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월, 아들의 코로나 19 감염으로 이제는 나까지 감염되어 연신 기침을 계속하던 그때, 온 가족 격리를 시작한 지 어느새 2주 차였다. 몇 달 전, 혼자 먼저 걸리곤 회사가 마련한 숙소에서 격리까지 완료한 탓에 너무나 생생했던 남편은 우리 집 작은 방에서 실시한 본인의 재택근무를 마치곤 거실로 즐겁게 들어왔다. 그리곤 아픈 나를 보며 해맑게 웃는다.
"우리 이제 다 코로나 걸렸어. 런던 가자."
이건 무슨 긍정의 힘인가. 아하하. 코로나19에 걸렸다는 이유로 이스탄불이 아직 낯설던, 우리 세 식구는옹기종기 집에 모였다. 우습게도 이스탄불 적응에 지쳤던 우리 가족은 코로나 덕분에 오랜만에서로를 바라보았다. 온 가족 격리가 시작되자 덕분에 그의 퇴근은 참으로 빨라졌다. 방문을 열면 바로 퇴근이니, 아내와 아들이 아파도 오히려 그는 격리 기간 동안 얼굴이 참으로 좋아졌다. 남편에게 회사가 격리를 끝내고 다시 사무실로 출근하라는 통보에 그가 진심으로 아쉬워했으니, 코로나19로 가족 간의 시간이 늘어나 이혼이 난무하던 그 시절, 그의 얼굴이 좋다는 건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아하하.
코로나 19 감염자와 함께 사는 탓에 회사 출근을 위해 매주마다 코를 찔려야 했던 남편. 멀쩡해도 너무 멀쩡했던 남편은 그렇게 퇴근 후,스카이스#너 항공권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 해 겨울, 지독히 추웠던 이스탄불에서 우리는 그렇게 코로나를 보내고, 그해 봄, 영국 런던에 도착했다.
"너, 런던 두 번째잖아."
"몰라. 기억 안 나. 난 로밍도 안 했잖아. 나 길치야."
3주의 격리에도 한 집에서 그렇게 사이가 좋던 부부는 결국, 아들을 유모차에 앉혀두고 런던 소호거리에 멈췄다.
10년 전 런던 올림픽의 마라톤을 바라보며 여유롭게 서 있던 나, 혼자서 템스강변을 따라 런던 밤거리를 끝없이 걸었던 나는 이제 아들이 탄 유모차를 밀고 있는 남편과 함께 서 있다. 그리곤 서로 투닥거리기 시작한다. 해가 졌으니 숙소로 이제 가야겠다. 모두 시끄러워지기 전에 씻고 누워야 한다.
어느새 나이를 먹은 유모차는 뻑뻑 소리를 내며 아들을 태우고 영국 런던을 누빈다.
유모차보다 더 늙은 엄마, 아빠가 집에 갈 시간이다. 해가 진다. 이제 숙소 가자.
*앞으로 펼쳐질 여행기는 코로나 19가 한창이던 시절, 2022년 4월 말부터 5월 초의 기간의 영국 런던 여행기입니다.
유모차를 탈 나이가 훨씬 지났지만 걷지 않으려던 아들 녀석을 데리고,기내용 유모차를 태워서라도 가고 싶은 곳을 가려했던 그때의 우리. 체력이라곤 없어서 런던 야경은 절대 볼 수 없는 두 사람은 아들을 데리고 해가 지면 얼른 숙소로 갔습니다. 6시가 되면 어린이는 잠을 자라며 국영 어린이 방송도 종료하는 영국,그날의 봄 런던으로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