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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자 Apr 23. 2020

격리와 단절로 우울감을 처음 겪어보는 분들께

어서오세요, 우울감은 이런 녀석입니다.

재앙의 시기입니다. 거짓말은 하지 않으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2020년에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게 사실 실감이 잘 나질 않습니다. 변해버린 일상도 적응이 잘 안 됩니다. 한 치앞을 보기 힘든 미래도 상상이 잘 가지 않습니다. 무탈했던 지난 일상 별로 다르지 않은 일상을 사는 것 같아 보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반면 저처럼 아직도 적응이 안 되는 새 일상을 곤란해하는 분들도 있겠죠.


걔 중에는 불안감, 당황스러움, 초조함, 무기력함 그리고 우울감을 느끼는 분도 계실 겁니다. 이런 감정을 처음 느끼는 분들도 계실 거에요. 왜냐면 바이러스는 누구에게든

공평하기 때문에 누군가를 가려서 덮치지 않거든요. 원치 않은 변화로, 전에는 사뭇 부정적인 감정을 안 느끼던 분들도 지금 이 시기에는 새로운 감정을 느끼고 있을 수 있겠죠.


어서오세요, 당신과 초면인 우울감에 대해, 저의 경력을 살려 조금 얘기해보려 합니다. 물론 당신의 정신적 면역력, 항상성, 혹은 회복탄력성이 매우 높아서 이 글이 필요없다면 축하드립니다. 그렇지 않은 분들은, 우울감의 특징을 알고 직시한다면, 조금 나아지지 않을까요 - 그런 기원에서 적는 마음입니다. 참고로 저는 눈에 보이는 대부분의, 억지희망적인 얘기나 낙관적인 얘기는 지양하려고 합니다.


1. 우울감은 발에 달린 추와 같습니다. 나를 점점 깊은 곳으로 빠져들게 합니다.

우울감이 들었다면 그건 그 날로 끝날 것이 아니라 반복될 것임을 인지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 반복기간은 당신의 생각보다 길 수 있습니다. 또 이 놈은 참 진득하여, 당신이 한 눈 판 사이에, 늪에 빠지듯이 당신을 한순간에 잠기게 할 수도 있습니다. 다행인 건, 당신이 우울감이 들 때 "우울하다"고 명민하게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그 늪에 빠지지는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혹여 그 늪에 빠졌다 하더라도, 늪에 빠졌다는 걸 깨닫는 것만으로도 터닝 포인트가 될 계기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2. 우울감은 몸을 약하게 합니다. 몸과 마음을 하나입니다.

대체로 저의 경우 우울감은 소화불량, 몸살기, 편두통을 동반합니다. 마음이 아프면 몸도 아프기 쉽상입니다. 약간은 우울감은 가벼운 운동이나 사회활동을 하면 주의를 분산시키기 때문에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본격적인 우울감이 느껴진다면 무리가 가는 활동들은 피할 것을 추천합니다. 많은 의사들이 우울증 환자에게 규칙적 운동을 추천합니다. 만약 우울감이 신체적인 증상으로 딱히 이어지지 않는다면 운동이 도움이 되겠지만, 저처럼 불안, 공포 등으로 번져 열이 나고 몸살로 이어진다면 충분한 영양섭취와 휴식을 먼저 권장합니다. 우울감이 심할 때는 식사조차 어렵거든요.



3. 우울 시에는 혼자 있지 마십시오. 혼자 지내는 분도 적극적으로 누군가를 찾으십시오.

우울감의 적은 고립입니다. 고립은 1번에서 말한 늪에 빠지는 지름길입니다. 요즘 같이 격리가 필요하거나 사회적 거리를 둬야할 시기에 누군가와 함께 있는다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리고 혼자 지내던 사람이 갑자기 곁에 둘 누군가를 찾는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죠.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3번은 무책임한 조언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반대로 이 말은, 만약 주변에 우울감을 느끼는 고립된 누군가 있으면 함께 있어달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 사람은 사회적 가면을 쓰느라 얼마나 힘든지 말을 못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당신이 이 시기에 가족, 남자친구, 아내, 친구와 함께 있을 수 있다면 대단히 행운임을 여기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 - 멀리 갈 필요가 없습니다, 단지 싱글로 타지에서 사는 지인, 가족과 단절된 이, 해외에서 혼자 사는 지인들 - 을 챙겨주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의 삶을 살리는 일이 될 것입니다. 만약 이 조언이 우스운 분이라면 우울에 대한 걱정은 안 하셔도 될 분이니 더 이상 읽으실 필요가 없겠습니다.



4. 전문적인 도움을 찾으십시오. 단, 쇼핑하듯 신중하게 고르고 장기적으로 찾으십시오.

상담사나 신경정신과의 도움은 받을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여기서 주의해야할 점은 매우 까다롭게 비교하고 골라서 한 곳을 오래 다녀야한다는 점입니다. 의료서비스가 편리한 한국에 사는 우리는 종종 동네 슈퍼마켓 가듯 가까운 병원에 가서 의사의 진찰을 무비판적으로 받기도 합니다. 정신건강과 관련하여 이러한 태도는 반드시 지양해야합니다. 신경정신과 의사/상담사마다 스타일, 요법, 성향, 성격, 금액 모든 것이 다릅니다. 따라서 고가의 가구를 사듯이 깐깐한 마음으로, 여러 군데를 다녀서 나에게 맞는 곳을 찾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한 두군데 갔다가 "병원/상담은 효과가 없어"라는 마음으로 전문가의 도움 자체를 포기하게 됩니다. 나에게 맞는 곳을 찾는 법은 추후에 기회가 되면 이 곳에 공유해보겠습니다만, 경험과 공부가 필요한 일입니다. 심리학에 관련된 도서를 최소 1-2권을 읽어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경미한 경우는 그것만으로도 호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사실 이 글을 쓰는 마음이 무겁습니다. 팬데믹은 각자에게 서로 다른 경중의 "불편"을 주고 있습니다 - 누구에게는 죽음과 같이 돌이킬 수 없는 파괴를, 누구에게는 이동에 방해가 되는 성가심과 지겨움 정도를. 서로가 야속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합니다. 억울함은 뭐 말할 필요도 없겠죠.


저는 성인(saint)의 마음으로 감사하고 도와주자는 얘기를 하고 싶진 않습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지키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리고 이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건강하세요", "무사하세요"라고 흘려보내는 말에는 엄청난 노력과 의지가 요구된다는 걸 주장하는 글입니다. 그 노력은 몇 달로도 부족하고, 저처럼 몇 년이 될 수도 있는 일입니다. "이것도 다 지나가리라,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다"라는 막막한 얘기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내가 살아있다는 것이고, 우리는 그것만을 명심해야합니다. 우리는 살아있는 한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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