벅차고 버거운, 그래서 삶을 지탱해주는
친구를 만났다.
그는 요즘 아이가 있는 사람을 만나고 있다고 했다.
아이 사진을 보여주며, 얼마나 귀여운지를 설명하는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래 정말 귀엽다, 맞장구를 쳐주면서. 결혼 생각도 있다고 해서 물었다. “그럼, 둘째도 낳고 싶어?”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낳아도 좋고, 안 낳아도 좋아. 혹시라도... 내가 두 아이를 대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다를까 봐,"
쿵, 했다.
아직 부모가 되기 전인데도,
이미 부모의 마음이었다.
넌 그러지 않을거라고, 틀림없이 두 아이를 정말로 사랑할거라고 하자 그는 말했다. "지금의 마음은 그래. 나도 내가 분명히 그럴거라고 생각하지만, 사람은 모르니까. 그래서 그럴 여지를 주고 싶지 않아. 낳아도 좋지. 하지만 아주 혹시나 모르잖아. 그리고 아이들이 서로...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으니까."
난 틀림없지, 라는 확신보다, ‘혹시라도’라는 의심이 그의 사랑이었다.
자신을 믿지 않는 게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의심할 줄 아는 것.
어쩌면 이 세상의 입양도, 대신 돌봄도, 후원도, 이런 마음에서 시작되는거겠지.
그저 한 사람을 온전히 사랑하려는 마음.
그를 위해 해주고 싶은 것 그보다 포기하고 싶은 것을 기꺼이 할 때.
무얼 해주는지 그보다 무얼 안하는지, 못하는지, 그 수많은 것들을 세지 않을 때.
친구는 그 아이를 위해 해주고 싶은 것들과, 반대로 포기하고 싶은 것들을 하나하나 말했다. 주말마다 함께 가고 싶은 곳, 가르쳐주고 싶은 것들, 그리고 앞으로 해야할 일과 오랫동안 지켜야 할 것을에 대해. 그 목록을 들으며 계속 고개만 끄덕였다.
너무 고마웠다. 그리고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 세상 어딘가에, 이런 마음으로 누군가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우리는 모두 어디선가 이런 응원과 사랑을 받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동료로, 이웃으로, 때로는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로. 조금 넘치고 많이 고마운 사랑을 받고 있을 것이라고.
틀림없다. 그래서 조금 덜 쉬거나, 조금 더 하고, 정말 아무도 몰라주지만 포기하고, 다시하고, 묵묵히 하는거다. 그리고 포기하고, 그래도 아까워하지 않는거다. 분명히 조금씩 그렇다. 그렇게 서로를 아끼는 마음들로 연결되어 있다.
벅차고 버거운, 그래서 삶을 지탱해주는 그 사랑으로.