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비워내도, 장소는 비워낼 수 없었다. 그리하여,
하루에 주어진 24시간, 온전히 널 생각하지 않으려 하였다. 너와 함께 하였던 시간은, 나의 시곗바늘 속에 담기지 않았다고 치부하였다. 그렇게 해야만, 널 비워낼 수 있어서다. 다만, 시간이 아닌, 장소라는 영역은 내 바람과는 동떨어져 있었다. 그래서, 익숙한 장소를 거닐 때면, 생각지도 못하게 예전의 우리와 마주치고는 했었다. 그 순간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던 편린을 끄집어내었을 때, 그곳에는 행복했던 두 남녀가 있었다. 지금의 내가, 그때와 다르다는 게 잘도 슬펐다. 그래서, 그간 갖고 있던 두 남녀의 모습을, 혼자만의 다른 생각으로 덮어놓았다. 그래야만 가려질 수 있어서다. 다 가릴 수 없을지언정, 그것이 너를 또 나를 위한 일이라고 보았다. 나는 또, 연결되었던 우리 사이의 고리가 끊어진 후에 너의 시간을 굳이 알려하지 않았다. 내가 모르는 만큼, 더 행복하게 살고 있을 거라 확신하여 살기로 하였다. 이제는 타인이 되어버린 너의 삶을 그렇게 정의하는 것이 내가 너를 위해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고, 그렇게 받아들이기로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