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부탄 Sep 29. 2023

하노이에서 내 집 마련하기 (2/2)

깡통집의 변화

* 이전 글 보기 => 하노이에서 내 집 마련하기 (1/2) - 진짜 ‘우리 집’을 찾아서



서울의 다섯 배가 넘는 이 넓은 하노이 땅 안에도 드디어 내 집이 생기는 건가? 베란다 밖 풍경을 보며 생각을 했다. 처음 하노이에 왔을 2010년만 해도 높은 건물은 많지 않았는데, 편평했던 스카이라인은 어느덧 매일 변하고 있었다. 우리는 투자가 아니라 가족들과 함께 오래오래 살고 싶은 집을 꿈꿨다. 가지고 있는 예산은 물론, 우리 가족의 생활에 맞는 구조, 일터나 한인타운으로부터 적당한 거리, 공원이나 호수가 있는 동네 분위기, 그리고 만두의 학교나 슈퍼 등의 시설까지 고려해서 아파트를 선택했다. 그리고 결국 총 구매 금액의 30%인 아파트 계약금을 냈다. 이제 시작이었다.


요즘 베트남에서 분양되는 일부 아파트는 기본 옵션으로 최소한의 인테리어가 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파트는 골조 분양인 일명 ‘깡통 집’이다. 현관문과 벽만 있는 휑한 집을 산 뒤 화장실 변기, 세면대, 환풍기, 타일 바닥부터 부엌 싱크대, 마룻바닥, 각 방문, 조명, 벽 페인트 등까지의 모두를 집주인이 직접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베트남 가정에서는 작은 아파트라도 다세대가 살았다. 아이들이 평균 두 명씩 있고, 손주를 봐주시는 조부모의 방도 필요했고, 상주 가사 도우미가 있는 집에선 도우미를 위한 공간도 있어야 하니 아파트 구조가 잘게 쪼개져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집집마다 대부분 있는 재단을 둘 공간도 필요한데, 간소하게 벽에다 재단을 달아놓는 집이 있는 방면 어떤 집은 냉장고보다 큰 크기의 재단을 거실 한쪽에 두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는 원하는 인테리어를 위해 벽을 부수고 창문을 만드는 등 집을 재구조화했다. 그 결과 보통의 베트남 아파트에서는 나오기 어려운 세 명의 가족 구성원을 가진, 거실이 넓은 집이 그려졌다.


건설회사에서 일하는 남편과 한때 디자이너였던 나는 어벤저스 팀이 되었다. CAD로 2D 도면을 그리거나 스케치 업 프로그램으로 3D 뷰를 만들어내는 일쯤은 둘 모두에게 어렵지 않았다. 나는 베트남어를 할 수 있었고, 남편은 내가 모르는 현장의 전문 용어를 알았다. 내가 디자인 리서치를 해서 손으로 그린 스케치를 남편은 3D로 만들었다. 우리는 수정에 수정을 더하며 우리가 원하는 집을 그려 갔다.




인테리어 시공 업체를 찾았다. 시스템 주방 등 외국 브랜드의 설비를 파는 대리점도 있었지만 너무 비쌌다. 맘에 드는 디자인으로 시공하는 업체를 찾기도 했지만 가격을 떠나 몇 달 이상을 기다려야만 했다. 하노이에 부동산 붐이 이는 시기, 적절한 인테리어 업체를 찾아서 조율하며 시공하는 일은 우리 같은 외국인뿐 아니라 베트남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로 머리 아픈 일이었다. 때문에 대부분 제일 간편한 방법으로 비슷한 디자인 시공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우리는 몸에 딱 맞게 아오자이를 재단해서 입는 것처럼 기왕이면 우리에게 잘 맞는 집을 만들고 싶었다. 하는 수 없이 도면과 함께 샘플로 보여줄 디자인 이미지들을 들고, 저렴한 가격으로 바로 시공을 시작해 줄 수 있는 인테리어 업체를 찾아갔다. 페인트 색도, 나무 색도, 타일 크기와 모양도, 마루 바닥의 종류도 모두 직접 선택해서 알려줬다. 우리가 그려온 도면에는 배치는 물론 이미 정확한 치수의 가구가 그려져 있었고, 콘센트와 전기 배선 위치도 표시되어 있었다. 별도의 디자인 비용이 필요 없을 정도로 하나하나 다 그려줬다. 그리고 나머지 빈 공간들은 우리가 살면서 직접 채울 요량으로 주방과 화장실 위주로만 시공하는 가장 ‘심플’한 인테리어를 요청했다. 그러나 베트남 인테리어 업자들이 생각하는 ‘심플’은 내가 생각한 ‘심플’과는 많이 달랐다. 그들의 가져온 심플한 디자인 시안에는 이글거리는 태양 모양의 큼직한 거울이 거실 벽 한가운데 붙어 있었다. 내가 요구했던 심플한 책장에는 마치 가시가 돋친 듯 여기저기 칸막이가 마구 나누어져 있었다. 여러 번 수정을 요했지만 모두 실패 한 뒤, 나는 심플의 뜻을 ‘아무것도 없는 것’이라고 홀로 재정립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애원했다. 제발 부디 아무것도 추가하지 말아 달라고.


