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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앤나 May 25. 2021

뉴욕 서점! 미스터리한 일이 일어나는 곳

미스터리어스 북숍의 짓궂고 즐거운 이야기


미스터리한 서점이 숨겨놓은 이야기     

트라이베카는 조용하다. 특별히 무엇으로 유명하지 않은 거리는 자칫 지나치기 쉽다. 그러나 거리의 배경, 건물, 그리고 행인의 옷차림을 읽을 때 비로소 흥미로워진다. 오래 전 섬유와 식품 공장 지대로 호황을 누리던 지역은 대공황 이후 빠르게 낙후되어 갔다. 폐허가 된 지역을 찾아온 이들은 뉴욕의 예술가들이었다. 낮은 임대료, 로프트 구조의 다락방, 게다가 높은 층고의 건물은 작품을 전시하기 제 격이었다. 이후 갤러리, 아트 스튜디오, 부띠끄와 아뜰리에로 유명해진 트라이베카는 뉴욕의 가장 세련된 동네로 불리며 매 년 영화제가 열리고 있다.     


볼 것이 없는 거리란 없다. 다만 쉽게 읽히는가, 읽어내야 하는가의 문제다. 독특한 건물 구조, 외벽을 타고 오르는 계단, 그리고 건축, 조각, 사진 공방과 자유롭고 감각적인 옷차림. 거리의 풍경으로 흥미로운 줄거리를 읽다보면 한 곳에 다다른다. 뜯겨진 책장 모습의 간판, 구불구불한 글씨체. 이 거리와 닮은 서점, The Mysterious Bookshop이다.    

 


미스터리한 서점의 인사 

서점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멈칫하게 된다. 눈에 띄는 붉은색 소파 아래로 술이 달린 가죽 시트가 펼쳐져 있고, 그 위로 오래된 펄프 영화의 포스터가 걸려있다. 낮고 커다란 테이블 위에는 읽다만 책들이 흐트러져 있다. 그 뒤로 바닥부터 천장까지 빽빽하게 꽂혀있는 책들은 사람 키의 두 배는 훌쩍 넘어 보이는 데, 서가 중간으로 사다리가 걸쳐져있다. 여기가 어디더라, 떠올리려고 애를 쓰며 고개를 돌리면 지하로 내려가는 문 입구에 사건 현장처럼 테이프가 붙어있다. [범죄 현장. 출입금지] 문득 알아챈다. 여기는 추리 소설의 한 장면이다.     



미스터리한 서점은 그 이름답게 13일의 금요일에 문을 열었다. 1979년 미드타운의 건물에서 문을 연 이후 더 넓은 -혹은 어울리는- 공간을 찾아 1992년 트라이베카를 찾아온 이래 세계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미스터리 서점으로 자리하고 있다.     


서점의 가장 앞 쪽 선반에는 '미국 추리 고전' 컬렉션들이 진열되어 있다. 오래된 작품은 세련된 디자인을 입고 시선을 잡아끈다. 뒤로는 어린이 분야가 이어지는데, 재기발랄한 제목들 -마지막 비밀, 고양이의 실수, 바보들의 수수께끼-은 추리 소설에 대한 편견을 깨고 색다른 호기심을 갖게 한다. 어쩌면 미스터리란 궁금한 것을 묻는 과정일까. 타인의 불편을 감지하고 세상의 문제에 공감하며 조금 더, 용기를 낸 사람들의 이야기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추리 서점은 국가, 시대, 장르별로 주제를 방대하게 아우른다. 지역의 계절과 문화는 자연스럽게 문제의 배경이 되기도 한다. 칠흙같은 겨울밤 사건이 일어나는 북유럽 미스터리와 복지의 이면이 드러나는 장르물, 근대 경찰 제도에 반대했던 19세기 영국 특유의 탐정 소설, 사회 권력 구조의 폐단을 드러낸 뉴게이트,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독일의 수사물과 시적 감각이 녹아든 프랑스 추리 소설, 그리고 성 소수자, 유색 인종, 여성들이 주요 인물로 등장하는 최근작에 이르기까지. 시대마다 문제라고 불리는 것과 풀어가는 방식은 달라져왔다. 내가 사는 곳이기에 합법인것과 특정 시대이기에 불법이 되었던 것은 무엇인가. 추리란, 범죄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범죄로 부르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가까웠다. 그에 대한 대답을 해야 하는 독자는, 진지한 고민에 잠겨야 할 의무가 생긴다.     



