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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소리엘 May 18. 2019

패배자의 변명, 성공한 이의 훈수

SKY캐슬이 생각난 김에

01. 나는 SKY캐슬이 싫다.

지난겨울 명실상부 최고의 드라마는 <SKY 캐슬>이었다. 그때는, 각 잡고 보지 않은 나 같은 이는 또래의 지인들과 일상적인 대화가 어려울 지경이었으니 말 다 했다. 문제는, 내가 이 드라마를 싫어한다는 것이다. 제대로 감상한 후에 하는 평이냐면, 그것도 아니었다. 나만 빼고 온 가족이 이 드라마의 팬이었기에, 거실을 거닐거나 다리미질을 하면서 몇 장면을 훔쳐본 게 전부다. 그 짧은 시간, 몇몇 컷. 그 안에는 적나라하게 드러난 인물들의 욕심과 치부가 뒤엉켜 있었다. 기실 이 드라마가 인기 있던 이유야말로, 현실을 솔직하게 반영한 민낯이라고들 평한다. 그 뻔뻔할 정도로 솔직한 민낯, 그것이 내가 가장 싫어하던 기억들을 소환하는 계기가 되곤 한다. 

아버지는 자식이 꼭 의사가 되기를 바라셨다. 성공한 회사원이었던 그는 당신의 '유리 지갑'을 싫어했고, '사'자로 통칭되는 존경받는 직업에 대한 선망이 있었고, IMF의 광풍을 버틴 후에는 전문가가 으레 지니는 자격증을 흠모했을지도 모르겠다. 철없던 아들이 꼭 의대에 가야 하느냐고 물으면, 그는 나의 덜 여문 질문을 나무라며 덧붙였다. 의대에 갈 성적이 나온 후에나 고민하라고. 그렇지 않고서야 하는 고민은 패배자의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마따나 철이 덜 들었던 나는, 그런 아버지의 말씀이 제법 멋지다 여겼다. 그렇게 아버지는 설득에 성공하셨다. 후에 내가 의대 합격이 가능한 성적표를 가진 채, 기계 공학도가 되었을 때 당신께서 행복하셨을지는 잘 모르겠다. 



02. 대기업이 다 그렇죠 뭐.

취업의 문이 갈수록 좁아지던 시절이었지만, 명문대 기계과를 졸업한 남자는 상대적으로 시장가치가 높았다. 남들보다 취업이 쉬었을 테고, 노력은 덜했으리라. 엔지니어가 대접받던 시기, 상품기획자로 커리어를 전환하여 시작했다. 5년의 시간이 흘렀고, 입사 때보다 회사의 주머니는 얇아져만 갔다. 시대를 기민하게 읽을 줄 아는 동기, 선후배들은 일찌감치 퇴직을 했다. 전문대학원으로, 전문직 회사로, 스타트업으로. 명료한 비전이건 더 나은 대우이건, 나름의 이유를 품에 안고 새로운 길로 떠나는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5년을 보냈다. 그건, 제 자리에 우두커니 멈춘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5년이기도 했다. 회사에 남은 이들끼리 술잔을 기울이면, '대기업'이라는 말은 멸칭 비슷하게 사용되곤 한다. "대기업이 다 그렇지 뭐", "대기업 시스템이 거기서 거기지", '대기업 임직원에게 무얼 더 바라겠니" 등등.


취업 준비생을 대상으로 회사에서 주최하는 잡 포럼에 참여한 적이 있다. 허심탄회한 마음으로 회사에 대해 설명해달라는 인사팀의 주문에, 나도 모르게 너무 편하게 말했나 보다. '대기업이 다 그렇죠' 류의 어조로 학생들에게 이야기를 풀다가 그런 자신에게 흠칫 놀란 경험이 있다. 내가 대기업을 다닌다고 해서 그것을 너무 쉽게 말하지 않았는지 반성한다. 그것을 선망하며 바쁜 시간을 쪼개 온 학생들에게, 당신들이 희망하는 건 사실 별 게 아니에요.라고 말하면 안 되었다. 그게 꼰대질이라서가 아니라, 도의상 그래선 안 되는 것이었다. 



03. 몇 안 되는 프리미엄

같은 대학을 다녀도 문과와 이과의 취업률은 꽤 다르다. 취업이 어려워지자 대학원을 진학하는 문과 학생들이 많아졌지만, 역설적으로 연구실을 동대학 학부생 출신으로 채우는 비율은 나날이 줄어만 간다. 예전보다 학생들의 형편이 좋아졌을 수도 있고, 한국 명문 대학원의 프리미엄이 낮아졌을 수도 있겠다. 여하튼, 예전보다 해외 대학원으로 진학하는 명문대 학부생들이 많아진 것이 원인이었다. 교수들은 연구실 정원을 충족하려 타대생 출신 대학원생들을 보다 많이 받았고, 학내에는 그들을 향한 여러 소문들도 함께 늘어만 갔다. 대개는 안 좋은 류였다. SNS 프로필에 출신 대학교를 지우고 학벌을 세탁했느니 어쨌느니.


지난봄, 함께 점심을 먹으며 이런 이야기를 전해준 친구는 내 눈길에 갑작스레 머쓱해하며 덧붙였다. 자신도 이러한 생각이 도덕적으로 올바르지 않다는 걸 알지만, 자신도 모르게 타대생 출신 대학원생들에게 거부감이 든다는 것이다. 공부를 잘했기에 또래보다 승승장구하며 살았는데, 이제는 내가 가진 한 줌의 프리미엄은 학벌밖에 안 남은 느낌이라고. 그래서 그 학벌 프리미엄을 지키고 싶다는 마음이 잔인하다고. 


솔직함에는 놀라운 힘이 있다고들 한다. 그의 허심탄회한 자기 고백을 마주하면서, 나는 차마 입바른 소리를 내뱉기 어려웠다. 고등학생까지 공부를 잘했다는 것은 중요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그 이후의 모든 것의 계량법과 척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 적어도 지금의 한국에서 행해지는 평가의 잣대는 너무도 잔인하다. 하지만 나는 차마 그렇게 말할 수 없었다. 나는 문과 대학원생이 아니었다. 나는 그와 동등한, 혹은 비슷한 상황에 처한 사람이 아니었다.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자신을 인식하며, 자신 있게 훈수를 두는 사람처럼 말해서는 안 되는 게 아닐까. 





2010년, 대학생 한 명이 대학 거부 선언을 해서 화재가 되었다. 일각에서는, 그가 고려대학교 학생이었기에 더욱 파장이 컸다고들 한다. 누군가 비꼼 가득한 말투로 평론하기도 했다. '학벌을 거부하려면 학벌이 높아야 하는 딜레마'라고.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한 이는 주목받지 못하고, 때론 패배자의 변명이라며 폄하당하기 일쑤다. 좋은 결과를 낸 이는 눈총 받을 걱정 없이, 옳은 말이랍시고 자기 의견을 내뱉을 수 있다. 그리고 그 훈수 놀음이 꼴불견처럼 보이기에, 나는 말을 아끼게만 된다. 후회할 말을 자주 내뱉어야만 하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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