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가다④
12시, 3시, 4시40분 소스라치게 놀래서 잠을 갰다. 늦으면 안 된다는 강박 때문인가. 다행히 오늘도 늦지 않았다.
오늘은 빨간모자를 쓴 이씨 아저씨와 일을 나섰다. 아침을 먹으며 뉴스를 보며 우리 민족이 얼마나 위대한지 중국과 일본을 비교해가며 열변을 토하던 아저씨다. 정치인들도 욕하고, 데모하는 사람들도 욕을 해댄다.
처음 온 나를 보고 왠지 낯설었나 보다. 내 안전화를 보고 “이거 안전화 맞냐? 얼마냐?” 4만원이라 했더니 왠지 표정이 안 좋다. 2만5천원, 3만 원짜리도 많은데 왜 그런 것 샀냐는 표정이다.
목적지는 강남 명품 거리. 5층짜리 ‘오메가’ 명품시계 매장을 리모델링 하는 곳이었다. 건물 외벽에 오메가라는 LED 전구가 나오는 조형물을 세우는 일이다. 5층 높이에서 철골 구조물에 매달려서 하는 일은 굉장히 위험해 보였다.
얼마 전 여기서 사람이 다쳤다. 한 일용 잡부가 떨어지면서 다리가 찢어져 살점이 다 보일정도로 크게 다쳤다. 주변 사람들은 돼지고기 같았다고 수근거렸다. 다친 사람만 손해라는 소리도 들렸다. 여기서는 사람 목숨이 하찮게 취급당한다. 그렇게 부유한 수십 명이 이용할 현란한 명품을 위해 가난한 수십 명은 목숨을 걸고 일을 하고 있었다.
내가 하는 일은 건물 옥상에서 오메가라고 표시할 LED 전구가 박혀있는 조형물 포장을 벗기고 옥상 아래로 같이 건내주는 일이다. 하나 설치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려 기다리는 시간이 길다. 가끔 ‘산소’라고 소리치면 산소 밸브를 열고 산소 주입기를 여는 것도 내 일이다. 추위에서 자기 일이 올 때 까지 기다리는 게 일이다. 여기보다 2층정도 더 높이에 철골 아시바가 쌓여있고 사람들은 거기서 용접을 했다.
탈북자 한명이 있다. 참 사람들과 잘 어울리면서 지낸다. 커피 3잔을 들고 아시바 위에 한층한층 놓으면서 꼭대기 층에 용접하는 분들에게 커피를 날라준다. 서글서글하다. 좋아 보이고 안 쓰러 보이기도 했다.
고소공포증이 있어 바들바들 떨긴 했지만 무사히 일은 끝났다. 이씨 아저씨가 퇴근길에는 내 파카가 얼마짜리냐고 물어본다.
“K2 잠바 한 20만원요. 선물 받았어요.”
“야 내 파카가 얼마짜린지 맞춰봐. 내가 못 맞추자 손가락 하나를 편다.”
“10만원요?”
“아니 만원이야. 동대문에서 떨이해서 만원이라고. 그래도 엄청 따뜻해”
내 돈 주고는 못 살 20만원짜리 파카. 얻어입은 파카가 왠지 민망하다.
노동 귀족이라는 이야기가 왜 먹히는지 알겠다. 이들에게는 정규직의 삶도, 보통 사람들의 삶도 부러운 대상이다. 나는 여기서 노가대 귀족이었다.
1만원짜리 파카와 20만원짜리 파카. 참 그렇다. 낮아져야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