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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도 근육이다

좋음이 몸 곳곳에, 하루의 틈새마다 나타난다.

by 유앤나

우리는 불행해서가 아니라

‘좋음을 감지하는 근육’이 약해져서 괴로워지지 않을까.

좋구나, 느끼는게 회복의 시작이 된다면.



좋음을 감지하는 근육



문득 근육이 짧아지고 약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깨가 말리고, 목이 뻐근하고, 허벅지가 덜렁거리는 것처럼.


‘좋다’는 감각도 자꾸 무뎌지고 있었다.

좋다는 느낌을 알아차리는 근육,

좋음을 오래 유지하는 근육이 약해진 것이다.


어느새 ‘좋음’마저 평가한다.

효율적이어야 하고, 지속 가능해야 하며,

평소의 ‘좋음’보다 더 낫기를 바란다.

그렇게 비교하고, 측정하고, 증명하느라

기분이 좋아지는 ‘감각’이 아니라 ‘지표’를 찾는다.


기분이 좋아지려면 뭘 해야 하지?

이 정도는 해야지, 이건 별로야,

좋음을 점수로 매기며,

‘기분 좋음의 기준표’를 스스로 만들어 버린다.


하지만 좋음은 성과가 아니라 기분이다.


헬스장에서 처음 등 운동을 배울 때를 떠올려본다.

“등에 힘 주세요.”

그 말을 처음 들으면 대부분은 모른다.

어디에 힘을 줘야 하는지, 지금 제대로 하고 있는지.


몇 주가 지나서야 비로소 안다.

“아, 여기구나. 이 부분이 당겨지는 거구나.”

처음엔 모를 수밖에 없다.

느낄 수 없으니까, 써보지 않았으니까.


좋음도 그렇다.

“기분 좋게 보내야지.”

하지만 정작 좋아지는 과정도, 유지하는 방법을 모른다.

좋음을 감지하는 근육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좋아도 좋은줄 모르고, 좋음을 놓지 않으면 되는데 그 또한 모른다.


조금씩, 반복해서 써야만 길이 열린다.

앞으로 좋아질 방법이 아니라 지금 좋음을 느껴야한다.


"오늘 뭐 하면서 괜히 미소가 났지?"

"그때 몸 어디가 반응했지?"

자꾸 물어보고, 자꾸 감지하려 하다 보면, 점점 예민해진다.

아, 이건 편안함이구나.

이건 설렘이구나.

이건 만족이구나.

이건 안도구나.

좋음에도 결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러면 더 좋은 걸 알게 될테지.

물 한 모금의 좋음,

창문 너머 바람의 좋음,

문득 떠오른 기억의 좋음,

우연한 실수의 좋음.


좋음이 몸 곳곳에, 하루의 틈새마다 나타난다.

그걸 알아차리는 힘.

좋음을 감지하는 근육이다.






‘행복하다’와 ‘편안하다’ 중 하나만 고르라면

오늘은 어떤 쪽인가요?


언제부터 ‘좋다’는 말을

누군가에게 증명해야 한다고 느꼈나요?


기분이 좋아지는 일인데,

왠지 부끄러워서 말하지 못한 게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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