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나는 홀로 밀레니엄 브리지를 건너 템스강을 가로질렸다. 유럽 여행의 마지막 종착지였던 영국 런던. 말이 통한다는 것이 얼마나 편안하고 기쁜 일인가를 새삼스레 더 느꼈던 런던에서의 시간, 솔직히 편안했다.
2012년 런던 올림픽 마스코트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며 수줍게 웃던 그때도 지금처럼, 테이트 모던 창가에 서서 사진을 찍었다. 그리곤 미술관 앞 잔디밭에서 여름 햇살을 즐기는 런던 젊은이들을 바라봤다.
"나는 추운데, 젊은 사람들은 다 헐벗고 있네. 참 젊구먼"
심드렁한 글에 맞지 않는 밝고 해맑은 사진들, 나는 그때,사춘기였나 보다.
런던 올림픽이 열리던, 2012년의 테이트 모던의 모습
2022년 5월 1일 일요일
런던 자연사 박물관에서 공룡과 사람 구경을 마치고 늦은 점심을 먹었다. 이미 지쳐버린 엄마와 아빠는 서로를 바라본다. 그래도 왔으니 남은 힘을 짜내어 아들을 태운 유모차를 밀고 Bankside로 향한다.
런던에 다시 오면 이 건물 앞 잔디밭에 다시 앉고 싶었던 나.여전히 템스강을 바라보고 서 있는 테이트 모던에 내가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있고 싶었다.
결국 나는 내 의지로 다시 돌아온 미술관 앞에서 이어폰을 건네고 마이크를 든 가이드처럼, 이 건물의 대단함에 대해 두 남자에게 설명한다.
"이 건물은 2000년 밀레니엄을 기념해서 런던의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면서 만들었어요. 이 건물은 원래 화력발전소였는데 환경오염을 이유로 공장이 오랜 시간 폐쇄되었고, 건축계의 노벨상을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이 건물을 지은 건축가인 헤어초크와 드 뫼롱이 2001년에 받았어. 그리고 이 건물이 말이야."
더 설명하고 싶었다. 그러나 내 설명은 그냥 아주 곱게, 공기 중을 날아간다.
바람 빠진 풍선처럼, '푸쉬쉬쉬' 소리를 낸다. 아들의 소리에 묻혀, 내 목소리는 두 남자 사이에서 멀리 사라져 간다.
"아아아아아, 엄마마마마."
"여기 소리 울려."
아들은 신기한 듯, 유모차에서 내렸다. 계단이 아닌 이 공간이 주는 변화가 꽤나 재미있나 보다.
우리는 테이트 모던의 입구의 터빈홀(Turbine Hall)에 있다. 차라리 지금, 아들에게 '소리의 성질'을 가르치는 것이 나을 것이다.이 건물의 대단함을 내가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아들이 이 공간의 특별함을 직접 느껴보는 게 지금 우리가 할 일이다. 소리의 울림과 열린 공간의 특성은 이곳이 예전 화력 발전소였을 때의 모습을 상상하게 만든다.
"아들아, 여기 미술관이야. 조용히."
내 잔소리가 무색하게 소리의 울림에, 실내이건만 공간의 광활함에 그는 내리막길을 오르내리며 메아리를 만든다. 영국 어린이도 함께, 공간의 특별함을 발견하고 '아!' 소리를 내며 입장한다. 옆의 다른 영국 가족도 유모차를 함께 미는, 싱긋 웃는 그녀의 미소가 걱정 많은 나를 편안하게 한다.
테이트 모던은 테이트 재단에서 운영하는 현대미술관이다. 전통적인 미술관이 가진 시대 흐름의 따른 전시가 아닌, 두 개의 빌딩으로 현대미술의 표현 양식에 따라 전시물을 분류한 곳이기에, 어쩌면 이 공간의 자유로움은 다양한 문화와 상황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현대 영국의 특성이 나타난다.
아이가 생기고 돌아오니, 또 다른 것들이 보인다.
밀레니엄 브릿지에서 바라보는 2022년 5월, 런던의 풍경
오후 5시 55분
" 우리, 잠깐 쉴까?"
유모차를 밀던 남편이 내 이름을 부른다. 그러고 보니 사실, 나도 아까부터 피곤했다. 늦은 점심을 먹었더니 더 졸리고 흐린 날씨 탓 인가, 한참 걸었더니 카페인을 넣어야 한다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십 년 전, 길고 긴 대기줄에 포기했던 그때의 6층의 카페로 향한다. 우리 앞에 줄이 있었지만 시간이 저녁시간이라 그런가. 십 년 전, 8월의 그때보다 기다리는 사람이 적다.
스피노 사우르스를 들고 대기줄에 서 있으니, 기다리던 영국인마다 아들이 들고 있는 공룡을 보며 무서워한다. 우리 앞에 기다리던 할아버지는 우리에게 필요한 좌석은 네 개라며 말을 하고, 6층 카페에서 청소를 하시던 분은 테이트 모던에 동물은 출입금지라며 웃으며 아들에게 애완동물이 있을 자리를 안내한다.진지한 그들의 유머에 아들은 스피노사우르스를 안고 행복해 한다.
유모차 밀기에 이미 지친 엄마와 아빠는 그들의 썰렁한 영국식 농담 덕분에, 차례를 기다리는 아들과의 시간은 아주 특별해졌다.
영국인모두 하나같이 약속한 듯, 기다림이 지루할 아들에게 장난스레 말을 걸어주었다.
"여기 네 사람 있습니다. 아하하."
아이와 함께하는, 오늘의 런던은 참으로 따뜻하다.
우리집 스피노사우르스는 그렇게 런던 사람들의 따뜻한 농담으로 아들과 함께 살아 움직이며, 우리의 여행에 함께 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