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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네 Mar 13. 2024

버러마켓보다 광장시장

버러마켓(Borough market)에서 국밥을 외치다.


2022년 5월 3일

 한인 마트에서 산 한국산 구운 만두는 오늘의 아침이다. 아들은 런던의 그 어떤 음식보다 이것이 맛있는 것인지. 계란과 파, 소금만 넣고 만든 볶음밥에 구운 만두를 아껴가며 먹었다. 그는 엄마밥이 너무 맛있다며 연신 쌍엄지를 올린다.

 이 모습을 보며 엄마인 나는, 기쁘면서도 묘하게 슬픈 것이 있다. 빵과 샐러드, 파스타가 별미였던 나와는 달리 아들은 나의 밥을 참 좋아한다. 이스탄불 살이가 시작되고 나의 밥에 대한 책임감은 여행지에 가서도 무얼 먹어야 하나, 무얼 먹여야 하나에서 오늘은 무슨 요리를 하지로 진화하였다.

 배달 애플리케이션 속 무수한 햄버거, 빵, 케밥들은 우리 가족에게 밥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내가 런던에 왔다고 다를 리가 있을까. 이스탄불의 착한 커피값에 익숙해진 내가, 습관처럼 시킨 커피와 스콘 가격에 화들짝 놀란다.

 

 "커피에 금가루를 입혔나? "


 

 사실, 한국과 런던의 커피값은 비슷했다. 이스탄불의 저렴한 커피값에 익숙해진 나는 런던의 물가에 다시 한번 주춤한다. 커피 주문을 받고 파시는 분이 영국식 영어 발음으로 나를 응대하시는 것이 다를 뿐, 그 분위기나 맛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날이 갈수록 더 좋은 것을 빠르게 받아들이고 발전하는 한국, 세계 시장의 반응을 가장 빨리 확인하고 예견할 수 있어 신제품이나 새로운 영화를 한국에서 가장 먼저 개봉한다는 요즘의 우리나라의 위상을 볼 때, 오히려 해외에서 한국에서보다 더 특별한 맛을 찾는 것은 점차 어려워졌다.

  배가 고파진 우리는 한국의 시장을 떠올리며 버러마켓(Borough market)에 향했다. 10년 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더 샤드가 내려다보고 있고, 예전과 달리 시장의 모습도 깔끔해지고 현대화되었다는 것을 제외하곤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다만 가장 영국적이어야 할 런던의 재래시장에서 가장 많이 팔고 있는 음식이 스페인 음식인 '파에야'였다는 것을 제외하곤 버러마켓은 신선한 영국 식재료로 가득했다. 이것이 영국이 말하는 다문화인가. 피시 앤 칩스 가게보다 파에야 가게가 많은 것은 나로선 신기한 일이었다. 비는 오지 않았지만 흐렸던 날씨에도 꽤 많은 사람들이 시장의 음식을 사고, 장을 보고 있었다.


 

아들이 배가 고프다는 말에 그래도 영국에 왔으니, 피시 앤 칩스는 먹어보아야 한다며 대구(cod)로 골라 주문하고 시장 한 곳에 요리를 먹을 수 있는 자리에 앉아 서둘러 먹는다.


  "엄마, 맛없어."

  "대충 먹어라. 우리 집 아니다."


 통통한 흰 살 생선에 소금 간을 하지 않은 것인지, 생선은 제법 두툼했지만 아들은 연신 싱겁고 비리다며 고개를 젓는다. 내가 먹어선 그 정도로 싱겁지 않건만 돼지고기가 든 한국 만두가 그의 입맛을 고급으로 만들어놓았다. 깔끔한 녀석은 재래시장의 어수선함과 정돈되지 않은 바닥이 퍽 거슬렸는지, 다른 곳에서 밥을 먹고 싶다고 연신 투정이다.


 날이 흐려서 그런가. 아들이 투정을 부려서 그런가. 괜히 버러마켓에 왔나 싶은 생각에 남편 머리 위에서 빛나는 더 샤드 꼭대기를 바라본다. 아들과 남편 그리고 나는 대구 두 마리와 영국인들이 고유하다고 말하는 프렌치프라이가 아닌 '칩스'를 먹으며 흐린 날씨 탓을 해본다.


  "이런 날엔 한국 시장 가서 돼지 국밥을 한 그릇 먹어야 하는데."

  "쌈장에 양파랑 고추를 찍어서 먹고."


 결국, 반짝이는 샤드를 보면서도 우리는 한국의 재래시장을 떠올렸다. 따뜻한 방에 앉아서 벽에 등을 기대고 아주머니께 주문하곤, 이야기하며 소주 한잔 마시면 좋겠다는 말이 혀 끝까지 나왔다가 생선가게에 있는 게를 보러 가겠다는 아들을 따라나선다.


 "그래도 여기 굴은 중국산이 아니라 템스강산이겠지."


 남편과 아들에게 전혀 웃기지 않을 영국식 농담을 건네며, 다시 유모차를 밀어 거리를 나선다. 끄물끄물한 하늘을 보며, 지금 이 순간 가장 그리운 것이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는 뜨근한 국밥인 것을 보면 나도 아들과 같은 한국 사람은 맞나 보다.




https://boroughmarket.org.uk/

런던 버러마켓

  영국 런던의 신선식품 시장입니다. 몬머스 커피가 유명하여 일부러 찾아갔고, 손님이 워낙 많아서 유모차를 탄 아들이 진입하기도 힘들어서 혼자서 들어가서 커피를 구매했습니다. 보통 오후 5시가 되면 모든 가게가 문을 닫습니다. 우리나라 시장이 밤늦게 하는 것과는 많이 다릅니다.

 구글 지도의 안내와는 달리 'bank holiday'가 있으므로, 가시기 전에 홈페이지를 통해 운영시간을 정확히 확인하고 방문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http://www.kwangjangmarket.co.kr/en/ 서울 광장시장

 한국 최초의 상설시장, 영어 안내 페이지입니다. 글을 쓰기 위해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았는데 외국 관광객들이 충분히 방문할 만한 관광요소가 많은데도 그 안내가 부족해서 아쉬웠습니다. 실제 버러마켓의 경우에는 'Food tour'가 따로 존재할 만큼 시장을 활용한 관광 안내가 다양했습니다. '광장시장'의 영어 페이지를 보니 참으로 아쉽다는 생각이 듭니다.


 런던 소호 거리에서 줄을 서서 한국 음식을 먹는 무수한 외국인들, 저는 버러마켓에서 광장 시장을 떠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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