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의 정의를 다시 묻다. 무엇으로 건강을 말할 수 있나?
"건강하세요?"
누군가 이렇게 물으면, 우리는 대개 최근 병원 검진 결과나 혈압 수치를 떠올린다. 하지만 정말 그것이 건강의 전부일까? 내게 건강은 정상 수치의 숫자일까, 아니면 7시간 푹 자고 일어난 아침의 컨디션일까. 감기에 안 걸리는 것일까, 소화가 잘되는 것일까, 추위를 덜 타는 것일까. 다 비슷해 보인다면, 내가 생각하는 나의 건강은 이렇다.
건강을 보는 스무 개의 시선
1. 계단을 오를 때 숨이 차지 않는 것
엘리베이터가 고장 났을 때 비로소 깨닫는 건강. 심폐지구력이라는 수치보다, 4층까지 대화하며 오를 수 있는 여유. 할 수 없이 계단으로 오를 때 '어휴'하지 않고, 도착했을 때 피곤하지 않은 것.
2. 내일 아침이 두렵지 않은 것
'또 월요일이야'가 아니라 '내일은 뭘 해볼까'로 잠드는 마음. 불안 장애 진단 이전에, 기대감이 있는 삶.
3. 웃을 때 진짜로 웃는 것
사회적 미소가 아니라 배꼽을 잡는 웃음. 세로토닌 수치보다 중요한 건, 마지막으로 소리 내어 웃은 게 언제였는지. 이따금 친구에게 말하곤 하니까. "와, 나 오늘 제일 크게 웃었어!" 혹은 "나 소리내서 웃은거 오늘 처음이야."
4. 간식을 편하고 즐겁게 먹는 것
누군가 건네는 간식을 기쁘게 받고, 점심시간을 즐겁게 기다릴 수 있는 것. 내 주변에는 과민성대장증후군이 많은데, 늘 어떤 음식을 먹을 때 주저하고 고민하는 것을 볼 때마다 어찌나 안쓰러운지.
5. 잠들기 전 스마트폰을 보지 않아도 되는 것
수면제가 필요 없는 밤. 하루를 정리하고 스스로에게 "수고했어"라고 말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
6. 거울을 봤을 때 '괜찮네'라고 생각하는 것
BMI 지수가 아니라, 내 얼굴을 보며 친밀함과 호감을 느끼는 순간. 신체 이미지는 건강의 가장 사적인 영역이다.
7. 친구의 연락에 '귀찮다'가 아니라 '반갑다'가 먼저 드는 것
사회성 척도가 아닌 관계에 대한 생기와 진심. 번아웃의 첫 신호는 종종 사람이 버거워지는 순간이다.
8. 점심 메뉴를 고를 때 '먹고 싶은 것'을 선택하는 것
칼로리 계산이나 '이것만은 피해야 해'가 아닌, 신체가 원하는 것에 귀 기울이는 능력. 직관적 식사는 다이어트 문화에 가려진 건강이다.
9. 비 오는 날 관절이 아프지 않은 것
일기예보가 필요 없는 몸. 염증 수치보다 생생한 건, 날씨 변화에 흔들리지 않는 일상.
10. 콘서트에서 세 시간 서 있을 수 있는 것
체력 테스트가 아니라 삶의 즐거움을 온전히 누리는 능력. 건강은 '할 수 있음'의 자유다.
11. 혼자 있는 시간이 외롭지 않은 것
고독과 고립의 차이. 정신건강의 핵심은 혼자여도 괜찮은 내면의 안정감.
12. 감정을 느낀 뒤 30분 안에 회복되는 것
분노조절장애 진단보다 중요한 건, 감정의 파도를 타고 내려올 수 있는 회복탄력성. 건강은 무너지지 않음이 아니라 일어서는 속도다.
13. 차가운 물을 마셔도 배가 아프지 않은 것
여름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망설이지 않는 자유. 소소하지만, 선택의 폭이 넓어지는 것이 건강이다.
14.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싶다는 욕구가 있는 것
인지 기능 검사보다 중요한 건, 호기심. 뇌 건강은 MMSE 점수가 아니라 '해보고 싶다'는 동력에서 시작된다.
15. 아침에 일어났을 때 몸이 뻐근하지 않은 것
정형외과 진단 이전에, 침대에서 일어나는 순간의 가벼움. 만성 통증은 숫자로 재기 어려운 삶의 질이다.
16. '해야 할 일' 목록에 압도되지 않는 것
생산성 앱이 아니라, 할 일과 할 수 있는 일의 균형. 정신적 건강은 완벽함이 아니라 '오늘은 이 정도면 충분해'라고 말하는 용기다.
17. 계절이 바뀔 때 감기에 안 걸리는 것
면역력 수치보다 생생한 건, 환절기를 무사히 넘기는 경험. 건강은 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다.
18. 실수했을 때 스스로를 용서할 수 있는 것
자존감 검사보다 절실한 건, 자기 연민(self-compassion). 건강한 마음은 자신에게 가혹하지 않다.
19. 좋아하는 음악을 들을 때 몸이 반응하는 것
박자에 맞춰 고개를 끄덕이거나, 어깨가 들썩이는 순간. 감각과 감정이 살아있는 몸.
20. 내일도 오늘과 비슷하게 괜찮을 거라고 믿는 것
불확실성에 대한 과도한 불안 없이, 내일을 기대할 수 있는 마음. 건강은 예측 가능한 안정감이다.
건강은 '평균'이 아니라 '서사'다
WHO는 건강을 "단순히 질병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신체적·정신적·사회적으로 완전한 웰빙 상태"라고 정의한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건강을 병원 리포트의 '정상 범위'로만 이해한다. 콜레스테롤 수치, 혈당, 혈압.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의 건강 '전부'는 아니다.
건강은 집단의 평균이 아니라 개인의 서사다. 어떤 사람에게 건강은 마라톤 완주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출근길에 음악을 듣는 여유다. 어떤 사람에게는 혼자 여행을 떠나는 용기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가족과의 저녁 식사에서 웃음이 터지는 순간이다.
우리는 건강을 '측정'하는 데 익숙하지만, 건강을 '경험'하는 법은 잘 모른다. 수치는 객관적이지만, 삶은 주관적이다.
건강은 무엇으로 증명되는가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어떤가.
마지막으로 "요즘 꽤 건강해. 이정도면 괜찮아!"고 느낀 순간은 언제였나?
그것은 병원 검진 결과를 받았을 때였나,
아슬아슬하게 수치를 넘겼을 때였나,
시험에 통과했으니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자는 때였나,
아니면 피곤할 법한 일정에 의외로 활기를 느낀 때 였나,
누군가의 부탁에 여유롭게 응했을 때 였나.
건강을 추구하는 방식은 달라져야 한다. 평균의 건강이 아니라, 나만의 건강. 질병의 부재가 아니라, 삶의 존재감. 숫자로 증명되는 몸이 아니라, 매일 경험하는 몸.
AI 시대, 우리는 더 정교한 데이터를 갖게 될 것이다. 유전자 분석, 디지털 페노타이핑, 실시간 바이오마커 추적. 하지만 그 모든 데이터가 말해주지 못하는 것이 있다. 우리가 오늘 아침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느낀 평온함. 친구의 농담에 터진 웃음. 퇴근길 석양을 보며 든 생각, "오늘 하루도 괜찮았네."
건강은 리포트가 아니라 서사다.
우리의 건강 이야기를 다시 쓸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