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되지 않은 글들이 쌓이는 요즘, 이스탄불에서 140여 일을 살아가고 있다. 1월 첫째 주엔 처음으로 튀르키예에서 국내선을 타고 안탈리아로 여행을 했고 그 여행 직후, 아이는 BIS로 진학하기로 결정했다. 이스탄불 살이가 4개월이 넘어서야 나는 학교를 결정했다. 그리고 여행에 돌아와 바로 학교에 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지훈이의 담임선생님의 코로나 확진으로 등교는 다시 미뤄졌다. 그리고 시작된 학교생활은 정확히 5일을 다니고 다시 주말이 되었다. 그리고 학교에서 온 안내 메일은 확진자 발생으로 인터넷으로 수업을 진행한다는 내용이었다.
메일을 받고 다시 일요일 새벽, 아이의 열은 40도를 찍었다. 평소 아무리 아파도 열이 오르지 않는 아이인데, 나쁜 예감이 들었다. 그렇게 온 가족은 잠들지 못했다. 결국 우린, 다시 병원으로 가야 했다.
'Azbadem Maslak 2'
겨우 140일 살면서 여길 몇 번째 오는 건인지 아이는 3일 동안 열이 40도를 오르내리고, 해열제를 교차 복용하고 아이는 많이 아팠다. 그리고 의사는 지훈이에게 코로나 검사를 권했다.
아들의 코로나 검사 결과는 Positive 양성. 즉 코로나 확진, 그 결과에 따라 PCR 검사를 실시한 남편과 나는 음성이었다. 아들은 다행히 열을 제외하곤 큰 증상 없이 점차 나아갔다. 그러나 다행이라는 괜찮다는 말이 무섭게 5일 후, 나도 코로나 증상이 나타났다. 아들은 너무 어렸고 그는 온전히 격리할 수 없었다. 그를 안고 달래며 돌보는 엄마인 나는 당연히 지훈이에 의해 코로나 19에 감염되었다.
이스탄불에는 기록적엔 폭설이 내려 한국 뉴스에까지 이 소식이 전해졌다. 꼬불꼬불하고 오르막 내리막이 많은 이 이스탄불에서 등교정지는 당연한 일었다. 눈이 내렸다. 눈은 온 세상을 모두 덮어버렸다. 이스탄불 시내 및 시외의 모든 배달은 멈추었고 집 주변의 인근 가게 또한 모두 문을 닫았다. 눈에 의해 닫혀 버렸다.
우리 가족은 격리 해제를 꿈꿨지만 나의 확진으로 다시 격리가 시작되었다. 남편이 코로나에 걸려 2주간을 그를 못 보았던 것을 보상하는 것인지,우리가 그 시간이 잊기도 전에 나와 지훈이는코로나에 확진되었고 남편은 밀접접촉자로분류되어 마찬가지로 우리 집에서 격리를 시작했다. 남편, 아이 그리고 나. 이로써 이스탄불에서 우리 가족은 모두 코로나에감염되었다.
눈은 억수같이 내리고 도로는 마비되었다. 지훈이는 온 가족이 모두 집에 있는 상황이 좋은지 웃으며 장난을 쳤고 나는 증상이 심해졌다. 시간이 흐르길 기도했다. 어느새 또다시 2주가 지났다. 그렇게 고비를 넘겼다. 우린 남편의 출근을 위해 온 가족 모두 다시 PCR 검사를 실시했다. 남편은 지훈이와 나의 코로나 확진으로 3주간 재택근무를 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코로나 확진으로 2주간 회사 숙소에서 재택근무 및 격리를 하였다.
이스탄불에서 총 5주간의 재택근무와 격리를 한 나의 남편, 우리는 음성이 나오길 기다리며 매주마다 다시 PCR 검사를 새로 해야 했다.