남편의 말대로라면 인건비가 저렴한 베트남에서 개인 소유 아파트의 인테리어 작업은 업자들에게 큰 이윤이 남지 않는 사사로운 일이었다. 그래서인지 우리 집에는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듯한 어린 직원이 담당자로 배정되었다. 그리고 중년의 인부들로 구성된 외부 팀이 시공을 맡았다. 생각해 보면 그들에게도 우리는 최고로 힘든 고객이었을 것이다. 구체적인 요구가 많고, 현장 용어나 프로세스는 다 아는 눈 높은 외국인인 데다가, 바로 코 앞에 사니 수시로 들러서 검수까지 하는 사람들이었다. 아마 잘못 걸렸다 싶었을 것이다. 평소의 허당끼와는 별개로 일을 할 때만큼은 디테일에 집착하는 나였고, 역시 일에 있어서는 칼 같은 수행능력을 가진 남편이었다.


우리는 베트남에서 충분히 오래 살았고, 다양한 베트남 노동자들과도 일을 해봤으니 어떠한 역경이 나타나도 다 이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평균 이하로 낮춘 기대치가 무안할 만큼 공사 현장에서는 매일 상식 밖의 문제가 일어났고, 우리는 잘못된 것들을 손쉽게 집어냈다. 애초부터 한국 수준의 마감을 기대하진 않았지만, 요청한 것 중에 제대로 이루어지진 것은 거의 없었다. 욕실 바닥은 단차가 없어 샤워를 하면 물이 욕실 밖으로 넘치게 되었고, 요청과 달리 베트남 평균 높이의 낮은 싱크대가 만들어졌다. 주문한 부엌장의 다리 뒷부분은 깨져 있었고, 타카로 듬성듬성 박아둔 몰딩은 모두 붕 떠있었다. 남편은 마치 증거를 수집하듯 사진을 찍었다. 나는 그 사진과 함께 원래의 요구사항 관련 이미지를 모아 담당자에게 하나하나 보냈다. ‘알겠습니다’ 짧은 답변이 돌아왔다. 그러나 며칠 후, 다시 현장을 가보면 실수를 대충 수습하려다 더 악화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작업자들과 담당자는 그저 웃었다. 베트남에선 웃는 자가 승자였다. 나는 인테리어 업체의 사무실의 관리자에게 바로 연락을 했다. 관리자가 현장에 있는 젊은 담당자에게 전화를 한 뒤로 그는 더 이상 웃지 않았다. 반복에 반복을 했지만 상황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하루는 인부들이 1층 주차장에서 자재를 가지고 현장으로 올라가려는데 ‘마피아’가 길을 막아서 돈을 쥐어줘야 한다며 전화가 왔다. 노점상에게 돈을 갈취한다던 동네 깡패들인가 싶었다. ‘그런 돈을 줄 수 없다’ 며 알아서 하라고 말했다. 잠시 후 그들이 정말 마피아에게 돈을 쥐어준 건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자재들을 들고 현장에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다. 비교적 큰 비용이 들었던 마루를 까는 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남편이 현장에 들렀더니 역시나 인부들은 바닥의 시멘트 가루와 먼지와 쓰레기 봉지들을 그대로 둔 채 그 위에 마루를 덮고 있었다. 남편은 화를 내며 피스를 다시 떼어냈다. 한참을 쳐다보던 인부들이 스멀스멀 움직이며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인부들은 점심시간과 낮잠시간과 퇴근시간을 칼같이 지켰다. 우리가 아무리 이런저런 요구를 해 봤자 경험 없는 어린 직원은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나이 많고 경험 많고 고집 센 인부 아저씨 아주머니들은 그 새파랗게 어린 직원의 말을 듣지도 않았다. 베트남 사람들과 그들의 노동 문화를 충분히 이해한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난 아직 멀었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공사 기한이 끝났다. 멀리서 봤을 때 싱크대 상부장이 기울어졌다거나, 기대했던 나무 재질이 아니라거나, 몰딩이 바닥과 다른 색이라던가, 창문 벽 마감이 안되었다거나, 욕실 바닥 타일에 묻은 시멘트가 지워지지 않았지만 나는 더 이상 벽에 대고 소리치고 싶지 않았다. 머리카락이 숭숭 빠졌다. 집이고 뭐고 진지하게 베트남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동시에 정말 떠나게 될까 스스로를 다잡으며 어린 직원에게 말했다. ‘같은 색 페인트 한 통이랑 붓만 놓고 가세요. 그만하고 우리 집에서 제발 나가주세요.’ 그렇게 하노이에 우리 집이 생겼다. 아직 미완성된 우리 집. 우리 집을 가볍게 훑어본 지인들은 남의 속도 모른 채 집이 예쁘다고 했다.