조금 더 편안한 코너도 있다. 제빵사, 정원사, 서점 주인, 바리스타, 웨딩 플래너 등 평범한 직업을 가진 인물들이 주인공인 작품은 일명 '코지 미스터리(Cozy Mystery)'로 분류된다. 책의 제목도 <버지니아의 꽃집 미스터리>처럼 소소하게 흥미를 유발하는 장르는 전문 탐정이 등장하지 않는 만큼, 잔인하고 폭력성이 짙은 사건보다는 일상적인 장면들이 주를 이룬다. 설령 탐정이 등장한다고 해도 꽤나 인간미가 넘치는 데, 일흔을 앞둔 할머니 탐정 '셀린'이 등장하는 소설을 펼치면 다음과 같은 문장이 적혀있다.     


"지금 아버지를 찾는 것이 그 여자의 마음에 어떤 매듭을 지어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본질적인 슬픔은 변하지 않으리라. 그리고 그게 셀린이 하는 일이었다. 셀린은 오래전에 그것을 받아들였다. 자신의 일은 그런 불완전한 상봉을 위해 다리를 놓는 일이라는 것을."

-피터 헬러 <셀린>      



대화를 걸어오는 사람들

미스터리어스 북숍이 유명한 또 하나의 이유는 직원들의 박식함과 유머러스함에 있다. 이들은 책을 추천해달라는 독자들의 부탁에 기꺼이 응하는데 대개 예상을 뛰어넘는 방식이다. 좋아하는 작가는 물론, 사건이 일어나길 바라는 시간대와 장소를 묻거나 작품에 등장하는 소재로 취향을 파악하기도 한다. 내가 메고 있던 에코백에 그려진 고양이를 보고 고양이를 기르는 탐정, 고양이로 인해 벌어지는 사건, 여기에 고양이가 그려진 동화책을 가져다 주던 앤드류를 비롯해 "내가 늘 목표로 삼는 것인데, 고객이 책을 추천해달라고 하면 30개의 책 제목을 알려주며 혼란스럽게 만들고 싶다."던 마이크처럼.     


그리고 이 서점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 바로 오토 펜즐러(OTTO PENZLER)가 있다. 바로 서점의 주인이자 미스터리 소설 분야에서 가장 유명한 편집자. <미스터리와 추리의 백과사전>과 <라인업>으로 에드거 상의 '베스트 비평/전기 부문'상을 수상했고, 미스터리 서적 분야에 대한 공으로 미국 미스터리 작가 협회로부터 레이븐 상과 엘러리 퀸 상을 받은 미스터리 분야의 전대미문한 인물. 현재도 다양한 주제로 미스터리 작품집을 발간하고 있으며, 수천 명의 구독자를 위한 뉴스레터를 무료로 발행하고 있다.     


이렇다보니 오토 펜즐러를 보기 위해 서점을 찾아오는 독자는 물론이거니와 그와 협업을 하는 작가와 미스터리 분야의 관계자의 수도 상당하다. 이들이 모여드는 서점의 평일 저녁은 북클럽과 사인회, 대담과 토론을 비롯한 다양한 이벤트로 북적인다. 미스터리한 인물들이 모여든 장소에서는 어떤 사건이든 재미있어지기 마련일까. 이를테면 미스터리 작가들의 요리책(Mystery Writers of America Cookbook)처럼 새로운 이야기가 탄생하기도 한다.     


서점이 운영하는 북클럽도 특별하다. 총 일곱 개로 나뉘어지는데, 에드거 상 후보작을 다루는 더 퍼스트 미스터리 클럽(The First Mystreious Club), 마니아적 장르로 한정한 하드보일드 (The Hard-Boild Club), 코지와 로맨틱을 포함한 소프트 보일드(Soft- Boild Club), 문학성이 깊은 스릴러를 다루는 언클래스피어블(The Unclassfiable Club) 등 다양한 시각과 취향으로 미스터리에 대한 대화를 나눈다. 정기적으로 작가들의 사인이 담긴 초판본을 제공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이런 곳에서 독자를 넘어선 수집가와 마니아가 되어가는 것은 당연한 흐름이다.     



