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해라는데로만 하자
대학교 3학년이 끝난 지금, 겨울 방학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글쓰는 것과 영어공부에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그와 동시에 나는 몰래몰래 영국 어학연수를 준비하는 중이다. 사실, 영국 어학연수를 가게되면 거기서 느낀 기분과 경험을 글로 풀어낼 계획을 하고 있었는데, 막상 연수준비부터 글을 쓰려고하니 뭔가 어색함이 몰려올라왔다. 뭔가 자랑하는 듯한 기분도 들고, 이 불경기에 영국 어학연수라니, 뭔가 죄스러운 기분이 들기도 했기 때문이다. 요즘 안그래도 수저론이 드세고 있는 이 시점에서 부모님의 도움으로 해외를 가는 입장이 되어보니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가끔 떠오르는 부담감에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했다.
어학연수의 계기는 간단했다. 그냥 영어를 잘하고 싶었고, 외국에 한번쯤 살아보면서 그들의 문화를 직접 몸으로 느껴보고 견문을 넓히고 싶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후자 쪽에 좀 더 무게를 두고있다. 솔직히 말해 10개월 정도의 어학연수로는 그렇게 큰 발전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하다. 예를들어 다른나라 사람이 우리나라에 10개월 머무른다고 한국어를 유창하게 할 수 없는듯이 말이다. 한번도 외국에 나가본 적도 없기 때문에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묻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여행을 가지 왜 어학연수를 가?" 틀린 말은 아니다. 영어를 잘하기에는 발음, 듣기 정도를 제외하고는 한국이 배우기 훨씬 좋고 어학연수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가는 것보다 단순히 여행으로 둘러보는 것이 더 저렴하다는 것이 당연하다. 그래서 처음엔 유럽여행이 내 계획이였다. 작년 초 이미 친구들과 유럽여행 계획을 짜기 시작했고, 작년 중순 계획은 다 완성되고 예약만을 남겨두었다. 처음에 부모님도 별다른 반대도 없었고 착실히 돈을 모아나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항공권과 숙박시설 예약을 앞두고 유럽여행 경험이 있는 부모님에게 조언을 구했더니 갑자기 이야기가 돌고 돌아 여행을 갈바에야 돈을 보태줄테니 어학연수를 가라는 것이였다.
정말 좋은 제안이였다. 친구들과의 약속을 깨야하고 소중한 추억을 만들 수 있는 기회는 물건너 가겠지만 어학연수를 지금 가지 않으면 언제 또 가보겠는가. 그리고 경험을 쌓기 위해서 간다면 한달 정도로는 아무것도 기억에 남지 않는다고 말하는 부모님의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분명 후회할 것 같았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그때부터 어학연수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말이 준비지 작년 학기중 유학박람회에 가서 컨설팅 한번 받은 것이 전부다. 실질적인 준비는 12월 부터 시작했는데 영국이 비자 신청하는데 제일 까다로운 국가중 하나라 구비 서류와 조건이 엄청 복잡했다. 게다가 아쉬웠던건 영국내에서 알바가 일체 허용되지 않는다는 점이였다. 현지에서 일도 조금 해보면서 현지인들과 대화도 해보고, 돈도 벌면서 생활비에 보태 부담을 조금이라도 더 줄이고 싶었는데 학생비자로는 절대 불가능하다고 한다. 물론 불법으로 몰래몰래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는 들었지만 너무 위험했다. 그렇다고 이제와서 워킹비자로 신청할 수는 없으니 눈 딱 감고 부모님에게 의존하기로 했다.
여권, 재산, 학적 그리고 신체검사, 간단히 비자신청에 필요한 서류를 정리하면 이 네가지다. 특히 여기서 제일 중요하게 보는 것이 재산 쪽 관련 서류였는데 입국자의 재정 상태를 엄청 신경많이 쓰는 듯 했다. 현금으로 2000만원 이상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야했다. 학생이 무슨 2000만원이 있는 것을 증명해야하나 싶긴했지만 10개월을 아무 일하지 않고 가지고 있는 돈으로만 지내야한다고 생각해보니 그것이 가능하다고 보여주는 것은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이였다.
학적은 내가 묶어서 말하기는 했지만 지금 다니고 있는 대학교의 재학, 성적 증명이 필요하고, 영국에서 다닐 어학원의 입학 증명서가 필요했다. 한국에서 어학연수 센터들을 통해 학비를 지불하고 어학원으로부터 입학서를 받으면 그것을 토대로 내가 학생으로써 얼마나 영국에 머무를 건지를 검토하는 형식이였다.
잠시 학생비자에 대해서 설명하자면 두가지 종류의 학생비자가 있다. (유학비자는 제외하고) SVV, ESVV 이렇게 두가지 종류가 있는데 간단히 비교하자면 기간의 차이가 있다. 나는 ESVV를 신청했는데 이 비자는 최대 체류기간이 11개월이다. 그렇기 때문에 적어도 7개월 이상 학원에 등록되어 있다는 사실을 비자센터에 증명할 필요가 있다. 고작 1개월 등록해놓고 어학연수생이라고 비자를 받을 수는 없었다. 왜 12개월이 아닌지는 의문이긴 하지만 설마 1년 채우려면 돈을 더내라는 악덕심보는 아니길 빈다. (우리나라의 경우 기업에서 어학연수 인정 기간이 최소 1년이라고 한다. 10개월이라니.... 2개월더하자고 다시 한국와서 비자받고 영국으로 갈수도 없고..)
