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일하던 시절, 나는 사춘기였다. 누가 '네?'라고 말하면 '왜?'라고 대답하고 싶던 시절이있었다.
아이가 어려움이 있어, 학부모가 학교에 오면 가끔 그아이와 비슷한 모습을 한 어른을 만났다. 나이를 먹어 '체면'이라는 가면을 얼굴에 덮어쓰고 오기에 처음엔아이의문제의 원인을 파악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얼마의 시간이 지나지 않아 알게 되었다.차라리 그 가면이라도 쓰고 학교에 오는 어른은좋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그때의 나는 어렸다. 그리고 가끔 생각했다.
"정말 어른이 아이보다 나을까?"
2022년 5월 1일 일요일
런던 시각 6시 55분, 이스탄불보다 늦은 런던의 시차로 살고 있다는 이유로 이 시간에도 우리는 여전히 '테이트모던'에 있다. 아이의 걸음에 따라 '테이트 모던'을 둘러본다. '테이트 모던', 이곳에는 마르셀 뒤샹, 로이 리히텐슈타인, 백남준 등 현대미술사에서 반드시 봐야 할 작품들이 즐비하다.
그러다 아이는 무수한 작품 속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엄마, 이건 나도 만들겠어."
"그래, 그러게. 나도 같은 생각이다."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 현대미술을 아이에게 제대로 설명하기 위해선, 결국 이 철학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아이도 만들어 낼 저 예술 작품을 왜 이 땅값 비싼 영국 미술관에 전시해 두었을까.
1900년대 초, 인간은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생활의 편리함을 맞이했다. 산업혁명으로 인간이 힘들게 노동해야 만들어낼 수 있던 것들을 기계가 손쉽게 만들어 냈고, 사람들은 이전보다 나은 생활을 맞이할 거라 믿었다. 그러나 두 번의 세계대전과 냉전시대를 거치며, 인간은 의문을 갖는다.
과연, 인간은 합리적인 존재인가. 인간이 사용하는 과학은, 합리성은 세상을 더 나은 세계로 만들 수 있는가에 대한 의심을 품는다. 결국 기존 사회의 주류였던 이성, 합리성, 근대성, 거대담론을 이야기하는 모더니즘을 해체하는 철학인 '포스트모더니즘'이 나타나게 된다.
그로 인해 기존 회화가 부정되고, 우리가 가지고 있던 '미, 아름다움'에 대한 부정이 일어나게 된다. '테이트 모던'에 있는 다양한 작품들을 제대로 보기 위해선 결국 이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우리가 말하고 있는, 지금 내가 아이에게 말하는 지식은 정말 가치 있는가?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을 아이 앞에서 실천하고 있는가? 지금 내가 아이에게 옳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정말 진실일까?
어른인 나는 지금세상을 올바르게 인식하고 있는 것일까. 아이는 자신도 상자 몇 개면 만들 수 있고, 색연필 몇 자루면 그릴 수 있다는 작품 앞에 서서 현대 미술이 무엇인지 내게 묻는다. 나는 네가 그릴 작품과 저 작품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더 가치 있다고,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는 그것이 아이가 자라난 20년 후에도 유효할지를 묻는다. 결국, 우리는 인식과 본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어쩌면 지금 이 글 또한, '테이트 모던'이라는 본질을 두고, 엄마가 된 나의 인식이 만들어 낸 또 다른 표상일 뿐이다.
전시물을 보고, 아이와 입구 근처에 있는 서점에 한참을 머물렀다. 이스탄불의 서점에서 아이가 볼 만한영어로 된 미술서적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몇 권의 책을 집어 들곤 그것이 꽤 마음에 들어 가격까지 확인하다가, 영국책이건만 한국의 인터넷 서점보다 더 비싸다는 것을 발견했다. 영국에서 한국까지 가는 게 더 비싸니, 지금은 '아껴야 잘 산다'는 거대담론을 부수고, 아들과 한국에서보다 비싼영국책을 영국에서 집어 본다.
아이와 예술 작품을 볼 때, 무엇이 먼저이며 무슨 사조인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그저 아이가 좋아하는 작가가 이런 작품을 만들었다면, 그 사람이 그 작품을 그리게 된, 만들게 된 그때의 상황과 그 삶의 궤적을 찾아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그리고 그 그림으로, 그 작품으로 아이가 마음의 울림을 느낀다면 이는 완벽한 것일 것이다.
하지만 삶의 모든 것이 그러하듯, 그 강렬함이 단 한 번에 오는 일은 자주 없다. 우리에게 첫사랑이 특별하게 기억되는 것은 그것이 너무나 강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오래 남는 사랑은 자주 그것을 바라보아야만 한다.
현대 미술의 유명한 작품은 다양한 기념품으로 놓여있다. 에코백으로, 공책으로, 펜으로 다양한모습을 놓여있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무수한 현대 미술 속에서 살고 있다.
다만, 아이와 내가 보는 오늘의 그림이, 네 스스로의 걸음으로 다시 이곳에 올 수 있게 되길 바란다.
나는 그 시절의 오래된 의문을 내려놓고, 엄마가 되어 너를 '테이트 모던'에서 기다렸다.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
서양 철학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은 이런 것이다.'로 이야기하면 그것 또한 거대담론이 되기 때문에, 잘못된 설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이와 현대미술관에 가시기 전에, '나무위#'의 설명만이라도 읽고 간다면 보다 편안하고 재미있는 관람이 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미술을 이야기하는데 왜? 철학이냐고 물으신다면, 문학도 교육도 미술도 결국 철학, 역사, 즉 인문학의 토대와 함께 이해해야 올바른 해석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