셜록 홈즈그보다 매력적인 이야기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홈즈》 컬렉션은 한 쪽 벽면을 모두 차지할 정도로 그 양이 거대하다. 오리지널 초판에서 국가별 시리즈와 연구서적, 매거진, 만화, 그래픽 노블 그리고 그의 관점으로 바라본 심리와 역사, 과학에 이르기까지. 셜록만으로 모든 분야가 완성되는 서재에서는 그의 생일을 기념하는 파티가 열리기도 한다.     


서점은 이와 함께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에 대해서도 소홀하지 않다. 셜록의 컬렉션 옆에는 프로필 북 시리즈가 있는데, 이는 오토 펜즐러의 기획으로 추리 소설 작가들에게 각 캐릭터의 탄생 비화를 써 달라고 한 것이다. 의뢰 받은 작가들은 캐릭터를 창조하는 방법부터 성장기에 이르는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냈는데 에세이, 인터뷰, 회고, 단편 소설 등의 흥미로운 구성은 빠르게 독자들을 사로잡았고, 곧장 서점의 베스트셀러로 등극했다.      


서점의 이벤트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매 년 연 말, 미스터리 작가와 함께 '크리스마스 특별판'을 기획한다. 이 시리즈는 세 가지 전제 조건이 있는데, 첫째로 미스터리, 범죄, 서스펜스물일 것. 그리고 시간적 배경이 크리스마스일 것. 마지막으로 사건의 일부가 일어나는 장소가 서점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들은 한정판으로 발간되며 서점의 고객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전달된다. 이처럼 사랑스러운 선물이 있을까? 게다가 특별판의 묘미를 잘 알고 있는 작가들은 기회를 놓치지 않는데, 이를 테면 오토 펜즐러에게 원고를 퇴짜맞은 후 복수심에 불타오른 작가가 그를 죽이기 위한 계획을 세우는 서스펜서 이야기나 오토 펜즐러가 흠모하던 여성과 하룻밤을 보내지만 술 때문에 기억하지 못 해 벌어지는 사건처럼 짓궂은 줄거리로 웃음을 자아낸다.     



서점에서 찾아내야 하는 것

오토 펜즐러에게 가장 좋아하는 세 권의 책을 알려달라고 하자 '오, 굉장히 어려운 부탁이군요.' 라며 사다리를 타고 한참을 오르내린 후, 세 권의 책을 꺼내 보여준다. <The bomb maker> <Red leaves> <The Last Good Kiss> 전쟁 후 개인의 가치관을 다룬 이야기, 사회적 책임감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아름다운 영상미가 압권인 소설까지. 그리고 설명한다. 일반적인 추리물은 아니지만 자신의 심리에 깊게 몰입하거나 문학적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사색’할 수 있는 책이 될 거라고.      


서점은 추리가 무엇인지 묻는다. 우리가 옳다고 믿는 것과 혹은 그렇지 않은 것에 관해 물어온다. 이를 위해 다양한 시각이 공존하는 작품들을 진열하고 가운데는 커다란 소파와 테이블을 두어 대화를 나누게 한다. 서점에서 추리는 책의 장르가 아닌 삶의 장르가 되어갔다. 서로 궁금해하고 함께 알아가는 그 서사가 기록되는 여정처럼. 새로운 장르와 끝없는 대화로 미스터리 소설이 아니라 미스터리한 일을 기대하게 하는, 그래서 추리를 꿈꾸게 하는 것. 이것이 미스터리 서점이 숨겨놓은 쿠키영상이 아닐까.          


서점을 나오며 오토 펜즐러에게 약속했다. 서점에 대한 칼럼을 쓰고 보내주겠다고. 물론 한글로 적힐테지만 당신에게는 그것조차 흥미로운 미스터리가 되지 않겠냐는 얄궂은 말에, 그는 당했다는 표정을 짓고는 말한다. "굉장한 추리물이 되겠는 걸. 날 죽이지만 않는다면 말이오.”




그리고 2021년 4월, 그 약속을 지켰다.


국립중앙도서관 <오늘의 도서관> 3월호를 보냈다. 죽이지 않았으니 이 정도면 꽤 만족스러워 할 이야기가 아닌가.


서점에 보냈고, 비밀스런 답장이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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