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연말동안 좀 아프다가 또 잘 쉬고 1월이 되어서 다시 이렇게 글을 시작합니다.계속 안 써서 죄송합니다. 혹시 기다리셨나요? 제가 좀 아팠어요. 아하하.
12월 방학 직전까지 아들의 학교 일로 많이 바빴습니다. 2주간의 방학 전까지 학교에 수십 통의 메일도 쓰고 회의도 하고, 역시 돈이 안 되는 일을 열심히 했습니다. 아하하.
12월엔 이스탄불에서 가장 저렴한 비행기표라고 아주 오래전에 예약한헝가리의 부다페스트에 다녀왔고, 연초엔 아픈 몸을 이끌고 튀르키예 사람처럼 TRT방송국 50주년 공연도 갔습니다. 마치 여기에 오랜 시간 산 사람처럼 공연도 보고 아들과 영화관도 갔습니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4년 차, 오래 산 건 맞습니다. 아하하.
사실글을 쓰면 정치적인 이야기로 자꾸 넘어가서 요즘 글을 멈췄습니다. 튀르키예에서 사는 이야기를 쓰는데 왜 한국 정치가 등장하게 되는지, 결국, 장소만 바뀌었을 뿐 사람 사는 모습은 어디든 비슷한가 봅니다.
여기 보험 청구법이 바뀌어서 연초에 튀르키예 은행에 제 명의의 통장을 만들기 위해 갔습니다. 처음엔 튀르키예의 1 금융권 은행으로, 그리고 1 금융권의 직원이 비밀스럽게 권한 지역 은행(2금융권)들을 차례로 방문했습니다.
결론은 저는외국인인 데다 백수이니,특별 프로모션 없이는 통장을 만들 수 없다는 거절을 받았는데요. 오후에 4군데의 은행을 혼자 돌며 이런저런 식의 불가능을 맞이하고도 이상하게도 서럽지가 않았습니다.아들을 남편이 챙기고 저 혼자 집 밖을 나와 자유롭게 걸어서인가요. 아하하.
튀르키예인, 모두 하나같이 아주 작은 목소리로, 제게 속삭이듯말합니다.
"너는 외국인이고 직업이 없어서 통장을 못 만들어 줘."
마치 엄청난 비밀인 듯,굳이 은행 2층으로 저를 불러 조심스러운 답변을 이어갑니다.
총 네 군데의 은행을 돌곤, 이곳에서의 나의 신분이 그리 비밀인가 싶은 마음이 듭니다. 그리곤 제가 처음에 영어로 말하실 수 있냐고 튀르키예어로 공손하게 물어서 그런 것인가 하며 제게 너무 착했던 그들을 떠올려봅니다.
그리곤 지난 연초,음악 공연장에서 느낀 놀람을 떠올려봅니다. 갓난쟁이를 유모차에 실어 음악 연주 공연장에 들어오고, 아이의 울음에도 눈살 하나 찌푸리지 않던 사람들. 무섭도록 씩씩하게 만원인 이스탄불 시내버스에 유모차를 밀고 들어오는 엄마 그리고 유모차를 위한 자리를 만들어주지 않는다며 만원 버스 안에서 아이에 대한 배려가 없다며 무섭게 화내는 그녀.
사실 이번 음악 공연 참석이 저녁 8시이며 아직 초등학생인 아들과 함께라 굉장히 걱정하며, 타인에게 피해를 주면 금방 나가야겠다고 생각하며 공연장에 입장했던 제가 이상할 정도였습니다. 한국에서 혹시나 맘충이란 말을 들을까 실수할까 아이를 안고 종종거리던 예전 제 모습을 떠올려봅니다. 유모차를 밀던 튀르키예인그녀가 한국에서 살았다면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어쩌면 이 세상에 절대적으로 옳은 것은 없나 봅니다. 나와 다른 모습과 생각을 가진 사람도 함께 살아가야 함을, 상대의 마음이 상할까 조심스럽게 이스탄불 속의 제 신분을 말하는 그들 앞에서 저는 누군가를 내 편과 네 편을 가르며, 대화 없이 극단을 향하는 지금의 시국을 바라봅니다.
지금 이스탄불 어느 곳,어느 버스정류장에서나 보이는 한국 배우가 가득한오징어게임 포스터 속의 튀르키예어를 읽어봅니다.
오징어게임 속 OX는 이스탄불에도 한국에도 이 세상 어느 곳에나 있지만, 서로 다름의 구분 없이 매일 반복되는 오늘을 모두가 함께 살아가기 위해, 서로를 다시 바라보는 우리이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