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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네 May 09. 2022

여기선 가끔 회식과 외박은  같은 말이야

주재원 아내의 이스탄불 살이와 그의 출퇴근 이야기

 상견례 전 날, 그는 회사에 문제가 생겨 밤새도록 퇴근하지 못했다. 상견례 날 옷을 그래도 제대로 차려입고 온 그가 다행스러울 지경이었다. 그리고 우린 결혼을 하고 신혼여행을 갔다. 신혼 여행 중 한참을 해결하지 못해서 어쩔 수 없이 전화했다는 회사의 연락에 그는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우리에게 아이가 생겼고, 아이를 데리고 오랜만에 떠난 제주여행에서도 그는 중간에 멈춰 노트북을 펼쳐야 했다.


 그렇다. 그는 한국에서도 바빴다. 그리고 열심히 일했다. 남편을 존경하지만 한편으론 불쌍하기도 하고, 사실 한국에서의 그의 모습은 불편해 보였다. 


 그러던 그의 생활에서 그래도 정부 정책으로 시행된 주 52시간 근무제가 생기곤 그의 근무는 조금 더 탄력적으로 변했다. 회사에 문제가 생기면 밤이고 낮이고 차려놓은 밥도 못 먹고 일하는 그였지만, 열심히 일하고 그 뒤에 그것만큼 보상이 있었다. 일 더 했으니, 더 일찍 쉬게 해 주었다. 그러나 한국에선 현업에 있으니 늘 긴장해있는 그 어떤 것도 문제가 있어선 안 되는, 한국은 그런 동네다. 긴장해야 한다.




 그런데 이스탄불에선 그는 그렇지 않다. 한국에서처럼 주말에 긴장해 있진 않았다. 그러나 당연히 어떤 면은 좋고 어떤 면은 나쁘다. 그렇다. 우리 인생에서 다 좋은 건 없다. 주말에도 평일에도 한국에서처럼, 그는 유연이고 탄력이고는 없다. 대체휴무? 그런 건 여기에 없다.


 가끔 터키 사람들이 일을 느긋하게 할 때, 이 사람들 휴일이 없어서 어차피 내일도 일하는 날이니 하며, 느긋한 건 아닌가 하며 터키인들의 느긋함을 그들의 생활에서 이해해 보기도 한다.


 그의 회사는 집에서 참으로 멀다. 게다가 집으로 올 대중교통이 없으니, 정시에 퇴근해서 회사 통근버스를 타고 집에 오거나, 회사 근처에서 회식을 한다고 하면 집에 못 온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면에선 대중교통이 없으니 해야 할 일을 내일로 미루고 올 수 있는 것 같지만, 직장인의 삶이 그럴 리가 만무하지 않나, 미룰 수 없는 일이라면 아예 집에 오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회사 근처에서 자는 것이다.


 회사 근처에서 회식을 한다는 말은 집에 오지 못하고 회사 근처 회식 장소에서 숙박을 한다는 것을 뜻하며, 때론 주말이면 체육대회라며 근무시간에 들어가지 않는 골프대회가 이뤄지기도 한다. 코로나 시대 이전엔 주재원 생활이 이것보다 더 했다고 하는데, 적어도 코로나가 지나가고 이런 관행이 조금씩 약해지면서 변화하고 있지만 타향에 함께 살아가는 주재원 생활에서 서로의 일상은 이렇게 공유되곤 한다.




 이런 탓에 지훈이에게 새롭게 탑재된 단어가 몇 가지 있다. 그게 바로 '회식', '외박'이다. 아직 어린 나의 아들은  '회식'과 '외식'을 헷갈려했다. 그래서 가끔 내게 단어의 뜻을 다시 묻곤 했다. 나는 '회식'과 '외식'의 뜻을 설명해주었다. 그런데, 지훈이가 또 묻는다.


"엄마 '외박'은 밖에 자는 거랬잖아."

"엄마, 그런데 아빠는 왜 회식을 하면 외박을 해?"

"회식이랑 외박은 다른 말인데, 왜 회식을 하면 외박을 하지? 비슷한 말이야?"

난 다시 회식, 외식, 외박 모든 단어를 비교해서 설명하고, 난 다시 아빠의 회사 위치부터 찬찬히 설명한다. "회사를 마치고 다 모여서 밥을 먹으면 말이지."


 아침 5시 반이면 회사 통근버스를 타고, 대중교통으론 절대 도착할 수 없는 아주 먼 곳으로 이스탄불 지도 속 제일 끄트머리로 그는 달려간다. 비행기 장거리에 쓰는 목베개를 하고, 그리고 또다시 돌아온다. 

