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로 올 수 밖에 없는 사연

노가다⑤

by 삽질

이제는 새벽 공기가 익숙해졌다. 일도 조금씩 몸에 배었다. 남양주 호평에 있는 KCC스위첸 아파트 건설 현장에 왔다.


김씨 아저씨가 배정 받은 곳에 한 명이 비어 가겠다고 나섰다. 원래 한 사업장에 계속 가는 경우가 아니면 만나기 힘든데 다시 만나니 무척 반가웠다. 호평까지 가는 1시간 동안 이야기를 많이 했다. 김씨 아저씨는 입담이 참 좋다. 말도 많아 부럽다. 어떻게 이야기가 그렇게 술술 나오는지 신기했다.


김씨 아저씨는 12년 노가다 동안 베스트3 안에 드는 곳이라고 식당 칭찬을 늘어놓았다. 가보니 정말 한식 뷔페가 잘 나왔다. 그곳은 일반 식당이 아니라 건설현장마다 따라다니는 함바집이라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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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틀 보조업무. 형틀일은 주로 형틀 목수가 하는데, 요즘에는 형틀, 해체, 자재정리 대충 이렇게 3가지 공정으로 분업화 되어있다. 우리는 각각 남은 일들을 뒤처리 했다. 처음 맡은 일은 형틀 할 때 받치는 봉을 쌓는 일인데 다 요령이 있어야 할 수 있다.


이 팀을 운전해서 데리고 다니는 십장은 일을 정말 마구 시켰다. 십장이 한 60정도 되어 보이는 아저씨를 마구 다그치는데 보는 내가 다 민망할 정도였다.


처음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라 너를 시킨다’며 휠러를 분류하는 일을 시켰다. 휠러는 콘크리트 형틀 틈 사이에 끼우는 딱딱한 스티로폼인데 사이즈가 120 105 90 얇은 거 두꺼운 거로 6가지가 된다. 그걸 일일이 나르고 분류하는 일을 계속했다. 아무 잡념 없이 일만 하니 이것도 나쁘지 않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휠러를 분류하다가 ‘명끼’라고 하는 모서리에 끼우는 딱딱한 스티로폼 뭉치를 갔다가 버렸다. “야 이 새끼야 너 이게 얼마짜린지 알아. 너 이거 왜 버렸어 어!”라고 된통 욕을 먹었다. 건설현장은 말의 절반 이상이 욕이기 때문에 이제 뭐 일상사다.


“머리를 써라. 노가다 와서 그냥 시키는 것만 하지 말고 기술 하나라도 배워야지 더 많이 일가고 대우 받는다”라며 잔소리를 했다. 듣기 싫었지만 맞는 말이었다.


오후에는 아파트 1층 바닥에 콘크리트를 붇기 위해 정리하는 일을 했다. 십장은 “여기 모서리를 봐라. 얼음이 얼어있지? 이런 것도 다 깨내야 된다니까. 얼음이 있는 채로 콘크리트를 부으면 곰보가 생겨. 삼성 같은 1류는 절대 이렇게 시공 안한다고, KCC는 2류니깐 이렇게 대충하지” 라며 일일이 빠루로 얼음을 깨기 시작했다.


십장은 얼음을 깨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너 뭐하다 여기왔어?” “그냥 장사 좀 하다가요..” “우리 딸은 시집갔고, 아들은 전문대 갔다가 다시 편입해서 공대갔어. 자식들 가르쳐야지. 나는 인테리어 사업을 하다 친구가 간경화로 죽고 이 일을 시작했어. 나는 형틀, 자재관리 일만 주로 다녀” “절대 그냥 안해. 대우 받으면서 일하지” “너도 이거 하려면 잘 배워 설렁설렁 하지말고”


얼음을 다 깨고 다시 쓰레기를 두어 바퀴 돌면서 주었다. 얼추 다 주었다고 하니 “너 내가 가면 쓰레기 분명히 있다. 욕 얻어먹지 말고 쓰레기나 똑바로 더 주어”라며 성을 냈다.


십장은 마지막에 지게차, 트럭으로 옮길 수 있는 나무틀인 화목다이 짜는 것을 와서 잡으라고 하면서 알려줬다. 이것도 다 규격이 있다고, 1400X2200으로 짜야 된다고 했다. 욕은 많이 먹었어도 나쁘진 않았다. 왠지 정감이 갔다.


여기 사람들은 참 성실히 일한다. 여기로 올 수 밖에 없는 사연이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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