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앤나 Dec 06. 2020

러닝 첫날, 난 무엇을 기록했나

미안하지만 너의 속도엔 관심이 없다구


12월 1일, 러닝을 시작했다. 아 빼먹은 것이 있다면, 5분 러닝이다. 딱 5분만 달리면 되는 러닝. 한 달간 러닝을 하기로 약속한 사람들은 단톡방에 그날의 러닝기록을 올린다. 누가 올렸는지, 안 올렸는지도 잘 모르지만 그저 올리면 -심지어 걸었더라도- '좋아요'를 눌러주는 참 착하고 소박한 모임이랄까.
 
딱 5분. 우리는 달린다. 시간도, 장소도, 몸의 컨디션도, 속도를 내는 것도, 러닝이 끝나는 지점도 모두 다르다. 
 
나는 오늘 처음으로 십분을 달렸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면 얼마나 짧은 시간이고 또 느린 기록인지 안다. 오랫동안 달리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하니까. 언제나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을 동경했다. 뛰는 기분은 어떨까? 매일 달린다는 건 어떤 마음일까. 못내 궁금했지만 드러내지 않았다. 나는 달리기를 못 하니까. 늘 뒤쳐졌으니까. 남보다 느렸으니까. 그게 들통나는 체육시간 같은 것을 애써 만들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이따금 달리고 싶어질 때도 그저 조금 더 빠른 속도로 걸었다. 못 하는 걸 드러내고 싶지 않아. 
 
난 잘 못달리니까. 느리니까. 뛰는 모습도 이상할테니까.
 
러닝을 해야하는 12월 1일, 온종일 신경이 쓰였다. 괜히 한다고 했나봐. 이제라도 취소할까. 퇴근길 집에 가면서도 내내 고민했다. 아, 정말로 하기 싫어. 그리고 동시에 안쓰러웠다. 겨우 5분. 지하철 역에서 집까지 걸어가는 시간만 달려도 되는 짧은 시간. 왜 그렇게 힘들어 하는거야. 이제 머리마저 아플지경이야. 그렇게 지하철 역에 내려서 계단을 올라가며 무작정 달리기 어플을 켰다. 뛰어버릴거야. 위로 올라가면 그냥 뛰는거야. 
 
그렇게 그대로 달려버렸다. 퇴근길 차림 그대로 달렸다. 알았던걸까. 그날보다 조금은 커버린 아이는 알았을지도 모른다. 달리기가 싫었던 것이 아니라 달리기를 '못 하는' 내가 되는게 싫었다는 것을. 그렇게 뛰고 싶지 않다고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는 아이의 손을 잡고 같이 달려버렸다. 
 
신기하게 기분이 좋아졌다. 저녁 바람이 참 좋구나, 이 포근한 질감이라니 바람에 폭신하며 뛰어든 기분이야. 통통, 뛴다기 보다는 빠르게 걷는 모양새에 더 가까웠겠지만 재미있어 하고 있었다. 상쾌해. 게다가 퇴근을 하는 사람들 곁을 천천히 달리니 꼭 다른 시간을 사는 것만 같잖아. 서로가 안 보이는 시간에서 살고 있는 것 같아.  이동한 것 같아. 
 
5분 5초. 짧은 러닝을 마치고 생각했다. '기분이 좋아.' 달렸다는 것에 어떤 의미나 감정이 강하게 들 줄 알았는데, 그보다는 저녁 바람에, 이 느낌에, 기분이 좋아졌다는 생각이 훨씬 많이 들었다. 달리기는 처음부터 별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달리기로 어떤 내가 되느냐가 중요했던거다. 달리기가 끝나도 '꼴찌'는 없었다. 
 
앞으로도 없을 것이었다. 사실은 지금까지도 없었던것처럼. 출발하는 지점, 트랙의 길이, 길의 모양과 얼마나 굽었는지, 얼마나의 내리막이 있는지와 또 같이 달리는 사람들까지. 그리고 끝내 나의 트랙의 길이까지. 
 
다만 앞으로 한달간 이른 밤과 한낮, 새벽과 어느 아침의 바람을 기대하게 됐다. 그래서 속도가 아니라 바람의 기록하고 싶다고 적었던, 러닝 첫날의 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