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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네 Jan 24. 2024

공룡보다 엄마와 아빠가 많던, 공룡관

런던 자연사 박물관, 부모가 되고서야 보이는 것들


'이크티오사우르스'를 검색창에 써본다.

 동물계, 바다 파충류, 어룡, 생존시대 쥐라기 전기에서 백악기 전기, 크기는 2-3m, 식성은 육식, 발견지 유럽(영국, 독일), 북아메리카(캐나다).


 아들을 낳고 나는, 나의 기억력이 예전과 다르다며 자주 한탄한다. 나이를 탓하다가 다시 요즘 공부를 안 하고 머리를 안 써서 그런가 하며, 가끔 어린 아들에게 이것 좀 잊지 말고 엄마에다시 말해달라고 부탁까지 하기도 한다.

 그가 내 말을 기억하지 못해도, 일단 그에게 좀 말해줘라고 말하면 나의 기분이 조금 편안해져서 그럴까. 가끔 내가 이렇게 말한 걸 어린 아들이 기억해서 알려주기도 하니까 말이다.

 

 "아들아, 내가 지금은 너를 가르치지만 앞으론 네가 무조건 나보다 나을 거야. 나중에 엄마가 너보다 못해도 가르쳐줘야 해."

 

 내가 가끔 그에게 하는 이 말을 그가 진지하게 듣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요즘 아들과 이런 류의 대화를 자주 한다.


 그래도 자식을 낳고 나와 온전히 다른 새로운 생명체를 키우면서, 한편으론 문외한이었던 많은 분야에 있어서 보다 지적으로 변했다. 특히 그가 좋아하는 공룡과 건축, 기계 등에 대한 지식에 있어서는 말이다.


 영국 자연사 박물관, Natural History Museum.   10년 전, 혼자였던 내가 런던에 와서 이 박물관에 들어가 공룡을 본다니 청춘의 내가, 절대 소중한 시간을 써서 이곳에 들어갈 리 없다.

 세상에 나 같은 젊은 사람들있었으면 런던 자연사 박물관에 대기줄이라는 것을 없을 터인데.

 무릇 자식을 낳고 학교를 안 가는 방학이 되어 부모나를 쳐다보며 '심심하다.'를 연발하는 자식을 바라보는 시점이 되면, 우리는 어느새 엉덩이를 들썩이게 된다.



2022년 5월 1일 일요일


 우린, 아침 런던 South Kensington으로 향했다.

 영국 자연사 박물관은 홈페이지 통해 살펴보면 영국의 자연사 박물관은 두 가지인데, 켄싱턴 지역에 있는 그곳이 우리가 런던에서 자연사 박물관에 갔다고 하면 흔히 말하는 공간이다.  런던의 켄싱턴 지역에는 '전시관 거리(exbition road)'라는 도로명이 따로 있을 만큼, 영국의 사악한 교통비와는 달리 무료입장으로 모든 이를 반기는 아름답고 멋진 박물관들이 모여있다.


 아들과 한국에서 살 때, 나는 종종 영국 BBC의 어린이 방송채널인 CBeebies를 자주 보곤 했다. 사실, EBS를 보다가 한국의 많은 교육 프로그램의 형태가 영국의 아동 채널의 모범을 따른다는 글을 읽고, 아이가 좋아하면 종종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IPTV 채널 순서의 저 에 있는 CBeebies를 자주 틀어주었다.

 런던 자연사 박물관은 아들과 함께 본 프로그램의 주인공 앤디(Andy)*라는 박물관 직원의 근무지로 자주 등장했다.

 영상 속에 잠깐씩 나오는 건물은 내게 너무나 고풍스러웠고, 앤디의 다양한 모험은 아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어쩌면 일체의 영어 사교육이 없던 아들이 이스탄불의 국제학교에서 별도의 과외 없이 적응할 수 있었던 건, 한국에서의 고독 육아 시절, 녀석의 세끼 밥을 만드는 나의 분주함을 대신해 아들의 시선을 가져간 CBeebies의 무수한 캐릭터 친구들 덕분일 지도 모른다. 그리고 자신의 관심사면 언어를 가리지 않고 모든 걸 보는 아들의 성향 덕분일 것이다.