페인트와 새 가구 냄새가 없어질 무렵, 우리는 새 집으로 이사를 했다. 새 집에서의 첫 번째 날, 만두의 키를 재서 거실 벽 한편에 표시를 했다. ‘이사한 날!’ 아직 새 소파와 새 식탁이 들어오지 않아 휑한 거실이었지만, 이젠 만두가 벽에 낙서를 하거나 스티커를 붙인다고 눈치 볼 일도 없었다. 정말 집주인이 된 것이다. 만두와 베란다에서 지는 해를 바라봤다. 남의 집에서 바라본 풍경과는 사뭇 달랐다. 시설 관리 팀에서 안전상의 이유로 원하던 이중 새시는 설치하지 못하게 한 덕에 뻥 뚫린 난간 사이로 살랑살랑 시원한 저녁 바람이 불어왔다. 아직 우리 빼고는 높은 건물이 하나도 없는 동네의 잔잔한 스카이라인이 보였다. 베란다 난간에 다리를 걸친 채 캠핑 의자에 앉아있던 만두가 한마디 내뱉는다.


“엄마, 오늘 정말 행복한 날이다! 너무 행복한 날이야!”


만두와 아파트 구석구석을 다니며 길을 익혔다. 새끼 잉어들이 가득한 연못을 지나 있는 1층 구석엔 도서실과 조그마한 실내 수영장이 생긴다고 했다. 놀이터와 농구장 옆에 심어둔 대나무는 아직 어렸다. 몇 년쯤 지나면 잎이 풍성해질까? 그때쯤이면 아이들이 놀 때 시원한 그늘이 지겠지? 2층부터 4층까지는 주차장이었고, 5층에 야외 수영장과 좁은 산책로가 있었다. 이전 아파트에서 가장 좋았던 자연 친화적인 산책로가 없는 게 가장 아쉬웠지만 바로 길 건너 아파트는 언제고 놀러 갈 수 있는 거리였다. 아직 익숙해지지 않은 탓일까 이전 아파트에 비해 구조가 복잡하게 느껴졌다. 만두와 함께 만나는 경비 아저씨와 청소 아주머니께 꼬박꼬박 인사를 드렸다. 그리고 만두에게 우리 집의 동과 호수, 그리고 내 전화번호를 베트남어로 말할 수 있게 일주일 내내 연습을 시켰다. 네 개 동짜리 아파트에서 혹시나 만두가 길을 잃어도 이제는 조금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얼마 후 만두 방으로 꾸미고 있는 작은 방 벽에서 물이 새는 것을 발견했다. 인테리어 업자와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전화를 걸었다. 삼자대면 끝에 아파트 시설 관리 팀이 순순히 잘못을 인정했다. 이전에 하노이의 한 5성급 호텔 레지던스의 관리 책임자였다던 총책임자가 찾아와서는 반드시 책임지고 고치겠노라 말했다. 너무 놀라운 대응이었다. 얼마 전에 한인타운의 새 아파트에서 같은 하자를 발견하고는 인테리어 시공사와 아파트 시공사 측이 서로 잘못을 미루다 도망을 가버린 이야기가 생각났다. 결국 그 한국인 집주인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하자 있는 그대로 살고 있다고 했다.


한 달이 넘도록 시설 관리 팀이 우리 집을 드나들었다. 회벽을 갈아내고 방수재를 바르고 메우는 작업을 했다. 그러나 며칠 뒤면 다시 물이 샜다.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시설 관리 팀은 우리 집을 드나들며 총 다섯 번 같은 작업을 반복했다. 회벽을 뚫었다 메우는 일을 하고 나면 매번 온 방안이 회 가루로 가득했다. 만두가 유치원에 가 있는 시간 동안 도와줄 사람을 불러 쓸고 닦고를 다섯 번 반복했다. 거실이나 부엌이 아니라 아직 물건이 하나도 없는 작은 방이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섯 번의 작업 끝에 결국 시설 관리 팀은 건물 내벽에 물이 새는 것이 아니라 외벽의 문제임을 알게 되었다. 아파트 한 동에 한두 집쯤 있을까 말까 하다는 외벽 방수 문제가 바로 우리 집에서 터진 것이다. 외줄을 탄 스파이더맨이 창문에 매달려서 외벽에 구멍을 뚫고는 외벽용’ 방수재를 넣었다. 마지막 작업 후 며칠간 장대비가 내렸다. 그리고 비가 완전히 멈춘 다음 날, 작업을 담당했던 직원이 찾아와 더 이상의 문제가 없는지를 확인했다. 다행히 더 이상 벽에 물이 새지는 않았다. 직원은 흔한 열대과일이 아닌 사과가 가득 담긴 비싼 과일바구니를 쓱 내밀었다. ‘씬로이(미안합니다)!’ 인정에 책임에 사과까지 이 정도면 너무도 감동적인 마무리였다. ‘이사오기 잘했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차곡차곡 추억을 채워갈 진짜 ‘우리 집’이었다.


새 아파트 벽에서 물이 샜다
나름 친절하고 책임 있는 아파트 시설관리팀
벽을 뚫어 방수재를 넣는 작업을 할 때마다 방이 하얗게 변했다. 이 짓을 여섯 번이나 해야 했다.


이전 05화 하노이에서 내 집 마련하기 (1/2)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