 출퇴근을 합하면 그의 근무 시간은 14시간이다. 집에서 수면, 목욕, 식사를 제외하면 그는 그렇다. 하숙생 같은 일상을 주중에 보낸다. 서울이든, 이스탄불이든 도시의 직장인의 삶은 대개 똑같다. 다만 조기 퇴근도 늦은 지각 출근도 불가능하다. 자기 차를 타고 회사를 가면 차 타고 가는 길에 잠도 잘 수 없으니, 이왕이면 꼭 통근버스를 타고 가는 게 신상에 편하다.




 사실, 주재원 생활 속 남편의 역할은 미미하다. 아니 한국의 40대 가장이라면, 열심히 일하는 누구라면 가정에서의 역할은 점점 줄어들게 된다. 아이가 크고 부인의 관심이 아이들의 교육에 집중될수록 그것은 커진다. 난 그런 인생이 싫었다. 그러나 살아보니 그럴 수밖에 없는 현실 속에 그와 내가 있었다.

 주재원을 지원할 때, 우리 가족은 동거 여부를 먼저 살폈다. 남편과 같이 살 수 있느냐의 여부이다. 내가 이스탄불에 같이 가겠다고 생각한 건, 그래도 매일 그가 한 집에서 같이 살고 주말부부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남편이 와서, 특별한 것을 하지 않아도 그냥 잠자리에서 아들과 책을 읽어주는 그 시간, 늦은 저녁을 먹는 그가 집밥 한 끼는 내가 해줄 수 있는, 밥 먹는 그 앞에서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는, 그게 삶이라고 생각하는, 나의 촌스러운 생각 때문이었다.

 

 생각보다 많은 주재원 가족은 남편 없이 해외에서 아이를 데리고 생활하고, 아이의 학교를 위해 주말부부를 선택한다. 왜, 여기까지 와서, 주말부부까지? 되묻는다면? 그렇다. 아이의 교육 때문에, 영어를 배울 수 있는 국제학교에 보내기 위해서, 결국 교육을 위해서 그 선택을 한다. 그리고 주재원의 생활을 시작하는 대표적인 이유도 결국, 아이의 영어 교육 때문이다.


 주재원 생활의 성패가 어쩌면 주재원 본인의 일보다 가족의 현지 적응이 더 큰 것은, 해외에서의 삶이 잠시 있다 돌아오는 몇 박 며칠의 여행이 아닌, 아이를 데리고 학교를 보내고 공부를 시키고 그곳에서 장을 보고 밥을 해 먹이는 삶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유럽 국가에 비해 국토가 작다. 한국에선 공장이 아무리 멀어도 멀어봤자 대중교통으로 2-3시간일 텐데, 여기선 회사까지 대중교통을 타고 통근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런 노선은 없다. 엄청 멀다. 사람 사는 데 공장을 지을 리가 없다. 생활 물가가 우리보다 비싼 유럽에 회사를 짓는데 사람 많고 땅값 비싼 곳에 공장을 지을 리 만무하다. 유럽보다 상대적으로 생활물가가 저렴한 터키이기에 이렇게 행정구역상이라도 이스탄불이라는 곳에 공장이 있는 것이다.


 일주일의 2번, 터키어 수업에 남편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 선생님께 남편의 직장의 위치를 알려주었더니 거기서 출퇴근이 가능하냐는 되물음이 나왔다.

'거기는 이스탄불이 아니야.(orasi istanbul değil.)'

그렇다. 그는 현지인도 이스탄불이 아니라는 곳까지 출퇴근을 한다. 회식을 하면 집에 올 수 없는 곳에서 그는 일을 한다.


 우리는 여러 가지 이유로 직장을 옮기고 그리고 또 이사를 한다. 그게 아이의 학교 또는 직장 뭐 그렇게, 여러 가지 이유로 이사를 하고 삶을 살아간다. 내가 이스탄불에 산다고 해서 특별히 다를 건 없다. 그저 회사의 지원금으로 거주할 수 있는 집이냐 아니냐일 뿐, 결국 삶이란 똑같다. 다만 결국 그 선택이 지금 우리 가족을 위해서는 최선이라는 믿음만 있는 것이다.

 회식이 외박이 되는 곳, 지금도 난 그에게 이러쿵저러쿵 오늘 이야기를 하고 저녁을 차리고, 때론 만날 수 없는 아빠라며 투덜대는 아들을 달래며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덧붙임)

 늘 열심히 일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늘 출퇴근 그 먼 길이 힘들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한국에 계신 40년 동안 아직도 그 먼 길을 출퇴근하는 나의 아버지, 친정아버지에게도 사랑을 전하고 싶습니다. 한국은 어제가 어버이날이네요. 한국 가고 싶어요. 참 많이. 보고 싶어요. 미안해요. 코로나 걸렸는데도 못 찾아가서 미안합니다. 지나고 말하셔서 더 마음이 아픈, 나의 부모님 너무 보고싶고 사랑합니다.


이스탄불 키즈카페 입구 모습, 이스탄불도 육아는 똑같다.
보스보러스 해협을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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