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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네 Dec 13. 2023

런던은, 공사 중

영국 스탠스테드 공항에서 스텐스테드 익스프레스를 못 타다.


 2012년 8월 12일.

 나는 런던 타워브리지에 오륜기가 걸려있던 그곳에 서 있었다. 도시 곳곳에 서 있는 올림픽 마스코트 앞에서 사진 찍기를 즐기며 혼자서 하염없이 걷던 런던 거리. 누군가 내게 같이 걷자고 이야기하면 웃으며 함께 걸음을 맞추던, 영화 '비포 선라이즈'의 셀린느를 꿈꾸던 나.

 

 동틀 때까지 오스트리아 빈을 헤매며 자신의 인생, 미래에 관한 끝없는 대화를 나누던 그들처럼, 그 시절의 나는 내 청춘을 한없이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들처럼 다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누군가와 헤어지고 그리워하고 잊고 그리고 변해갔다.


 아무런 계획 없이 여행지를 걸으며 서로를 궁금해하며 끝없는 이야기를 하던 그들은, 아이가 생기고 어떻게 변했을까.


 


 

 영국 런던,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출발해서 도착하는 유럽 주요 도시 중 비교적 저렴한 비행기 운임료를 자랑하는 곳이다.

 영어권 국가이므로 아무래도 다른 유럽의 어떤 도시보다 준비 없이 당장 떠날 수 있는 곳.


 그렇기에 우리의 런던은 방심, 그 시작은 '공사'였.


 영국엔 총 6개 공항이 있다. 흔히 공기업 민영화의 표본으로 자주 거론되는 영국공항공사. 섬나라 영국에는 런던 히드로 공항, 런던스탠스테드공항, 애버딘공항, 에든버러공항, 글래스고공항, 개트윅공항 등이 운영되고 있는데, 보통 이스탄불에서 저가 항공(페가수스)을 이용해서 도착하는 주요 공항은 히드로, 스탠스테드, 개트윅 세 가지로 줄어든다.

  이 중에서'이스탄불 출발, 런던 도착'이라는 입력에 나온 가장 저렴한 비행기표를 고른 남편은 스탠스테드 공항이 목적지로 정해지자 '스탠스테드 익스프레스*(기차)'를 예약했다.


 공항과 런던 중심가를 연결하는 스텐스테드 익스프레스에 비해 내셔널 익스프레스(버스)*가 더 저렴하긴 했지만, 이동시간이 훨씬 길고 같은 시간에 해당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고객이 많은 경우, 다음 시간의 버스를 타야 한다는 후기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결국 스텐스테드 익스프레스를 선택했다. 그리고 아이 나이가 어렸기에 무료였고, 출발일보다 일찍 예약하면 할수록 더 할인되는 옵션도 있었기에, 굳이 얼마를 절약하기 위해 젊은 시절처럼 버스를 선택할 이유가 없었다.

 

 특히, 아들을 데리고 가는 버스 여행. 기차처럼 일어서서 기차칸을 이동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에, 이동 시간이 길어질수록 대중교통 속의 엄마, 아빠는 괴롭다.

 혼자일 때는 운전이 싫다며 뚜벅이를 자처하던 내가 아이를 낳고 운전을 시작한 것도 결국, 모든 삶의 시계추가 언제나 아이를 중심으로 향하기 때문이었다.




 2022년 4월 30일.

 엄마와 아빠가 된 그들은 호기롭게 비행기에 내려 기차역으로 향했다. 스텐스테드 공항의 '스탠스테드 익스프레스'라는 표지판이 그들을 안내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표지판에 다가갈수록 사람이 없다. 기차 레일만 있는, 이상하리만큼 너무 조용했다. 아무도 없다. 남편과 나는 아들을 태운 유모차를 밀며 휑한 기차 개찰구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여긴 일하는 사람도 없네."

 "신랑, 우리 잘못 온 거 아니야?"


 불안하다. 한참을 살피다 청소를 하시는 분께 다가갔다. 그는 두 손을 살짝 들며 내게 난감함을 표현한다.

 이런, 역시 공사 중이란다.


스탠스테드 익스프레스 홈페이지*를 열어보니, 홈페이지 상단의 공사일과 오늘의 날짜가 똑같다.

 

 "아니, 그럼! 공사하는 오늘을 왜 예약할 수 있게 되어있는 거야!"

 "원래 영국은 그래."


 누가 전산 전문가 아니라고 할까 봐. 시스템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버스정류장까지 가는 길, 우리는 함께 '이런 영국 놈들!'을 외치며 내셔널 익스프레스 버스정류장으로 갔다. 그리곤 군말 없이 스탠스테드 공항-런던 도심 왕복표를 샀다.


 줄은 정말 뱀이 똬리를 튼 듯 한없이 길다. 아까 없다 했던 그 사람들은 모두 이곳에 있다.


 "결국 우리, 버스구나."


 머리를 쓰고 이리저리 나름대로 생각과 준비를 해도, 대안이 없다면 그냥, 내게 주어진 그 버스를 타야 한다.

우리의 삶은 가끔 그런 거니까. 그렇게 계획에 없던 버스를 타고 우리는 런던, 마일 엔드(Mile end)에 도착했다.






*스탠스테드 익스프레스 홈페이지

https://www.stanstedexpress.com


15분마다 출발한다고 광고하는 스탠스테드 익스프레스는 공사, 파업이 잦습니다. 다분히 영국적인 답변으로 해당 사유로는 환불이 어렵다는 이야기. 저희는 다시 공항으로 돌아오는 길에 환불이 안된다는 기차표가 아까워 결국 스텐스테드 익스프레스를 타고 왔습니다. 버스 리턴 티켓이 누군가에겐 요긴할까 싶어 숙소에 드리고 기차를 탔습니다. 그런데 이스탄불 도착하고 며칠 후, 그들의 답변과 달리 티켓값이 환불되었습니다.   

 아하하. 역시, 영국 신사들이란!


 영국은 파업과 공사가 잦으니 예약 시, 반드시 홈페이지 알림 사항을 다시 한번 더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일찍 예약하실수록 할인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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