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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네 Feb 14. 2024

여왕님도 만들어낼 우리

버킹엄 궁전에서, 아들과의 '삼인성호'

 중국 위나라 대신인 방공이 조나라에 인질로 가게 된 태자를 모시게 되었다. 방공은 태자를 모시는 길을 떠나기 전, 왕에게 이야기한다.


 "한 사람이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하면 믿으시겠습니까?"

 왕은 믿지 않는다고 대답한다. 하지만 방공은 왕에게 다시 이를 묻는다.


 "세 사람이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말하면 믿으시겠습니까?'

 왕은 그렇다면 믿을 수밖에 없다고 대답한다.


 이것이 바로 '삼인성호(三人成虎)'. 방공은 자신의 비극적인 운명을 예견했던 것일까. 그는 귀국하여 돌아와 여러 사람의 간언에 의해 결국 조정에 복귀하지 못한다. 흔히 거짓된 말도 되풀이되면 참인 것처럼 여겨질 때 쓰이는 고사성어다.


 무릇 군자라면, 이런 어리석은 선택을 하지 않아야 하건만 우리는 그저 인간이라 어쩔 수 없이 군중심리에 따라 분위기에 따라, 가끔 이런 선택을 한다. 나도 군자가 아닌 그저 사람, 엄마라 아들과 가끔 호랑이를 만든다.



2022년 5월 2일

 런던의 거리를 걷는 우리는 '버킹엄 궁전'에 멈췄다. 궁전 근처에는 행사와 공연이 곧 있는지 무대 설치가 이어졌다. 오늘 인근에 마라톤이 있어서 버킹엄 궁전의 근위병 교대식*이 원래 진행되는 시각과 다르게 진행된다는 대화가 들렸다. 모여있는 사람들은 모두 그 말을 나누고, 나도 남편도 아들도 그 소식에 따라 궁전 철문 앞에 자리를 잡았다.


 아들은 '페파피그'라는 돼지 가족이 나오는 책을 통해 영국에는 여전히 왕실이 있으며, 여왕을 만나는 페파피그의 모험을 읽었기에 이곳이 그 장소라는 말에 흥미를 갖는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 아들을 유모차 밖으로 나오게 한 것은 아이들 하나같이 모두 철문에 매달려 있다는 점이었다.

 '버킹엄 궁전'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근위병 교대식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지만, 철문 앞에 다닥다닥 붙어 움직이지 않고 서 있는 아이들. 빨간 옷의 근위병을 보려고 도란도란 모여 기다리는 다른 아이들의 모습을 보곤 아들 그 또한 아무 불만 없이 함께 서 있었다.

 

  정말 인간이란, 도무지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엄마, 아빠가 실컷 말해도 시큰둥하던 녀석이 궁전 앞에 서 있는 몇 명의 아이들 덕분에 이곳에 서서 그들을 기다리는 게 자연스러워진다. 물론 도대체 언제 시작되냐는 질문을 탑재하긴 했지만 말이다.

 아들과 남편, 그리고 나는 월요일, 수요일, 금요일, 일요일 11시에 열린다는 근위병 교대식이 오늘은 특별하게 시간이 변경되었다는 소식에 따라 그 자리에 망부석처럼 서 있는다. 남편은 더 좋은 자리가 있는지 두리번거리기도 하고, 기다림에 지친 다른 사람의 담배 연기를 피해 아들의 유모차도 옮겨본다.

  

'콜록콜록'

현재 시각 어느새 1시 17분


 아무리 봐도 아닌 것 같다. 기다림이 지친 아들은 유모차에 몸을 다시 맡기고, 아무리 기다려도 저 멀리 서 있는 근위병은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아까 분명 마라톤 때문에 늦춰졌다는 소식을 전한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이 많은 사람들은 정말 확실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옆에 서 있던 커플에게 근위병 교대식에 대해 다시 묻는다. 그들도 옆 사람 말을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옆의 사람에게 묻는다. 다른 사람도 다음 사람도 듣긴 들었단다. 아하하.

 이러다가 남편과 나는 근위병 교대식에 여왕님도 같이 행진할 거라는 말을 들을 기세다. 아무도 이 이야기를 누가 시작했는지 모른다. 유모차에 앉아있는 아들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직감했는지, 근위병 교대식이 없는데 혹시 잘못 안 거 아니냐고 묻는다. 아들의 날카로운 질문에 이것 참, 난감하기 그지없다. 참을성이 없다고 방금 전에 야단을 쳤건만 남편과 나는 서로를 마주 보며 눈알을 굴린다. 한참을 철문에 붙어 무엇을 한 것인지. 우리는 눈빛을 교환하고 자리를 나선다. 우리가 자리를 비우자마자 재빨리 또 다른 관광객이 우리의 자리를 차지한다.


 "그들, 아니 우리가 믿고 있는 정보는 정말 진실일까?"


 우리의 자리를 차지한 다른 이의 모습을 보며, 이렇게 가자마자 행진하는 거 아니냐며 서로에게 묻는다. 하지만 이제 어쩔 수 없다. 우리는 이미 자리를 떠났다. 그리곤 아쉬운 마음에 '여왕의 갤러리'로 향한다. 고풍스러운 건물의 외관과 웅장한 장식, 남편은 나의 걸음을 따라 유모차를 밀어 본다.

 하지만 나라고 잘 알 리가 있을까. 십 년만의 런던에서 허둥거리기는 마찬가지다. 아들은 미술관에 가지 않겠다고 외친다. 아들의 외침에 모르는 사람의 말만 믿고, 한참 동안 담배연기를 맡고 잔소리를 들으며 서 있게 한 엄마인 나의 잘못이 떠오른다.


 "그래, 아들아. 우리 우선 기념품부터 사자."


 결국, 다른 관광지보다 다소 한적한 '여왕의 갤러리' 건물 안 벤치에 앉아 고풍스러운 분위기로 가족사진을 찍고, 기념품샵에도 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들이 건진 건, 근위병 곰인형이었다. 다른 나라는 없어진 왕실문화가 여전히 영국에 존재하는 이유와 그들의 자부심을 알려주곤, 우리는 다시 영국 박물관으로 향했다.

 

 "아들이 미술관은 싫다 했으니 이젠 박물관이다. 아하하하."


 허탕에 속상할 법도 하건만, 그래도 웃으며 우리는 비가 오지 않아, 행복한 런던을 걷는다.  


'여왕의 갤러리'에 있는 기념품샵, 세상엔 예쁜 것이 참 많다.




*버킹엄 궁전의 근위병 교대식

 버킹엄 궁전 교대식은 매주 월, 수, 금, 일요일 11시부터 진행됩니다. 버킹엄 궁전 앞에 있는 그린 파크(The Green park)에서 행사가 진행되면 근위병 교대식 시각도 변경된다고 합니다. 구체적인 스케줄을 확인하고 방문해서 아이와의 소중한 여행을 더욱 행복하게 만드시길 바랍니다.

https://www.householddivision.org.uk/changing-the-guard-calend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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