그렇게 학적관련 서류 준비가 끝나면 신체검사가 남는데, 이게 좀 짜증난다. 과정자체는 간단한데 무조건 서울에있는 세브란스 병원에서 검사를 받아야한다는 것이다. 나 같은 지방사람에게는 최대의 난관이다. 왕복 교통비만해도 10만원이다. 피눈물을 흘리며 철도에 돈을 흩뿌리고 도착한 세브란스 병원의 비자용 신검센터에는 워홀, 여행 등 다양한 목적으로 외국을 나가기 위한 사람들이 신체검사를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대부분이 학생들이였는데 왠지모를 동질감에 마음이 편했었던 기분이들었었다. 혹시 아는가, 영국에서 만나게 될지. 사람들을 훝어보며 앞으로의 영국 생활을 그리면서 신체검사를 받았는데 기다리는데 30분 서류작성하는데 20분 신검하는데 5분걸렸다. 그냥 흉뷰 엑스레이 한장 찍고 끝이였다. 고작 5분 짜리 엑스레이 한장 찍는데 사람을 서울로 불러낸 것이다. 물론 빨리 끝나서 나쁘지는 않았지만 정말 허탈하다.
대충 문서 준비가 끝나면 비자 발급준비가 거의 끝난다. 그 뒤에 온라인 비자신청서와 보험가입이 필요한데 이부분은 유학원쪽에서 대부분 해준다. 영어로 작성해야하는 것이라 내가 아무리 영어를 배웠다하더라도 전문적인 양식도 모르고 관례도 모르기 때문에 혹시라도 영어에 자신있다 하더라도 맡기는게 발뻗고 자기 좋다.
비자신청, 또 다시 서울행이였다. 내 인생 이렇게 서울을 많이 간건 올해가 처음일 것이다. 이제껏 뭔가 일이 있어서 서울 오가는 사람들을 보면 뭔가 멋있어보이고 잘나보였는데 직접해보니 이것 만큼 부질없고 의미없는 짓이 없었다. 뭔가 서울에 갔을 때 그쪽만의 특징이나 꼭 해야만하는 과정이 있었다면 덜 억울 할텐데 그냥 서류 내고 도장 찍고 버튼 누르니깐 다됬다고 수고했다고 한다. 뭐 타 국가에 들어가는 비자를 발급받는 것이다 보니 딱딱한 관례를 전부 이행해야하는 것은 알겠지만, 성의라도 있어보이게 하던가 정말 대충대충이였다. 내가 발급한 서류 뭉치들이 꽤 되었는데도 확인하는데 몇분 걸리지도 않았다. 그리고 비자를 발급 받을 때 인터뷰정도는 할 줄 알았는데 그 것 조차 없었다. 그냥 지문인식과 비자용 사진한장 찍는 것으로 끝났다.
비자신청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정말 이걸로 괜찮은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혹시 떨어지면 어떡하지, 돈도 다 내고 준비는 다해놓았는데 출국일을 맞추지 못하는거 아닌가, 이제 취소도 안되는데 등 온갖 걱정이 다 들었다. 그러던중 1주정도 지났을까, 영국 출입국 관리 센터에서 메일이 왔다. 영문으로된 장문의 메일이였는데 내용이 내가 보낸 서류를 비자센터에 돌려보내니 받아가라는 내용이였다. 처음 그 메일을 받았을 때 살짝 의아했었다. 분명 비자가 발급되면 서류를 돌려보내준다고 했는데 벌써 돌려준다고? 내가 알기로는 3주정도 걸린다고 들었는데 1주도안되서 돌려준다니 이거 문제 생긴거아니야? 라는 걱정이 몰아쳤고 다급히 연락한 유학센터에서는 축하한다면서 몇일뒤에 비자를 받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제 비행기만 타시면 되시겠네요~"라는 들뜬 목소리가 날 비행기에 태우고 런던으로 보내버렸다. 유학센터 말처럼 정말 이틀뒤에 비자가 집으로 도착했고, 이제는 짐을 싸면서 출국일만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쓰고나서 생각해보니 귀찮은점만 빼면 비자 발급은 딱히 어렵지도 힘들도 않았던 것 같다. 물론 유학센터에서 스케쥴을 알맞게 짜주었기 때문이겠지만 서류발급이나, 준비과정에 아무런 에로사항이 없었다. 한가지 있었다면 서류 발급을 조금 일찍해서 다시 한번더 했어야 했던 것 정도였다. 비자신청 때 필요한 서류들은 1개월이내에 발급한것만 인정되니 미리미리 한다고 다 좋은 것이 아니였다. 괜히 했다가 두번일 하는 수고를 했었다. 처음에 스케쥴을 좀 빡빡하게 짜주길래 그냥 미리미리 받아놓은 것이 뒤통수를 때릴 줄이야.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냥 믿고 의심하지 말고 하라는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