 신은 뇌를 장착한 채, 각자의 빛깔로 아름다운 그들과 '서촌그책방'이라는 크루즈를 타고 푸른 바다를 항해할 것이다. 


'서촌그책방' 은 이제 나의 크루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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