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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네 Dec 27. 2023

우린, H마트에서 단연 힙했다!

이스탄불살이 일 년 차에게, 런던이란!

 

 "사고 싶은 거 다 골라."

 

 트라팔가 광장에서 레스터스퀘어역으로, 런던나타난 한국인 가족의 계획은 아주 분명했다.

 그것은 바로 H마트!

 우린 같은 주머니를 쓴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그 시절 런던에 도착한 남편은 급하게 다른 은행에 계좌를 열었나 보다. 마음껏 고르라며, 그는 가격표도 보지도 않고 이미 바구니 하나를 가득 채웠다. 그리곤 계산대 옆에 놓인 노란 바구니를 개를 집어 올린다. 


 아니, 내가 같이 살던 남자가 이런 남자였다니?! 


 아들을 낳고 그와 산 세월이 짧다면 짧지만, 남편의 다른 모습을 본다. 그도 그동안 한국 음식에 대한 욕구불만이 컸나 보다. 망설이는 내게 그는  사라고 말한다. 런던에 온 김에 다 사야 한다며 계산대 앞을 길게 늘어선 사람들의  뒤에 가득 찬 바구니 하나를 놓아두고선, 그는 재빨리 다시 하나를 채우러 진열대로 떠났다.

 

  시절, 런던의 소호거리 H마트에는 이스탄불 사는 한국 재벌 다녀갔다. 처음 하는 해외살이의 설움이 폭발하듯, 내게 더 가져오라는 그의 외침은 이미 이성을 잃었다. 아들과 나도 이것저것 집어넣는다. 

 



 2022년 4월 30일

 '오세요'*는 이스탄불의 한인마트와 달리, 참으로 화려했다. 소호거리의 번쩍이는 네온사인들 사이에서도 밀리지 않고, 입구부터 다양한 한국 과자, 음료들이 예쁘게 진열되어 있다. 흥겹고 익숙한 한국 아이돌의 음악도 흘러나온다. 길 너머에는 '치맥'이 있고, 저기 저곳 '분식' 앞에는 한국식 핫도그를 먹겠다며 길게 줄을 서는 외국인들이 보인다. 한국음식이건만 오히려 그 줄에 서 있는 한국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스탄불에서 온  한국인 가족은 화려한 조명 아래에서 음악에 맞춰 사재기를 시작했다. 돼지고기가 없다가 있어서 이러는 것이 아니다.


 드라마의 시골총각이 처음 상경해 서울 중심가에 멈춰 서서 주변을 둘러보고, 그 순간 카메라도 함께 그의 주변을 돈다. 익숙한 클리셰, 그 앵글이 지겨울 법도 하건만, 남편과 아들의 모습은 이미 드라마 주인공이었다. 나도 질세라 그들의 모습을 비추며 카메라를 쉴 새 없이 돌린다.


  런던 소호 거리의 한국음식점과 H마트는 흔히 말하는 '핫플레이스'이었다. 전혀 힙하지 않는 남편과 나는 런던의 거리에서 단연 힙한 한국음식을 사서 바구니에 쓸어 담는다.


 사실, 등산복에 유모차를 밀며 한국 라면을 쓸어 담는 우리가 힙할 리가 없다. 아하하.

 

 그런데, 무릇 힙이란 무엇인가?

 그래, 중년의 힙이란 가격표를 보지 않고 물건을 살 수 있는 경제적 풍요 아닌가? 아하하.


 우린 그 시절, 단연코 런던 H마트의 제일가는 힙한 존재, 재벌이었다. H마트의 가게 주인님을 진짜 재벌로 만들려는 의지를 가진 하루 살이 직장인 재벌, 코로나19제대로 얻어맞고 해외살이 일 년 차의 한을 은 주재원 가족은, 그렇게 이제는 군대를 가서 한동안 못 만날 BTS를 만난 , 나는 소호 거리의 H마트에게 외쳤다.


 "오세요! 너무 좋다! 다 사자! "




 계산대에 올려진 바구니 속 물건들에 그려진 굵고 얇은 막대기들이 푸른빛을 받는다. 한가득 쌓인 물건들에 그려진 막대기는 '삑! 삑!' 소리를 울린다.

 막대기들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한다.


  "삑!" "이래도 괜찮아?"

  "삑!" "이것도 사려고?"

  "삑!" "한국에선 먹지도 않던 거잖아?"

  "삑!" "영국 물가 알지? 이거 파운드야!"


 끝없이 올라가는 숫자에 '이건 뺄까?'를 말하는 그에게, '그럴까?' 그리곤 결국 '아니야.'를 말하는 나, 그리고 옆에서 또 다른 물건을 들고 와선 바구니에 놓아두곤 유모차에 자연스레 오르는 아들 녀석, 이 녀석은 다리도 선택적으로 아프나 보다. 결국 나는, H마트에서 사 온 한국 식재료들로 런던 숙소에서 열심히 요리를 했다.


 2022년 봄, 런던의 젊은이로 가득한 소호에서, 유모차를 밀며 사재기를 한 우리는, 그 구역에서 단연 힙한 존재들이었다.




*오세요 소호, 73-75 Charing Cross Rd, London WC2H 0BF 영국


 이스탄불에서의 삶이 익숙해지곤 적어도 2주의 한 번, 토요일이 되면 아이스 보냉백을 자동차에 실어 자동차로 20분 거리의 한인마트에 향합니다. 아시아를 향해 때론 유럽을 향해, 이스탄불에서 구할 수 있한국음식을 위해 대륙을 넘나들며 살고 있습니다.

 올해 초, 돼지고기와 한국 식품을 사기 위해, 불가리아 소피아로, 그리스로 편도 7시간을 운전해서 떠나기도 했으 이곳에서 살곤 한국 식재료를 구하고 싶은 열정은 가히 대단해집니다. 유통기한은 의미 없어진 지 오래입니다. 한국에 계신 부모님은 걱정스레 물으십니다.


 "그만큼, 먹고 싶나?"

 "아니요. 그런데 사 오면 식구들이  먹어요."


 이스탄불살이 몇 개월 후, 런던 소호로 가보세요. 그럼 그 순간, 알 것입니다. 고향의 맛 만두, 풀로 안 만든 무원 두부, 부산에서 난 어묵, 비비는 만두.

 한국의 마트에선 당연하게 볼 수 있는 삶의 소소한 것들이 참으로 소중해지는 건, 고향을 떠난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행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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