 텔레비전 화면 속 반가운 건물이 앞에 있다. 하지만 건물 앞의 줄은 너무나 길다.

 일요일 오전, 건물에 돌고 돌아 길게 서 있는 줄을 넘어서 미리 예약한 사람들이 가는 입구로 향한다. 사람 고개를 넘어 입장은 했지만, 인기가 있는 공룡관은 이미 꽉 차 있다. 사람 한 명 한 명 모두가 기차 칸이 되어 '으르렁' 거리는 공룡을 보기 위해 줄 지어 서 있다. 공룡관의 입구부터 끝까지 모두 사람으로 빽빽하다. 아이를 안고 업고, 목마를 태우고 모두 아이에게 공룡을 잘 보여주기 위해 엄마 아빠는 재주를 부린다.


 그 시절 5월의 일요일, 공룡관엔 공룡보다 엄마, 아빠가 더 많았다.


 혼자였다면 절대 서지 않을, 그 긴 줄에 남편과 나는 아들을 안고 함께 선다.


 "신랑, 오늘 영국 무슨 날인가?"

 "일요일, 그리고 지금 영국 학교 방학이래."


  "역시, 방학이다."


 최성수기 8월 한복판, 우린 한 여름의 해운대 해수욕장에 서 있다. 

 아니다. 지금은 5월의 봄이다. 사람들의 열기와 마스크로 남편의 안경은 김이 서렸다 사라졌다를 반복했다.

 아빠의 시야가 뿌옇게 변해도 아들의 눈은 이미 으르렁거리며 포효하는 그 녀석에게 꽂혀있다. 공룡이 자신의 몸을 흔들며 세차게  크게 으르렁거릴수록 그의 눈은 더욱 맑아져만 간다. 

 그곳에서 그들을 더 보고 싶다는 아들을 겨우 달래, 공룡이 아닌 사람에 지친 엄마와 아빠는 유모차를 밀어 런던의 거리로 다시 나왔다.


 런던 자연사 박물관*을 나서며 남편과 나는 서로를 바라보며 말한다.


 "우리, 이크티오 사우르스만 백 마리 본 거 같아."


 사랑이란 무릇 그런 것이니. 부모가 된 우리는 40년 생애 취미에도 없던 공룡 이름을 아들과 같이 줄줄 외우며, 책에서 읽었던 이크티오 사우르스, 이 녀석이 난생(卵生)인지 태생(胎生)인지를 함께 떠들며 와 함께 긴 줄에 함께 서 있는 것이다.


 그 녀석이 알을 낳던 새끼를 낳던 이미 세상에도 없고 돌로만 남아있는 녀석이건만, 하나도 중요하지 않는 사실에 대한 심각한 토론이 시작된다. 그들은 왜 영국에 이렇게 많은지. 이크티오! 그 녀석의 분석이 시작되었다. 그러다 갑자기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스피노 사우르스를 보기 위해선 아메리카 대륙에 가야 한다며, 아들은 지금 당장 미국으로 가자는 엉뚱한 소리를 하고, 세계지도를 다시 보라며 갑자기 세계지리를 설명하는 런던 거리의 엄마와 아빠.


 우리 집, 그 어느 누구도 이 대화에 물러섬이 없다. 


 수다쟁이 세 명은 유모차에 올라탄 아들의 무수한 질문에  다른 꼬리를 만들어 . 비슷한 얼굴의 세 사람은 눈썹을 일렁이며 서로의 질문에 대답을 시작한다.

 우리는 그렇게 엄마와 아빠가 되어, 아들과 끝없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Andy's Amazing Adventures 앤디의 놀라운 모험 시리즈

https://youtu.be/IuMqfOGzRUI?feature=shared


*런던 자연사 박물관

 해당 박물관 사이트에서 미리 입장을 위한 예약을 반드시 하시길 바랍니다. 4월 말에서 5월 초는 영국 학교 방학 기간이며, 특히 붐빕니다. 입장료는 무료지만, 결국 무언가를 반드시 사고 나오게 만드는 기념품샵이 있습니다. 

 덕분에 사악한 가격으로 아메리카 대륙에 살았을 스피노 사우루스는 현재 저희 집에 살고 있으며, 생뚱맞게 영국산입니다.

https://www.nhm.ac.uk/visit.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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