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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네 Jan 05. 2022

아들은 참깨 알레르기가 있습니다.

이스탄불에서 참깨, 고양이 온갖 알레르기가 있는 너를 위한 나의 준비들

 

 나의 아들은 참깨 알레르기가 있습니다.

Oglumda susam alerijisi var. (오룸다 수삼 알레리지시 바.)

'susam'(수삼; 참깨)

 

 이 말은 내가 터키어에서 제일 처음 외운 가장 완벽한 문장이다. 다른 사람들이 인사말을 먼저 할 때, 나는 구# 번역 앱에 이 말을 먼저 찾아봤다. 아들의 피부가 튀르키예에서 엉망이 되고, 밤새 긁기 시작한 이후로 나는 이 말을 자주 해야만 했다.


 물론 나 또한 알레르기 질환자이다. 나의 유년기를 돌아보며 냉정하게 말하자면, 아들의 증상은 나의 세 발의 피다. 의학지식이 부족했던 나의 어머니는 지금의 나처럼, 나에게 알레르기 검사를 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지훈이의 나이 때, 감기라도 걸리면 곧 천식으로 숨도 못 쉬고, 무슨 드라마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달리다가 쓰러졌다. 그러나 나는 드라마에 나올만한 주인공이 아니기에, 운동을 잘 못해서 다소 뚱뚱하고 그래서 둔하고 곰 같았다. 


 그러나 다행히 어른이 되고 교사 생활을 하고 나서 나는 검사를 통해 내가 심각한 알레르기 질환자인 것을 알았고, 지하에 있는 노래연습장도 나에겐 독약과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 나였기에, 이스탄불에 이삿짐이 도착하곤 나는 한동안 병원을 다닌다고 바빴다. 예상대로 이삿짐은 선박에 실려 3개월의 여행을 하고 온 탓에 먼지가 많았고 이삿짐 정리를 시작하자마자 나의 알레르기 반응은 점점 더 심해지기 시작했다. 눈 주변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부었고, 껍질이 벗겨진 듯 화끈거렸다. 이삿짐이 11월 중순에 왔고, 한 달의 시간이 지나 한국에서 온 옷을 다 세탁하고 정리하고 어느 정도 집이 자리 잡은 12월 중순까지 나의 눈 주변의 피부는 벌겋게 헐어있었다.


 답답한 마음에 병원을 가도 한국처럼 시원하게 코가 뚫리거나 치료해주지 않았다. 그리고 만약 여기서 남편 회사에서 보험 지원이 없다면 외국인으로 여기서 알레르기를 가지고 있고 아프다면, 얼마나 큰 부담이 될지를 알게 된 경험이 있었다.




 튀르키예는 아즈바뎀이라는 병원이 있다. 보통 주재원들은 보험처리가 가능하며 대학 교수인 전문의 의사에게 진료받지 않으면 회사 지원의 보험 덕분에 자비 부담이 거의 없다. 그러나 코로나 시기 호흡기 치료는 방어적이며 반드시 진료예약을 해야 했고 한국 대학 병원처럼 진료까지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만 한다. 한 가지 다른 게 있다면 한국보다 방역이 허술하다는 점이다.


1. 병원 안에서 마스크를 안 쓰는 사람이 있다.

 (어른은 원래 그런 사람일 것이고 아이들은 거의 안 쓴다. 특히 소아의 경우, 이는 더 심했다. 동네를 도니 마스크 안 쓰는 터키 어린이는 거의 10명 중 9명, 야외 놀이터에 아이를 데리고 나가면 어린이 중, 지훈이만 마스크 쓰는 경우도 많았다.)

2. 병원 입장 시, 체온 측정이 없다. 테러를 대비한 소지품 검사는 있어도 체온 측정을 하지 않는다.

(이스탄불의 대형 쇼핑몰의 경우, 보안검색대가 있으며 HES코드라는 우리나라의 백신 패스 비슷한 게 있다. 외국인의 경우, 터키 입국 전 발급받아야 한다. 2022년 10월 현재는 HES코드 또한 없어졌다. )


 우린 예약을 했음에도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탓에 신랑과 나는 서로 떨어져 진료를 보려고 했다. 남편이 지훈이를 데리고 소아알레르기과로, 난 나의 진료를 위해 이비인후과로 각자 떨어져 진료를 보러 갔다. 둘 다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병원이니까 당연히 잘 되겠지라는 믿음으로 우린 씩씩하게 헤어졌다. 그러나, 간호사가 영어를 못한다. 구# 번역을 써서 터키어로 진료 예약했음을 확인했다. 이번엔 보험이 안된다며 총진료비가 13만 원인데 치료를 받겠냐고 되묻는다 내가 당황하고 있을 때,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신랑, 보험이 없다고 그래."