나는 헛웃음이 나왔다. 주재원의 아내로서의 삶의 시작은 작년 유월에 맞은 얀센이었다. 백신 부작용으로 두통과 오심에 몸무게가 5kg가 빠졌고 발령일이 다가오자 남편은 미안함을 남기고 먼저 이스탄불로 떠났다. 그가 떠난 자리에서 나는 혼자 아이를 재우곤 밤새 짐을 싸며 그렇게 나는 이곳에 왔다. 혼자서 다녔던 해외 생활을 되돌아볼 때, 나는 아이와의생활이 결국 고생일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온 가족 모두 코로나에 걸려 격리를 연거푸 겪으니 이제 헛웃음이 나왔다. 아니 웃음도 눈물도 나지 않았다. 코로나 증상에 몸이 아파도 화도 눈물도 나지 않았다. 겨우 5일 동안 아이를 학교로 보냈건만, 지난 4개월간 짐 없는 이 집에서 그를 돌보았던 시간이 무색할 만큼 그는 학교로 가자마자 코로나 19에 확진되었다.
그렇게 우린 2주를 아프고 서로를 쓰다듬다가 격리를 끝내고 무려 3주 만에 온 가족은 집 밖을 나설 수 있었다. 남편은 이스탄불 살이에서 총 5주간 격리를 했다.
남편 혼자 확진돼서 회사 앞의 숙소에 있을 때와는 다르게, 나의 몸이 아픔에도 아이와 나 단둘만 남아있던 집보다 재택 근무 중이었지만 남편과 함께해서 마음이 편했다.
아이와 나 단둘이 아니라는, 그 막연한 불안감이 없어 나는 아파도 웃을 수 있었다. 그동안 이스탄불은 끊임없이 눈이 내렸고, 쌓이고 또 쌓이고 그리고 녹기 시작했다.
어느새 1월 30일. 시간이 지나고 있다. 모든 게 새로워질 수 있는 시간이다. 내일부터 한국은 설 연휴겠지만 이곳은 다른 날과 다름없는 평범한 하루다. 그러나 우리 가족에겐 특별한 오늘이다. 다시 월요일, 이제 온 가족이 3주 만에 밖으로 나가는 시간이다. 이제 적어도 우리 가족에겐 코로나는 없는 거다. 이 세상에서 우리 모두는 잘 겪고 잘 이겨냈으니까. 이제 다시 우리에게 코로나는 없다.
시떼 입구에 경비 아저씨는 '모든 게지나갔어.'라고 내게 말한다. 아무리 힘든 일도 영원히 나를 덮어버릴 순 없다. 눈이 녹듯, 모든 아픔도 결국 사라진다.
한국은 오늘이 설날이다. 이제 정말 새해, 1월 1일이다. 새로 시작한 1월 1일 앞에서 우리 가족도 이스탄불에서 새로운 시작을 바라며 나는 기도한다. 이제 코로나가 없는 1일을 살기로 나는 다시 다짐한다.
우리는 코로나가 없는 곳으로, 그렇게 우린 아주 천천히 걸어가고 있다. 아주 힘들지만 우린 모두 이 시간을 잘 이겨내고 있다. 어느 누가 아프거나 슬픈 사람이 없는 곳으로 우린 지금 잘 이겨내고 있다.
덧붙임)
이제는 코로나 입국 검사가 필요 없지만, 여전히 코로나는 우리 곁에 있고, PCR 검사는 진행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전염시키지 않고 서로를 지켜주는 일은 언제나 중요합니다. 튀르키예에서 PCR 받는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PCR 검사를 집에 찾아와 해주는 홈 서비스가 대중화되어 있습니다. 왓츠앱('카카#톡'과 같은 메신저 앱)을 통해 영어로 예약 가능하며 2022년 1월에 튀르키예에 코로나 환자가 폭증하여 보통 이틀 전에 예약이 가득 차버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그렇지 않습니다.(현재 2022년 10월 기준)
2. 대형 종합병원, Azbadem Maslak과 같은 규모가 큰 종합병원
3. Laboratory라고 적혀있는 가게로 'Lab'이라고 적힌 곳은 실험실이 아니라 코로나 19 검사가 가능한 곳입니다. 구# 지도에서 검색하면 생각보다 많은 가게가 이스탄불 시내에 있습니다.
1-3의 검사비는 250TL이며 원화로는 약 23,000원 (2022년 1월 30일 기준)이었습니다. 현재는 리라 가치 하락으로 물가가 상당히 올랐기 때문에 검사료가 이보다 더 높아졌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