 신랑이 왔다. 그도 영어로 말하고 구# 번역을 사용해 말했으나 역시 뭔 소리인지 모른다. 우선 영어 통역자를 부르자고 했다. 참고로, Azbadem 마슬락 병원에는 영어 통역자가 있다.


  문제는 역시, 구# 번역의 문제였다. 영어가 가능한 통역자가 오자 어떤 문제도 없이 절차대로 진료가 진행되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소통의 문제일까.

 이스탄불을 다니다 보면 영어를 잘하는 터키인을 만날  수 있다. 그렇다고 다 영어를 잘하는 건 아니다. 뭐 대학병원의 간호사라고 영어를 잘하는 건 절대 아니다. 다 알아들은 줄 알고, 터키어로 한 번 더 번역을 안 한 나의 문제일 뿐이다. 


 여긴 한국도 아니고, 영미권도 아니고 터키니까, 그렇다. 여긴 튀르키예예요. 그러니 그래 그러려니 하자. 화를 내도 터키어로 화를 낼 수 없으니, 못 알아듣는 그녀에게 나는 그냥 성질 나쁜 외국인이 된다. 근데 왜 내가 영어로 말해도 알아들은 척한 거지, 끝까지 다 듣고선, 왜 그러는 거야 하면서 화가 치밀어 오른다. 아프니 더 화가 난다.




 Azbadem(아즈바뎀)과 같은 튀르키예의 대학병원에 진료를 보러 갈 때는, 해당 병원에 영어통역사가 상주하는지 알아보고 가는 게 편하다. 의사도 간호사도 영어를 못하는 경우가 제법 있다. 그래서 환자인 나에게 이거 이거 돌팔이 아닌가 하는 느낌까지 주니까 말이다. 여하튼 여차저차 해서 진료를 다 보고, 비상시 쓸 아이의 에필렌 주사도 처방받고 나 또한 진료를 받긴 받았다. 뭐 하나 시원한 기분 없이 고생만 하다 지쳐 온 기분은 덤으로 받았다.


 오후 12시 반에 병원으로 출발한 우리 가족은, 진료 후 허기진 배를 병원에서 파는 샌드위치로 때우고 살인적인 이스탄불 교통체증에 갇혀 또다시 도로에서 1시간을 넘게 또 보내곤 밤 8시 30분이 넘어서야 집에 돌아왔다.


"아 또 병원 안 갈래."

"더 아픈 기분이 든다. 정말."


 정말 엄청 아픈 거인 뼈가 부러지거나 살이 찢어져 피가 나고, 아파서 데굴데굴 구를 정도가 아니면 가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첫 번째 병원 방문을 험난하게 마치고 집에 돌아와 허겁지겁 저녁을 먹었다. 그래도 아이의 비상시 쓸 에필렌 주사를 처방받은 우리는, '우리 오늘도 잘했네. 에고.' 하며 서로를 위로하곤 잠에 든다. 아이의 등교를 위한, 학교 가기 준비 1단계가 끝났다. 다른 사람은 겪지 않을 참깨 및 온갖 알레르기 가진 엄마와 아빠의 준비가 끝이 났다.


 신랑과 난, 요즘 자주 이 말을 한다.


"괜찮다. 그래도 좋은 경험 했다."


고생을 진탕 하거나 실컷 했지만 뭔가 손해를 보는 것 같은 마음이 드는 날, 그 일에 마음이 상했을 때 서로를 위로하는 말이다. 그래, 우린 지금도 좋은 경험을 하고 있다. 돈 주고 고생을 사서 하는 게 해외여행인데, 우린 돈 받고 이 고생 사서 하고 있으니, 그래 이만하면 좋은 거다. 이 모든 일이 지나고 나서 우리 가족에게 정말 좋은 추억이 되길 하고 오늘도 빌어본다.



"그래, 오늘도 좋은 경험 했다."


아즈바뎀 마슬락 소아병동의 모습입니다.
터키 살이가 힘이 들 때는 루멜리 히사리 앞의 바다를 보는 것으로 큰 위로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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